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간

by 대한극장옆골목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로 손이 갔다. 복잡한 생각과 답답한 감정들.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하기보다 그냥 종이에 쏟아내는 것이 편했다. 이는 철저히 나만의 이야기였고, 남을 위해 쓴 글은 아니었다. 속내를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글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다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 글이 — 메모와 일기 수준을 넘어서 — 잘 썼다고 인정받고픈 욕심도 있었다. 마침 '수필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이 있어 신청했다. 수필에 대한 배움보다도, 내 글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더 궁금했다.


교수님은 수업 때마다 유명한 수필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문장을 하나하나 발라내며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수업이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많았다. 아무래도 교양 수업이다 보니, 그냥 적당히 학점이나 채우려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더군다나 '수필'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물렁해 보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렇게 물렁한 사람이 아니었고, 적당히 수업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교수님은 백종원을 꼭 닮은 것 같다. 기본도 없이 대충 장사하는 가게들을 혼내는 모습이. 무섭다기보다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수필 시간의 기말 과제는 말 그대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었다. 학생들이 제출한 수필을 함께 읽어보며 실태를 점검하고 솔루션을 내리는 시간이었다. 유명한 수필들도 교수님의 지적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학생들의 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남들 글은 재미있게 읽다가,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떨렸다. 교수님이 내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내 글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수님은 내 글이 끝날 때까지 모든 부분을 칭찬해 주었다. 교수님은 글쓴이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지만, 어안이 벙벙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나를 칭찬해 주었을까.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은 나에게 말했다. 글에서 재기가 넘친다고. 아마 유치하더라도 솔직하게 써보겠다는 초짜의 의욕을 좋게 봐준 것 같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평가받던 날. 나만의 글을 인정받은 듯한, 문장 속에 숨은 나를 알아봐 준 듯한 그 벅참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지금 이 에세이를 쓰기까지 돌고 돌아 수 년이 걸렸지만, 다시 써보자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다. 교수님은 알고 있을까, 그 한마디가 여전히 나에게 용기가 된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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