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균형의 미학, 본사와 현지의 역할

미묘한 줄다리기 게임

by 경영로스팅

줄다리기는 양쪽이 팽팽할때 균형을 이룹니다. 양쪽의 팽팽한 힘이 서로를 상쇄하면 균형적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한쪽의 힘이 조금이라도 빠지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고, 줄의 팽팽함은 줄어듭니다. 최고의 균형점은 각 요소가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하며 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때 가능합니다.


본사와 현지의 역할은 줄다리기와 같습니다. 균형점을 본사와 현지 어디로 위치시킬지는 기업이 처해있는 환경과 사업의 단계마다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위임을 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를 할 것인가입니다. 명확치 않은 위임과 통제 정책은 실행에 상당한 혼선을 줍니다. 한국에서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많은 회사들이 헤어나지 못하는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현지화라는 명분으로 모든 권한을 현지 조직에 위임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현지 조직의 리더들도 모두 현지 인력으로 채용합니다. 하지만 분기마다 성과를 취합하고 파워포인트로 그리고 한국어로 보고해야 하는 것은 본사 ‘글로벌사업팀’의 몫이 됩니다. 최고경영자는 한국어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혁신적인 실행을 주문합니다. 담당 실무자들은 회의록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정리합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지 걱정된다며 담당 임원은 메시지를 순화하라고 지시합니다. 막상 현지에서 이메일로 회의록을 받아보면 순화된 메시지로 인해 현장감이 떨어집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최고경영자는 분기 워크샵을 현지에서 개최합니다. 비판을 받았던 보고 내용이 화자가 달라지자 이번에는 칭찬을 받습니다. 싫은 소리를 직접 하고 싶지 않은 담당 임원은 한국에서의 미팅 피드백을 그대로 전달하라고 본사 팀에 지시합니다. 하지만 칭찬을 받은 현지팀은 ‘글로벌사업팀’의 피드백을 수용할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다음 분기가 반복됩니다. 본사 ‘글로벌사업팀’은 더 이상 현지와의 소통이 의미없음을 깨닫고 말을 줄이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본사 기획, 개발팀은 현지와 직접 소통하는 대신 ‘글로벌사업팀’과 한국어로 일하기를 희망합니다. 요구사항을 요청받으면, 다시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현지와 소통이 이루어지나 감감 무소식입니다. 본사의 제작팀은 피드백이 느리다며 답답해하다 이슈 제기를 합니다. 문득 본사의 ‘글로벌사업팀’은 무기력을 느끼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파워포인트임을 깨닫습니다. 장표의 디자인과 논리를 다듬는다며 밤 늦게 주말에도 일하며, 월급값은 하고 있다고 위로합니다.


대다수의 한국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관리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조금 더 업력이 있는 회사는 재무, 인사와 전략 등 요직에 주재원을 파견하여 관리하나, 돈을 아낀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 본사에 ‘글로벌사업팀’을 두어 위와 같은 행태를 반복합니다. ‘글로벌사업팀’은 기업마다 ‘사업관리팀’, ‘글로벌사업개발팀’, ‘글로벌지원팀’ 등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모든 논의는 문제에 집중되고 해결책이 무엇인가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실행 권한을 갖지 못한 이의 대답은 서로에게 시간 낭비입니다. 따라서 현지에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가의 질문과 함께 본사의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소통할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본사 ‘글로벌사업팀’이 단순한 통역과 정보의 중계 역할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는 것이 맞습니다. 현지-본사간 역할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 수립은 글로벌 사업의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현지에 완전한 위임을 하더라도 인력 관리와 예산권은 본사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지에서 우상향 계획을 수립하게 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사업 계획은 외부 투자자에게 피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결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반대로 현지가 사업 계획 수립 역량이 부족하다면 아직 위임할 때가 아닙니다. 위임 정도와 관계없이, 예산과 인력 승인 권한은 반드시 본사 주도 하에 통제해야 합니다.


통제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 유리하나 어느 시점 이상부터는 폭발적인 우상향이 어려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장의 어떤 시점까지 통제를 할지, 어떤 조건 하에서 위임을 할지 사전에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제를 하더라도 현지에서밖에 할 수 없는 현지 네트워킹, PR, 마케팅, 세일즈 등의 기능 조직은 충실하게 보강해야 합니다. 핵심 인재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육성시켜는 것도 중요함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초기 단계는 본사에서 대표를 포함한 핵심 인력을 파견해 소통의 격차를 줄이되,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서는 현지 인재를 대표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주요 사업들은 본사 통제 하에 명확한 P&L 관리를 하도록 합니다. 태국 현지에서 페이스북, 그랩, SEA 그룹의 가레나가 정확히 이 선택을 했습니다. 반면에 처음부터 현지 인력에 주로 의존했던 고젝은 태국 진출 3년만에 사업을 철수시켜야 했습니다.


위임과 통제를 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투명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본사 임원은 현지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 역할을 하고 이사회로서 관리해야 할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최악의 방식은 위임을 한다고 하고 감시할 사람을 별도로 두어 조직 내 불필요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위임을 하려면 위임하고 통제를 하려면 통제를 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기대 수준에 대해 사전에 투명하게 공유하고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핵심 고급 인력이 필요한 조직을 정의하고, 위임-통제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어디에 세팅할지 정해야 합니다. 테크 회사라면 개발자를 현지에서 뽑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 본사에 둘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개발 조직의 경우,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두는 것이 고급 인재를 유치하는데 더 유리합니다. 성과가 나오지 않을때는 본사 주도 ‘대책팀’을 급파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조직의 성과가 부진했음을 정확히 소통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문화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설적인지 에둘러 표현하는 문화인지, 성과 중심적인지 관계 중심적인지, 수평적인지 아니면 수직적인지, 인재 채용이 용이한지 아니면 어려운지, 경쟁사가 공격적인지 아니면 무시해도 될 정도인지 등의 상황에 따라 위임과 통제의 영역을 분리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태국은 문화적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관계중심적이며, 수직적인 문화입니다. 테크 분야는 인재 채용이 어렵고 경쟁사가 그랩, 고젝, SEA 그룹과 같은 동남아 슈퍼앱들로 매우 치열합니다. 따라서,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가 매우 심해 위임을 할 경우 상당한 오해가 쌓일 수 있어 통제를 하는 방식이 적합합니다. 재무, 인사를 제외하고 주요 가치사슬을 현지 완결형으로 세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본사 통제로 가는 것이 적절합니다.




글로벌 사업은 ‘같음’보다 ‘다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글로벌 사업은 핵심 역량을 시차가 존재하는 해외 시장에 확대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미세한 ‘다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미세한 차이 하나가 현지에서 성공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방정식을 이식하되, 1%의 ‘다름’을 현지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집중해야 합니다. 그 1%는 현지의 뛰어난 인재에게 위임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나머지 99%는 상황에 따라 균형점을 택할 수 있는 줄다리기입니다. 어느 쪽이든 팽팽한 작용과 반작용이 있어야 하며, 필연적인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합니다. 긴장감이 풀릴 때 줄은 느슨해지고 균형은 무너지며, 미세한 1%의 ‘다름’도 묻힐 수 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사업은 매일매일 벌어지는 미묘한 줄다리기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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