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글을 왜 쓰시나요?

by 대한극장옆골목

얼마 전 인터뷰에서 '글을 왜 쓰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생각지 못한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작가 조지 오웰은 자신의 책에서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꼽았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미학적 열정', 사실을 보존하고 싶은 '역사적 충동',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이런 질문이 있을 줄 미리 알았다면 조지 오웰처럼 멋진 답안을 준비했을 텐데.


나는 포장할 겨를도 없이 속마음을 꺼내 보여야 했다. 사실 내 안에는 담아두기 버거운 생각과 감정이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이걸 어딘가에 쏟아내야 했는데, 마침 그 창구가 글쓰기였습니다. 내성적인 저에겐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기보다는, 조용히 연필을 쥐고 종이에 쏟아내는 편이 쉬웠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 쓸 수밖에 없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날 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조금 모자란 대답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을 활자로 옮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내 글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부끄럽지 않게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보기 좋게 4등분을 해서, 깨끗한 화면 위에 정갈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런 글이 하나하나 쌓이고, 누군가가 찾아와 읽어준다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글쓰기광 아멜리 노통브는 말한다. 작가의 내면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적'이 있다고. 이 뱃속에 웅크린 적의의 찬 폭군은 나에게 고난과 역경을 준다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게 하는 구원이라고. 그녀에게 있어 글쓰기는 '적과의 결투'다. 나 또한 집요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내면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와 결투할 박력은 없으니,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잘 지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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