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가사리 Mar 24. 2021

놓아버려도 될까

포기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힘에 부칠 때마다 생각했다. "벌써 포기해도 될까" 10대부터 30대까지 일관되게 들어온 말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죽을 만큼 해봐라""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버티는 것이 곧 이기는 것" 등이다. 요약하자면 포기하면 진다는 것인데, 상황 같은 건 늘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버텨본 것이다.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위염약 같은 각종 약을 털어 넣으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솔직히 한고비 넘길 때마다 승리감을 맛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꾸짖던 선배가 먼저 업계를 떠났을 때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또 예전엔 힘에 부쳤던 일이지만, 마치 옷깃에 붙은 날파리 떼어내듯 툭툭 처리해버릴 때 내 자신이 무한 대견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욜로'나 '새로운 시작' 등을 명분으로 퇴사를 감행하는 누군가보다 내가 조금은 더 어른인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했다. 어쨌든 입에 담을 수 없는 100종 이상의 욕과 함께 수백 시간을 버티면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고통이 갑자기 모래성 무너지듯 해결되는 걸 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새로운 힘듦이 찾아와도 무딘 태도를 갖게 했다. 내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갈 만한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면 마음속으로 뒷짐을 지고 "그래 너 잘 왔다. 언제 무너지는지 한번 보겠어" 생각하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업무 다이어리에 막연히 공포스러웠던 일이나 인간관계의 진행 상황을 매일 적어내려가다 보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고통인지, 시간이 해결해 줄 고통인지 가닥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수첩 통계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보통 내 무관심 혹은 포기로 끝나는 경우가 95% 이상이었다. 나머지 5%는 내가 이동해야 해결되는 경우인데 떠날 수 없는 경우엔 대개 그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고통이 진행되나 적응이 되면서 강도는 약해진다. 업무 고통의 경우 내 노력 60%에 시간 40%의 비율로 해결됐다. 내가 모자랄 경우 어쩔 수 없이 시간으로 해결해야 한다. 놀랍게도 시간이 진짜 해결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돈' 때문이다. 월급은 그렇다 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기엔 나이 들어버렸다는 불안감(솔직히 30대가 할 말은 아닌데도)이 벼랑 끝에서 버티게 했다. 게다가 갈수록 늘어나는 내 몸, 내 가족 유지비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 차를 사고 빚을 진다고 하지만, 내 경우엔 갑자기 발견된 몇 개의 충치가 회사에 1년 반을 더 충성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어쨌거나 다양한 이유로 난 버티는 데 도가 터버린 인간이 돼 버렸다. 심지어 도전과 혁신, 스타트업 같은 키워드가 떠오른 2021년이 됐는데도 말이다.   

이전 04화 동경이 길어지면 안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