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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비 Sep 14. 2022

01. 제주도 엽서

나를 선택한 당신




언젠가, 나는 제주도 바다에서 날아온 엽서 한 장을 받았다.



1997년도, 제주도에서 날아온 아빠의 엽서



때는 1997년도, 당시 일이 바빴던 아빠는 제주도로 한 달간 출장을 떠났다. 그때, 일곱 살의 어린 내가 처음 경험한 아빠와의 이별이란, 참 낯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스케치북에 그리운 얼굴을 그렸다. 아빠를 떠올리며 하얀 종이를 가득 채우는 건,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아빠는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린 건지, 다정하게도 출장 내내 내게 여러 날의 엽서를 보내주었다. 한 장의 달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덕분에 나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다가올 앞날을 기대하는 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우편함을 살폈고, 금세 너덜너덜해진 종이를 머리맡에 올려둔 채 잠이 들곤 하였다.








그토록 한결같은 가족의 사랑 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소꿉놀이를 했고, 그러다 지저분해진 손을 툭툭 털고 집으로 돌아오면 계란이 듬뿍 들어간 노란 밥과 폭신한 핫케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학생이라는 명찰을 달았을 땐, 스스로 이름 석 자를 새긴 공책을 챙기며, 또 시험지에 새겨진 동그라미를 바라보며 재잘재잘 부모님께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자라나 사춘기 소녀가 되자 나만의 취향이 생겨났고,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다정한 눈빛 한 번이면 쉬이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었고, 어느새 걱정, 근심이 말끔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사랑 가득한 부모님 덕분에 무사히 스물의 청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즐거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가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는 것 같다. 하늘 아래 마냥 햇살이 내리쬘 수 없듯, 내가 스물다섯이 되던 그해 여름날, 내 삶의 가장 긴 장마는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2015년, 당시 아빠는 또다시 제주로 출장을 떠났다. 우리는 달라진 세상을 증명하듯, 엽서가 아닌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일곱 살의 어린 날처럼 아빠가 돌아올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별이란 나이가 들어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 아빠가 서울로 돌아오는 날이 밝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빠를 마중 나갔다. 기억 너머에는 그날의 모든 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촉감,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살아있다.

저 먼발치에서 아빠를 발견한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빠의 품 안에 쏘옥 안겼다. 그때 아빠의 투박한 두 손에는 내게 줄 자그마한 선물이 들려 있었다. 내가 참 좋아하던 노란색의 초콜릿 상자가.


하지만 왠지 아주 묘한 기운이 우리의 주변을 감돌았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앞섰다.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아빠의 안색이 어둡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사뭇 다른 모습에 이리저리 살펴보며 괜찮은지 물었지만,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내 마음에 걸렸지만, 별일 아니겠거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불길한 일들이 계속됐다. 아빠의 코 주변이 이상하리만치 붓기 시작한 것이다.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아빠는 안면에 처음 느끼는 통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비인후과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빠는 일시적인 염증의 연장선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며 경과를 두고 보고, 그 후에도 진전이 없다면 다른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야의 유명한 병원을 이리저리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대학병원에서는 정밀검사를 권유하였고, 결국 아빠는 오랜 시간에 걸쳐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토록 궁금하던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암, 비강암이었다.










[나를 선택한 당신]


아주 어린 시절, 아빠는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시곤 했다.

아빠의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듣는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꿈을 꾸게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똑같은 나날이 펼쳐짐에 가끔은 지루하고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삶이란 그 자체로 '기적'과도 같다는 것을.



언젠가, 아빠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예나야, 알고 있니?
인간은 사실 이 땅에 오기 전까지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던 별이었단다. 저기 저 먼- 하늘 위에 떠있는 다채로운 별들. 그러니 우리는 사실 '우주의 조각'이자 '소우주'란다.
다시 말하자면, 잠시 우주에서 지구별로 여행을 온 여행자들인 셈이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겠지?
그래서 우리는 광활한 우주, 수억 개의 별 가운데 이 땅에서 만날 인연을 미리 계획하고 선택하였단다.
그러니까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은 모두 당시 서로가 '선택'한 하나의 별이란다.”

그럼 아빠는 왜 하필 '나'를 선택하였냐는 질문에 당신은 대답하였다.
“아빠는 네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지."     


ⓒ 2021. (김아란) all rights reserved.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포함하여 아빠를 만나 당신의 딸로서 살아온 모든 세월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 수억 개의 빛나는 별 가운데 서로를 선택하였고, 그로 인해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사실 나는 이 이야기 덕분에 내게 아픔을 준 사람을 마음에서 놓아 보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유독 지나간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에 커진 상처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만큼 쉬이 감정을 놓아 보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연조차 내가 '선택'한 하나의 별일 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보았다. 곰곰이 생각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인연 가운데에는 평생을 함께 할 가족과 같은 인연도 있지만, 하나의 시절만을 함께 보내는 '시절 인연'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름다운 시절이 흘러가면 끝이 있기에 상처가 남을 수는 있지만, 애초에 상처를 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 인연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또한 내가 선택한 인연인 만큼 감정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으며, 어떤 아픔을 남겼든 나의 배움을 도왔으니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걸 느꼈다.


조금은 우스운 방법이지만 때때로 인연의 상처에게서 나를 지켜내는 데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 우스운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감정적 자유였다.



ⓒ 2021. (김아란) all rights reserved.

오래전 그날, 나는 아빠에게 되물었다.

"그럼 나도 아빠와 같은 이유로 아빠를 선택한 걸까?"     


답을 알면서도 묻는 내게 아빠는 그저 지그시 웃음 지었다.












2015년 여름, 아빠는 비강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아빠는 한참 동안 우리 가족을 위로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참 아빠다운 행동이었지 싶다.


우리 네 사람은 둥글게 모여 앉아 생각에 잠겼고, 침묵이 흘렀다.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선택한'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어릴 적 내가 받은 제주도 엽서를 다시 읽을 때면 오래전 그날, 푸른 바다에서 편지를 적어 내려가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을 발견할 때면 그려지는 다정한 얼굴이 있다.


가끔씩 생각한다. 아빠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혹 지구별로 여행을 떠나오기 전 그때처럼 다시금 별이 되어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고 계실까? 아니면 그토록 좋아하던 제주도 바다에 홀로 계신 걸까? 어쩌면 같이 가기로 약속한 우리가 곁에 없어서 곤란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지금 어디에 계시든 아빠는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그저 느껴지는 무엇이다. 마음으로 알 수 있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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