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을 향한 열망

by 경영로스팅

유니콘은 상상의 동물입니다. 태국은 2021년 유니콘이 탄생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상상의 동물을 꿈꾸워왔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그랩, 인도네시아의 고젝, 베트남의 VNG, 필리핀의 레볼루션 크래프티드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유니콘이 탄생할 때마다 태국은 아세안 제2 경제 대국으로서 자존심을 구겨왔습니다.


태국은 외형적 지표에서 어떤 나라보다 모바일 혁신이 일어나기 용이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져 왔습니다. 아세안 제2의 경제 대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 수준도 7,000달러 내외로 중진국 수준입니다. 모바일에서 쓰는 시간도 전세계에서 필리핀과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입니다. 디지털 경제 규모 역시 2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많이 쓰고, 디지털 경제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나라와 차이라면, 디지털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서비스가 현지 서비스가 아닌 대부분 글로벌 또는 다른 동남아 국가 사업자의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한 태국인 벤처캐피탈 투자자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태국인들의 문제 대처 방식에서 찾았습니다. 태국인들이 즐겨쓰는 표현 중 하나는 '사바이(สะ-บาย)'입니다. 편안하다라는 의미인데, 일상 생활에서 문제가 터져도 '사바이 사바이'를 외치며 평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대다수 태국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라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자신의 생각이 오히려 더 문제라며 '사바이 사바이'를 읆조립니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문제를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문제를 다른 문제로 묻히게 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에서야 그게 문제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해결책을 강구합니다. 스타트업은 결국 일상 속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나, 태국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철학과 결이 맞지 않는다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태국인의 고유 특성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 미미를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동남아 어느나라보다 경제가 더 안정적이라 창업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월드뱅크 데이터 기준, 태국의 2011년~2019년 평균 실업률은 0.6%로 완전 고용 수준에 가깝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는 4.3%, 베트남은 1.5% 수준입니다. 테크 탤런트의 수도 태국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2020년 1월 기준, 링크드인에서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개발자를 직함으로 가진 이들이 인도네시아는 11만명이 넘었으나, 베트남은 6만 9천명, 태국은 5만 3천명 수준입니다. 태국 스트타업 생태계에 있는 많은 이들이 꼽는 최고의 문제는 항상 테크 탤런트의 부족입니다. 즉, 태국인들의 고유한 특성도 있을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완전 고용 수준에 대기업이 인재를 모셔가고 있는 상황에서, 테크 탤런트도 부족하자 굳이 창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일 듯 합니다.


창업을 하는 스타트업의 개수가 작다보니 결과적으로 펀딩 규모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 24억 달러(약 2조 7천억원), 베트남 2억 6천만 달러(약 3,000억원)에 비해 태국은 베트남의 절반에 못미친 1억 1천만 달러(약 1,260억원) 수준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태국에 오랫동안 유니콘이 없었던 이유는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젊고 유망한 청년들이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지 않았으며, 그러다보니 펀딩 규모도 크지 않습니다. 영어가 편하지도 않다보니 태국 안에서 서로 조언을 주고 받는 폐쇄적 상황이 되었으며,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처럼 미국에서 돌아온 교포(SEA Turtle)도 많지 않아 싱가포르 기반의 투자자들과 접점도 크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 관심이 집중되었고, 태국은 늘상 뒤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 본 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은 많은 이들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위워크(Wework), 허바(Hubba), 저스트코(Justco)와 같은 공유 오피스에는 눈빛이 반짝이는 인재들이 넘쳐났고, 20대 창업가들 중에는 외국에서 경험이 풍분한 인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라인과 파트너십을 희망하는 창업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민과 시너지를 토로했습니다. 시드스터(Seedster)와 dtac 엑셀레이터와 같은 액셀러레이터는 다양한 스타트업 데모 데이나 피칭 대회을 열었고, 열정 있는 스타트업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트루 디지털파크에서 만난 수많은 투자자들은 태국 스타트업에 대한 믿음이 두터웠습니다. 외국에서 경험을 쌓은 후 태국으로 돌아온 선구적인 벤처캐피탈 투자자가 존재했고, 싱가포르 기반의 벤처캐피탈들도 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 메시지를 담은 염원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꿈은 태국의 첫 번째 유니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니콘이 될 확률은 1% 남짓에 불과합니다. CBInsight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니콘이 되는 스타트업은 시드 단계부터 총 6번의 투자를 받고, 중간에 실패할 확률도 69% 가까이 됩니다. 유니콘이 되지 못하고 중간에 인수 합병 등을 통해 마무리되는 경우도 30% 가까이 됩니다. 이 모든 여정을 견디고 3~7년간의 시간을 보내고 겨우 유니콘이 됩니다. 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유니콘이 탄생하기까지 약 7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태국에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2015년을 전후로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단순 계산으로 보면 2015년부터 7년 후인 2022년을 전후로 유니콘이 탄생할 것이라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2021년 첫번째 유니콘이 탄생했으니 이 추정은 얼추 맞은 셈입니다. 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은 이들의 염원과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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