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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로스팅 Dec 14. 2024

일본 정부의 불법 사이트 대응

2018년 망가무라 폐쇄와 2020년 저작권법 개정

2019년 7월 9일,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한 남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미 호시노로, 일본, 독일, 이스라엘 국적을 보유한 세계 최대 불법 만화 사이트 ‘망가무라’의 운영자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그를 수배했으며, 필리핀 당국과 일본 대사관은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탑승 시각이 다가오던 그 순간, 필리핀 이민국 도망자수색부서 요원들이 공항 터미널 3에 들이닥쳤습니다. 출국 직전에 있던 호시노는 갑작스러운 체포 작전에 저항할 틈도 없이 붙잡혔습니다. 그는 홍콩행 비행기를 타려던 참이었습니다. 체포된 호시노는 필리핀 이민국 구금시설로 이송되었으며, 그의 신병은 일본으로 송환되기까지 철저히 관리되었습니다.


망가무라는 2016년 1월에 개설된 불법 유통 사이트로, 2018년 폐쇄 당시 월간 이용자 수가 약 9,892만 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이 사이트는 만화뿐만 아니라 잡지, 소설, 사진 등 약 7만 권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게재하여 저작권을 침해했습니다. 망가무라는 해외 서버를 이용하고 여러 국가의 서버를 경유하는 등 치밀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단속을 피해왔습니다. 


일본 콘텐츠해외유통촉진기구(CODA)에 따르면, 해당 불법 사이트 운영으로 인한 저작권 피해액은 약 3,200억 엔(약 3조 4,90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 저작권법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저작권 침해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고단샤를 비롯한 여러 출판사가 망가무라를 일본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하였으며, 2018년 2월에는 만화가 협회인 만화재팬(MANGAJAPAN)이 웹사이트 방문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망가무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2018년 2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저작권 문제로 거론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고, 같은 해 4월, 정부는 '인터넷상의 해적사이트에 대한 긴급대책'을 발표하고 망가무라를 포함한 3개 사이트를 직접 폐쇄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또한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에게 불법 사이트의 자발적인 차단을 요청했습니다. 정부는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하여 불법 다운로드의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유통 사이트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일본 경찰청은 5개 현(県)과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여 망가무라 운영자를 추적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9년 7월, 운영자 호시노 로미가 필리핀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망가무라 운영자 호시노 로미의 체포 과정은 국제적인 협력의 결과였습니다. 호시노는 망가무라 폐쇄 직후 필리핀으로 도주했지만, 일본 경찰의 지속적인 수사와 필리핀 당국의 협조로 체포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9월, 호시노는 일본으로 강제 송환되었고, 2021년 6월 2일 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서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 벌금 1,000만 엔(약 9천만 원) 및 추징금 62,571,336엔(약 5억 7천만 원)의 형사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2024년 4월, 도쿄지방법원은 민사소송에서 호시노에게 17억 엔(약 150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일본 내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으로 역대 최고 금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불법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한 2개 회사가 1,100만 엔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망가무라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일본만화가협회는 망가무라에 대한 접속 차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형 출판사들은 망가무라 폐쇄 이후 디지털 만화 서비스를 확대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일본 사단법인 ABJ(Authorized Books of Japan)는 합법적인 만화 사이트를 인증하는 ABJ 마크를 도입하여 불법 사이트와의 구별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합법적인 디지털 만화 시장의 성장을 촉진했습니다. 망가무라 폐쇄 이후 2019년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은 전년 대비 약 33% 성장했습니다.


망가무라 사건은 디지털 시대 저작권 보호와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저작권법을 개정하고 정부와 민간 기업 간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해외 서버를 통한 불법 사이트 단속의 어려움도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국제적 협력과 기술적 대응 방안 개발이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더불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합법적인 콘텐츠 소비문화 조성의 중요성도 부각되었습니다. 망가무라 사건은 강력한 불법 콘텐츠 단속이 결과적으로 합법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망가무라' 웹사이트,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 정부는 디지털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고 콘텐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에 주요 저작권법을 개정했습니다. 이는 인터넷상의 불법 복제물 문제와 AI,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IoT, 빅데이터, AI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저작물 이용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망가무라와 같은 불법 사이트를 통한 저작권 침해 행위가 점점 교묘하고 복잡해지면서 피해의 심각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와 기술 혁신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였습니다.


2020년 개정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인터넷상의 불법 복제물에 대한 대책을 강화했습니다. '리치사이트(Leech site)'라 불리는 불법 콘텐츠 링크 제공 사이트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였습니다. 리치사이트(leech site)는 자체 콘텐츠 없이 다른 불법 콘텐츠 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를 제공하여 저작권 침해를 조장하는 웹사이트를 말합니다. 리치사이트 운영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불법 다운로드 규제 대상을 확대하였습니다. 기존에는 음악과 영상에 한정되었던 불법 다운로드 규제가 만화, 소설, 사진 등 모든 저작물로 확대되었습니다. 다만, 국민의 정당한 정보 수집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악질적인 다운로드'로 대상을 한정하였습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업로드된 만화, 서적, 음악, 영화 등의 콘텐츠를 불법인 줄 알면서 다운로드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콘텐츠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저작권법 개정과 함께 불법 복제물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저작권 침해 사이트 정보 공유 시스템 (링크)' 구축입니다. 이 시스템은 저작권 단체, 출판사, 통신사업자 등이 불법 사이트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인터폴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에서 운영되는 불법 사이트 운영자 검거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불법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한 회사도 처벌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해외 불법 유통 대응 노력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의 접근 방식은 더욱 체계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일본의 '저작권 침해 사이트 정보 공유 시스템'은 한국의 '웹툰 불법 유통 대응 협의체'보다 더 광범위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ABJ(Authorized Books of Japan) 마크 제도는 합법 사이트 인증을 통해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법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한 회사까지 처벌하는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불법 유통 대응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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