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과 꾸준함을 배우다
태국은 아마도 한국인이 가장 일하기 어려운 나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태국인 스스로도 흔히 태국에서는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다고 얘기하고는 합니다. 따라서, 태국에서는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면서 여유롭게 해야 합니다. 중간에 인상 쓰거나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고, 때가 되었을 때 일은 이루어집니다. 태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마음 수양'의 좋은 기회였습니다.
인내심과 꾸준함
태국에서 저보다 먼저 일한 유럽 출신 주재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태국에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그의 대답은 인내심(Patience)과 꾸준함(Persistence)이었습니다. 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감되는 요소였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에게는 고행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화내지 않고, 더 장기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어차피 화내고 조급해봐야 안 될 일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삶의 중요한 철학임을 태국에서 깨우쳤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마이 뺀 라이(ไม่เบ็นไร)’입니다. ‘마이(ไม่)’는 ‘아니다’, ‘뺀 라이(เบ็นไร)’는 '상관하다, 관계하다라'는 뜻으로, ‘상관없어’, ‘관계없어’, ‘괜찮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실수하거나 일 처리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때 너그러움을 표시하며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황스러운 점은 본인이 실수할 때도 ‘마이 뺀 라이’라고 얘기한다는 점입니다. 상식적이라면 ‘미안해’가 먼저겠으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심정으로 ‘마이 뺀 라이’로 되받아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마이 뺀 라이’에 미안해라는 뜻도 있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태국에서는 화를 내면 안 됩니다. 불쾌해한다거나 상대를 압박하는 낌새조차 내색하면 안 됩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한국인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한 한국 유명 화장품 회사의 법인장이 태국 직원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며, 욕하면서 화를 냈다가 쫓겨나듯이 한국으로 복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례는 워낙 유명해서 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화를 낸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으나, 태국에서는 화를 내는 순간 될 일도 되지 않습니다.
태국인은 자존심이 매우 강합니다. 과거 한국인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이 자존심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면, 태국에서는 자존심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행여나 다른 사람 앞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공격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다음날 바로 그만두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태국인은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한 번 화를 내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폭행 사고나 총기 사고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꽉 막히는 길에서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울린다고 바뀔 것도 없으나 괜히 화나게 해 봐야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내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맡긴 일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식당에서 주문이 잘못 나와도 ‘마이 뺀 라이’를 말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야 합니다. 아무리 타인에게 관심 없는 태국인들도 상대에게 화를 내는 순간, 경멸의 눈빛으로 바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만, 인내하되 꾸준해야 합니다. 중간중간 진척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표면적인 말을 진의로 간주해서도 안됩니다. 항상 귀를 열어놓고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 일의 진척도를 파악하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일을 진행할 때는 충분히 방향성을 고민하고 확신에 찼을 때 추진해야 합니다. 중간에 방향을 바꾸면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태국인들에게는 <끄랭짜이(เกรงใจ)> 문화가 강합니다. <끄랭짜이>는 상대가 속이 상하거나 불쾌하거나 불편해할까 봐 배려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거절을 대놓고 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의 민폐를 끼치지 않는 특질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서류에 사인할 때까지나 확실해질 때까지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서열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설픈 수평 문화가 태국에서는 아직 어색합니다. 동갑이라도 직급에 따라 상하관계가 명확한 편입니다. 따라서 일이 돌아가게 하려면 말이 통하는 태국인 매니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열 관계를 확실히 하되, 관계를 중요시하고 항상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태국에서 성공한 한국 회사가 누가 있을까요? 롯데면세점, CJ E&M, GS홈쇼핑, 현대홈쇼핑, 아모레 퍼시픽, 페이스샵 등 많은 소비재, 유통 회사가 진출했으나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일부 회사의 경우 철수했거나 철수까지 고려 중입니다. 철수 사유는 결국 사업 성과의 부진이겠으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이 뺀 라이’와 ‘빨리빨리’의 충돌 때문입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역동성’과 ‘조급성’이 미덕인 한국인에게 태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인격 수양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라인은 태국에서 성공한 대표적 한국 회사입니다. 초창기 라인이 한국인이 리드함에도 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의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를 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인이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가 되었던 과정 자체는 철저하게 일본 문화를 이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라인이 2021년 소프트뱅크와 합병하면서 언론에서 라인의 지분 구조를 밝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라인을 일본 회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에 주재하던 주요 한국 경영진들도 일본인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라인이 어느 한국 회사와 달리 태국 문화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