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지가 벌써 몇 년째인지. 지치니까 가장 먼저 떨어지는 건 사회성이더라.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묵묵히 일만 했고, 먼저 다가오는 이들에겐 까칠하게 굴기 일쑤였다. 주말이면 코로나19를 핑계로 약속을 미루고 밀린 잠부터 자기 바빴다. 그리고 점심때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으면 금세 밖은 어두워졌다. '쉬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그건 잠을 의미했다. 침대에서 일요일 밤을 지새우고, 월요일 아침이면 몸이 아프다며 급히 반차를 올렸다. 몇 번의 주말과 연휴가 지나갔음에도 분명 나는 회복이 안되고 있었다. 내 몸은 빨갛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충전해도 10% 이상 충전되지 않는 방전된 아이폰처럼.
분명 내 속은 점점 비어가고 있는데, 왜 머리는 번잡하고 마음은 항상 바쁜 건지. 내 머릿속을 싹 비우고 싶다. 대장 내시경을 하기 전에 마시는 대장 정결제를 머리에 들이붓고 싶다. 나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재충전이었다. 일상의 고단함으로부터의 해방. 해야 할 의무로부터의 도피. 내일, 모레,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자유. 그래야 진짜 '충전'이 될 것 같았다. 그럼 그 기간은 얼마면 될까? 한 달? 아니 세 달? 반 년? 진짜 휴직하고 1년 정도 어디론가 떠나볼까? 세상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그럼 푹 쉴 수 있을까? 아니. 어디론가 떠나도, 휴직을 해도,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해도, 결국 다시 돌아와야 했다. 가끔 연휴에 휴가를 붙여서 일주일을 쉬어도 똑같다. 그냥 집에서 늘어져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지. 오히려 쉬는 동안 쌓인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만 쌓인 적도 많다. 휴직을 하면 그만큼 경쟁에서 뒤처지고 안 좋은 평가를 받겠지. 결국 내 마음은 항상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해 있었다. 그 기간이 한 달이든 반년이든 상관없었다. 그 시간을 주말 이틀과 똑같이 보낼 터였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못 가나 보다.
나에겐 재충전이 필요하다. 내 안을 채울 뭔가가 필요하다. 그건 잠이 아니었다. 지금 좀 힘들어도 하고 시간에 쫓긴다 해도 하고 싶은 걸 하자. 평일은 늦게 퇴근하니까, 주말은 금방 지나가니까, 나중에 해야지, 시간이 있을 때 해야지, 연휴가 오면 해야지, 휴직을 하면 그때 해야지. 나는 시간을 핑계로 시간을 버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돌아가야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인데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잖아. 그동안 미뤘던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운동을 했다. 물론 점심을 먹고 곯아떨어지긴 했지만, 안 쓰던 근육을 늘리고 주말 아침에 밖을 걷는 그 상쾌한 기분이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내 안의 배터리가 1% 채워진다. 참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