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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로스팅 Feb 13. 2024

비전의 시대를 넘어 원칙의 시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가장 흔한 대답은 누군가의 첫 번째 자식이며, 누군가의 배우자이며 누군가의 부모이자 친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 ‘나는 본질적으로 누구인가?’라고 던지면 고민은 깊어집니다.


본질은 결국 존재의 이유와 그 이유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질문으로 치환하자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존재의 이유에 가까워지기 위한 3-5년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과 타협할 수 있고, 반대로 무엇과 타협할 수 없는가?’입니다. 각각 ‘미션’과 ‘비전’ 그리고 ‘원칙’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미션, 비전,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셈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션과 비전, 그리고 원칙이 명료하다면 조직원들은 긍정적 에너지로 일을 할 것이며, 비전을 달성할 확률도 높습니다.


미션은 기업의 존재 이유입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창업 이유가 분명하듯이, 100년 이상된 기업의 경우도 미션은 분명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미션은 숭고합니다. 처음부터 어느 회사의 미션이 폐수 방수를 통해 환경오염에 기여하겠다라든지, 금융 시장을 교란해 경제적 약자를 약탈하겠다라든지, 주가 조작을 통해 사익을 취하겠다든지, 사내 언어폭력을 방조해 자살률을 높이겠다고 하는 조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들은 현재 진행형이고,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반면, 비전은 담대한 목표입니다. 1년 안에 시장 1위가 되겠다든지, 6개월 안에 흑자로 전환하겠다고 하든지, 3년 안에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만들겠다고 하든 기한과 정량적 목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전은 담대하고 공격적이며 틀에 갇히지 않을수록 긍정적이 됩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면 할수록, 선명하고 구체적일수록, 정량적 목표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수록 좋습니다. 비전의 크고 작음과 달성 가능성이 논의의 주제가 될 수 있으나, 한 기업의 비전 자체가 사회적 문제 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칙의 핵심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있다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을 그 무언가가 원칙입니다.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폐수 처리를 정화하지 않고 그냥 내보낼 것인지, 금융 규제에는 없더라도 선을 넘지 않을 것인지, 언어폭력을 구사하지만 최고경영자의 말을 잘 듣고 성과를 내는 임원을 내보낼 것인지 등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을 용기입니다.


문제는 늘 ‘이번 한 번만’에서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전략 수립 과정은 미션의 본질은 지키되 현재 상황에 맞추어 재정의하고, 3-5년간의 비전을 성정 하는데 집중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원칙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수많은 일본 회사가 기존 미국 회사들을 위협하자, 수많은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들은 가장 큰 차이를 담대한 포부, 즉 ‘전략적 의지’로 해석했습니다. 일본 회사들의 담대한 목표 설정과 장기적 관점의 헌신은 미국 기업들을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비전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기존 조직의 비전 없음을 나무라며, 시장을 새롭게 정의하고 담대한 목표를 세우자며 조직을 자극했습니다. 5개년 목표가 표준이 되었으며, 거침없는 슬로건이 조직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원칙의 시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시장 변화 속도가 빠르고, ‘코로나19’와 같은 블랙스완이 발생하자 3-5년짜리 장기 비전의 중요성은 급감했습니다. 오히려 급변하는 환경에 ‘이번 한 번만’을 시도한 회사들이 많아졌고, 시장의 냉정한 판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기극을 펼친 테라노스, 수많은 차별을 방치한 우버, 창업자의 모럴 해저드가 발생한 위워크 등 이제 고객과 주주는 원칙을 위배한 기업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입니다.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과 ‘극단적 투명성’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그 원칙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 원칙이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조직의 전략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은 그 조직의 ‘원칙’과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도덕한 회사는 주가가 급락하고, 퇴사자가 속출하며, 잠재력 있는 신규 입사자를 채용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원칙의 시대’에 전략은 간결합니다. 미션을 재조명하되 단단하게 하고, 비전을 세우되 유연해야 하며, 원칙은 간결하되 탄탄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조직원들과의 소통도 어차피 변할 비전보다 우리의 미션이 무엇임을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강조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의도치 않게 원칙을 어긴 일이 발생했다면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원칙의 시대’는 ‘이번 한 번만’ 대신 끊임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요구합니다.



<Jim Collins and Jerry I. Porras, “Building Your Company’s Vision”,  Harvard Business Review (September–October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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