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댄스와 넷플릭스
AI는 미디어의 얼굴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대형 플랫폼은 독점적 영향력을 키우고, 창작자는 개인화된 팬층을 향해 정교하게 분화된다. 중심은 사라지고,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이제 콘텐츠는 기술과 감성을 동시에 설계해야 살아남는다. 정답은 사라졌고, 의미는 각자의 시간 속에 떠다닌다.
그 변화의 전조는 미국에서 먼저 감지되었다. 2024년 7월, 콘텐츠 제작사 스카이댄스가 백 년 역사의 파라마운트를 인수했다. 제작자가 유통을 삼킨 사건이었다. 이것은 단지 자본의 이동이 아니라 권력의 재배치였다. 이야기보다 구조가 중요해진 시대의 상징이었다.
파라마운트는 CBS, MTV, 파라마운트픽처스를 거느린 미디어 제국이었다. 그러나 케이블 방송의 침체와 스트리밍 전략의 실패로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파라마운트+’는 수십억 달러를 삼키고도 감동을 되돌려주지 못했다. 기술의 진화에 반응하지 못한 시스템은 더 이상 사람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플랫폼이 콘텐츠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반면 넷플릭스는 정반대의 전략으로 미디어 생태계를 장악했다. 2024년 2분기, 2억 8천만 명의 구독자와 40억 달러의 이익이 이를 증명했다. 2019년 대비 7배 성장한 수치다. 그들은 시간을 점유했고, 감정을 계산했고, 취향을 재구성했다. 기술이 사람보다 먼저 이야기를 안다고 믿는 이들이 만든 성공이었다.
이제 플랫폼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콘텐츠를 구성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HBO나 디즈니 같은 전통 강자들은 움츠러들고 있다. 콘텐츠보다 타겟팅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작가의 감을 대신했고, 데이터는 감정의 흐름까지 예측하려 한다. 미디어의 본질이 직관에서 수치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은 0%대까지 추락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틱톡이 일상의 창이 되었다. 채널의 시대는 끝났고,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낡은 문법 속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플랫폼은 바뀌었는데, 우리의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기술은 늘 콘텐츠의 문법을 바꿔왔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로, 실사에서 CG로 세상은 진화했다. 그때마다 기성세대는 저항했고, 새로운 세대는 흡수했다. 찰리 채플린이 유성영화를 거부했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하지만 변화는 감성의 벽을 넘어 늘 삶의 구조를 바꾸었다.
이제 그 파도가 AI라는 이름으로 다시 밀려온다. 생성형 AI는 영상과 음성, 자막까지 자동으로 만든다. 가상 아바타가 뉴스를 진행하고, AI가 시나리오를 쓴다. 창작은 더 쉬워졌지만, 동시에 더 가벼워졌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질문은 사라지고 있다.
AI 시대의 콘텐츠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구를 향해 말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유튜브는 AI 라디오를 실험하고, 스포티파이는 AI DJ를 띄우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탈률을 줄이기 위해 알고리즘을 고도화한다. 감정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로 변환되어 기계의 계산 속으로 들어간다.
하이퍼 퍼스널라이제이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시선과 리듬과 감정을 대신한다. 보고 싶은 것을 찾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보여주는 것을 소비할 뿐이다. 그리하여 취향은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의 설계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방향이 중요하다. ‘일단 해보자’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송길영은 말했다. "Just do it보다 Think first." 기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수록, 우리는 ‘왜’를 더 자주 물어야 한다. 질문 없는 창작은 결국 가장 먼저 사라진다.
지금은 되묻는 시간이다. 나는 어떤 플랫폼 위에 서 있는가. 나는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매여 있는가. 내가 설계하고 있는 콘텐츠는 누구의 감정을 향해 있는가. 구조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기술보다 삶이 먼저여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시청률과 조회수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이제 '도달의 문제'가 아니라 '잔상의 문제'가 되었다. 얼마나 많이 보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남느냐가 중요해졌다. 기억을 남기지 못한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AI는 잊히지 않는 이야기까지 설계할 수 있을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맥락’이다. 콘텐츠가 중요한가, 맥락이 중요한가. 이 시대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순간에 닿지 않는 콘텐츠는 아무리 정교해도 공허하다. 기술은 배달하지만, 감정은 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콘텐츠보다 질문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가, 누구에게 그것을 전하고 싶은가. 콘텐츠는 지워지지만, 질문은 남는다. AI는 ‘무엇’의 시대를 만들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왜’의 존재다. 그 물음이야말로, 미디어가 살아 있는 증거다.
남는 것은 결국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이야기’보다 ‘누구에게 건네는 이야기’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이 가속화될수록 감성은 더 섬세해져야 한다. 기억될 수 있는 문장 하나가, 천 개의 영상보다 오래간다. 미디어는 결국, 누군가를 위한 마음의 편지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 위에 콘텐츠를 올리고 있는가.
그 질문은, 누구의 마음에 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