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이 되면 둘째 언니로부터 영상 통화가 걸려 온다.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가득이 (태명, 둘째 언니의 딸이자 나의 둘째 조카) 얼굴도 보여줄 겸 근황도 주고받는 이 연락이 나는 꽤 반갑다. 성인부터 어르신들까지 편안하게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나는 유독 아이들 앞에서 시크해지곤 하는데 그 이유를 '아이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둘째 조카는 붙임성이 좋고 잘 웃는 편이어서 시간이 날 때면 열심히 놀아 주거나 자잘한 기념일을 챙겨 주는 등 이모로서 기본적인 노력은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한 뒤 근처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평소처럼 가득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작은 반응 하나에도 까르르 웃는 나를 보며 형부가 물었다. "아무래도 애는 낳아야겠지, 처제?" 내 옷깃을 향해 뻗는 앙증맞은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전혀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은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남자 친구는 나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고 우리는 자연히 아이 없는 삶을 기본으로 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우리는 누가 묻기 전에 굳이 이야기를 꺼내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죄를 짓는 것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최근엔 이러한 질문이 무례하다는 인식이 제법 퍼져서 인지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결혼을 앞둔 연인을 두고 아이를 낳는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 말들이 오가는 상황은 여지없이 발생했다. "요즘 치고는 일찍 결혼하네요. 하긴, 빨리 하고 빨리 아이 갖는 게 좋지", "여자는 꼭 이걸 챙겨 먹어야 해요. 출산할 때 좋아요" 직접적인 질문보다 더욱 신경을 긁는 이 말들을 나는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불쾌감을 그대로 돌려주거나 그럴 수 없는 상대에겐 적어도 무안함을 주곤 했다. 이를테면 "저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어요. 그보다 그런 사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훅 던지시다니 무례하시네요" 라거나 "아이를 안 낳는 여자는 이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겠네요?" 이 정도로. 혹자는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다거나 심사가 꼬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천만에, 무지는 죄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로 계몽시켜주는 것인데 되려 감사 인사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내게 감사 인사를 한 사람은 없었다.
반응은 두 가지였다. 비혼은 가능해도 결혼 후 자녀 없는 옵션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은 내 말에 코웃음을 치거나 무시했고 아이를 안 낳기로 결심한 부부(또는 여성)에게 왜인지 모르겠으나 적대감을 가진 이들은 내 미래를 저주했다. 서로를 무시하며 대화가 종료되면 차라리 평화로웠다. 문제는 아이 없는 미래를 대단한 과오 또는 인생의 실패로 여기며 우리를 꾸짖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또는 아이 없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두고 보겠다고. 참 이상했다. 아이와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반대의 경우에만 유독 뒤틀린 잣대가 적용되었다. 대부분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을 한 부부에게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씌우거나 '덜 성숙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가 보다'며 악성 추측과 루머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한 때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의 장점을 일부러 더 강조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진짜 바라는 게 아니었다.
단언컨대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가볍게 여긴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아이를 낳기로 한 결정과 똑같이 신중하고 또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부부가 내릴 수 있는 수많은 결정 중 하나에 불과했다. 더 특별한 것도 덜 특별한 것도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저주하는 이들에게 아이 없는 인생의 장점을 구구절절 설명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지난 수년간 스스로에 대해 누구보다 깊고 치열하게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진은영이라는 인간은 아이 외의 요소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아이가 있는 부부와 없는 부부의 대립 구도로 몰아가지 말아 달라는, 부부 또는 한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건 아이의 유무가 아니라는, 비출산을 결심한 사람에게 하자가 있거나 사연이 있으리라는 편견을 갖지 말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남자 친구와 나는 여전히 가득이가 사랑스럽고 친구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며 즐거운 결혼 생활을 꿈꾸는 평범한 연인이다. 그러한 우리가 아이 낳는 행복을 포기하고 아이 없는 행복을 선택한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