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비 Sep 19. 2022

02. 생활의 변화

구급차




비강암은 발병률이 흔치 않은 암이다. 초기엔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질병과 유사하여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하는데, 아빠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암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불필요한 치료를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엔 증상이 없거나 코막힘, 후각 감퇴, 콧물 및 코피 등 비부동염과 유사하여 조기발견이 어렵고, 대부분 진행되어서 늦게 진단된다. 반복적인 코피가 날 경우 의심할 수 있고, 암이 주변 구조를 침범하는 양상에 따라 다른 증상을 보인다. 안와를 침범할 경우 안와 주위 부종, 결막부종, 안구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외안근의 운동 장애에 의한 복시, 안구돌출, 시력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고, 구강을 침범할 경우 의치나 치아가 흔들리거나 개구장애(입을 열기 어려움), 경구개의 종괴가 관찰될 수 있다. 안면을 침범할 경우에는 안면부 비대칭, 안면의 통증이나 이상 감각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밖에 뇌신경을 침범하면 여러 뇌신경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출처 : 비강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하루아침에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변화했다. 2주에서 4주에 한 번, 아빠는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점차 커져만 가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두렵고 힘겨웠다.

더군다나 비강암이었기에 코 주변 안면 근육 통증으로 인해 식사를 하는 등의 기초적인 생활이 점차 어려워졌다. 우리는 평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일상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아빠는 치료에 매진했다. 병원에 갈 때면 우리는 아빠가 끝내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꼭 동행하였다. 

엄마가 함께 가는 날이면, 나는 현관문을 나서는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날이면, 하루 일과 중에도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두 분이 병원 의자에 앉아서 느낄 감정의 무게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풍경 또한 달라졌다. 책을 읽고, 기타를 연주하고, 바둑을 두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기던 아빠였지만, 그보다는 돌아누워 잠을 청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날이 잦아졌다.

나는 가끔 아빠의 잠든 머리맡에 앉아 한참 동안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잠든 모습을 내내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아빠는 잠든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날이 수없이 많았을 거란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그토록 힘겨운 치료 중에서도 아빠는 가장으로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혹여나 내가 늦게 귀가할 때면 당연한 듯 마중을 나왔고, 언제나 나의 일상을 궁금해했다. 

내일은 어떤 일정이 있는지, 요즘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또 밖에서 별일은 없는지. 나는 이전과 다름없이 나의 모든 것을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는 항암치료조차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권유했다. 

사실상 현재 상황이 매우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도, 희망을 낭비할 수도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아빠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였다. 항암치료 때와는 달리 거의 매일같이 병원에 갔다.

코 주변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얼굴에 직접적인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그로 인해 피부가 부분적으로 새까매졌다. 동시에 체력마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빠는 변함없이 나의 ‘하나뿐인 개그맨'이었다.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당신은 참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 힘겨운 투병생활 중에도 아빠는 실없는 농담이나 남다른 재치로 나를 꺄르르 웃게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면 지금 우리의 상황이 왠지 ‘별일 아닌 듯’ 느껴졌다. 마치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혹은 시간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는, 분명한 정답이나 해결방안이 존재하는 가벼운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욱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아빠의 투병 생활이 길어질 때쯤, 나는 집 앞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나도 모르게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앉아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럴 때면 홀로 되뇌었다. 지금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은 분명히 지나갈 거라고. 그리고 나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인 거라고.


하지만 더 이상 방사선 치료조차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병원 측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방사선 치료를 그만둔다면 무리해서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코 주변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술 도중 한쪽 눈을 희생해야만 하고, 그마저도 암세포가 모두 제거된다는 보장은 없기에 앞으로의 생존에 높은 확률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다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 하는 건데, 왠지 이번만큼은 버겁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구급차]


요즘도 가끔 내 앞을 급히 지나가는 구급차를 발견할 때면,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누군가는 이전의 우리 가족처럼 외롭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감히 그 아픔을 가늠하기란 어렵지만, 그 고통을 짐작할 때면 가슴이 저미고 아파온다. 경험해 본 이후에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의 작별 후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내 앞을 급히 지나치는 구급차를 발견할 때면, 작은 기도를 보낸다.


삶의 모든 곳에서 매일같이 서로를 스쳐 지나며, 세상 사람들 모두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에 세상 사람들 모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 순간, 외롭고 힘겨운 나날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바라건대 부디 그 사실을 떠올리기를. 그리고 반드시 힘을 내 일어설 수 있기를.

마음을 담아 작은 기도를 보낸다.












아빠의 투병 중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가족의 가치'였다. 가족이란 함께 한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며,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함께 하는 서로가 있기에 두렵지 않았다. 서로가 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갖고 마지막 선택을 했다.


2016년의 봄날, 아빠가 수술대에 올랐다.














이전 02화 01. 제주도 엽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