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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리 Nov 27. 2021

'바닷조갱ㅎ'

공시생이 되고 알게 된 한국어의 난해함


 N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너는 가는 곳마다 왜 그 모양이냐는 엄마의 핀잔에 말 문이 막힙니다. 20대를 돌아보면 시간 외 수당은 당연히 없고 퇴근 후 업무지시가 자연스러운 곳만 골라 입사를 했습니다. 사회부적응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책하다가 ㅡ 버텨 보아도 응급실을 다녀오고 난 뒤에는 퇴사가 쉬워졌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길을 걷다가 단어장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대단하다 생각만 했지 동족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른 나뭇잎이 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눌어붙은 동네를 걷다 고개를 들면 스파르타, 독서실, 경찰공무원, past 이 크게 박힌 간판이 보입니다. 네모난 건물 안에는 작은 용이 되기 위해 달음박질하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공시생(공무원 준비생을 일컫는 말)이 되고 가장 낯선 과목은 국어였습니다. 국어에서 바닷 조 개요는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의 기본구조입니다. ‘ㅂ’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맞닿아 나는 소리라고 합니다. 살면서 수없이 외친  ‘ㅂ’의 탄생을 이제야 배우다니… 제가 좋아했던 과목이 국어가 맞는 걸까요?

 

 순공(순수하게 공부만 하는 시간)이라는 말을 시험 준비를 하며 알았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하루에 15시간 공부했다는 사람은 대체 뭘까요...? 당장 눈앞에 학습량을 해치우기 급급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뜨거운 물을 끼얹습니다. 체감상 2분 컷입니다. 젖은 머리를 털며 방 안에 앉을 때면 이상하게 눈이 촉촉해집니다.


 공부를 시작하면 외로워서 힘들 줄 알았는데 약속을 거절하는 일이 훨씬 어렵습니다. 꾸역꾸역 학습량을 채우면서도 그냥 취업할까? 불합격하면 창피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어요. 불행을 예습한다고 나을 게 없으니 그만두자고 마음먹습니다. 심지어 합격만큼이나 불합격도 예정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삶이 고달프면 글을 쓰고, 우울하면 몸을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신발장이 머리맡에 보입니다. 건넌방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말소리가 뿌옇게 블러 처리된 채로 날아다닙니다. 불투명한 대화가 울리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길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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