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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비 Oct 11. 2022

11. 진심이 닿을 때




뮤지션 ‘빌리어코스티’에게 연락을 취할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할지 한 달 정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우선 조심스러웠다. 내가 가진 사연이 방대하고 무거워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염려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부담을 주는 것은 실례였다. 또 만약 연락이 닿는다고 하여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상대의 선택에 달려있기에 예상이 어려웠다.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추진력이다. 선택의 과정이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결정 후에는 훗날 후회가 없을 만큼 나아가 보자는 것이 평소 가치관이다.

그리하여 온라인 또는 지인의 지인 등을 통하여 연락을 취하는 방법보다는 직접 찾아뵙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콘서트를 예매했다. 또한 가죽 디자이너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선물로 드릴 ‘기타 피크 케이스'를 직접 만들었다. 어떤 선물이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정성을 표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선택한 결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이야기를 전달할 편지를 적었다.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적기보다는 핵심적이지만 간단한 말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남겼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내가 원하는 결과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진솔한 마음뿐이므로.

하지만 진심을 다한 후에도 상대방이 거절을 표한다면 어쩔 수 없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인연이 아닌 셈이다. 다음 단계를 모색하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9년 2월, 빌리어코스티의 콘서트에 갔다. 그리고 편지 전달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바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하여 실망하지는 않았으나 걱정이 되기는 했다.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흘러 메일로 첫 연락이 왔다. 비로소 이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메일을 주고받았고, 결국 작업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서로가 처음 해보는 작업 방식이었고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도 앞섰지만, 내겐 전문가가 함께 한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다.


비로소 일 년이 넘는 예나비의 첫 장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프로듀서 빌리어코스티와 함께]


빌리어코스티의 본명은 홍준섭이다. 준섭 오빠는 프로 중의 프로이다. 그는 오랜 시간 쌓아온 전문가 다운 통찰력으로 결정이 빠르며, 그 과정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본인만의 뚜렷한 방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뒤돌아보면 고마운 일이 참 많다. 작업을 진행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힘을 주는 오빠가 정말 든든했다.

음악 작업이 처음인 만큼 많이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았던 나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건네준 것도 오빠였다. 그런 오빠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내 삶의 큰 행운이었다. 


준섭 오빠와 가장 우선적으로 한 건 아빠가 남긴 음성, 악보 파일 등을 교류하는 일이었다. 제일 큰 난관은 본래 주인이 있는 음악을 다른 감성을 가진 두 사람이 연결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이 어려운 작업 과정이 그나마 유려하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도 준섭 오빠의 뛰어난 음악성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 유언을 실행함에 있어 내가 아빠의 음악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인 건지,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건지 도통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예로 아빠의 음악 가운데 남성적 색채가 강한 곡은 내가 가창할 수 없기에 다른 남성 뮤지션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곡이 적었다. 아빠와 나는 시대와 성별, 감성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전달자가 아닌 제작자의 포지션으로 프로젝트에 임해야 하는 것이기에 과연 이 모든 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의 음악을 내가 가창할 수 없다면 큰 그림을 그리는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가창하는 가수의 역할이 되는 것도, 완성되지 않은 가사를 손보거나 새로이 창작하는 작사가가 되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프로젝트에 임하자 보다 큰 책임감이 생겼고,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의 정리를 마치자 첫 곡을 선정하는 회의를 했다.

아빠의 곡 가운데 내가 부를 수 있으되, 첫 번째로 발매할 만한 곡이 무언지 고민했다. 그러나 상의 끝에 아빠의 곡에서는 나의 '자기소개'로 적합한 곡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처음과 시작이 중요한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가창자인 나의 정서에 가장 알맞은 곡을 우선 선보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로 했다. 준섭 오빠가 작곡을 하고, 나는 작사를 했다. 그리고 첫 곡인만큼 아빠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한편 아빠가 작곡한 곡을 첫 번째로 하지 않는 선택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는 당신이 사랑한 나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하셨기에 가창 또한 유언의 실행임을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곡을 첫 번째로 가창할 수 있게 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더불어 작사를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음악으로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값진 일이었다.


[예나비]


작업이 조금씩 진전되자 나는 의미를 담은 예명으로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어떨지 고민이 됐다.


자연스레 30년 전 그날, 아빠가 음악을 만들던 나날이 떠올랐다. 우리의 다락방과 아빠의 투병 그리고 유언까지. 나아가 그 유언을 실행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자 새삼 놀라웠다.

그러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나비효과.'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곳곳의 사건이 쌓여 추후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나비효과는 지금의 나의 상황과 닮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나비'라는 예명을 지었다. 나의 본명인 예나와 나비효과를 합성한 용어이다.


이후 예나비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나는 다시 이전의 길 또는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예나비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삶에 정해진 방향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프로젝트의 진행 기간을 정해놓지 않았다. 어쩌면 삶의 많은 나날이 지날 수도 있다. 허나 조금은 느릴지라도 꾸준히 해나간다면,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초반에 나를 짓누르던 책임감도 조금씩 사라지고 이제는 즐기는 과정에 있다. 미약할지라도 시작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작은 성과일지라도 결과가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지난날의 모든 과정 덕분에 지금의 이 책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의 소중한 예나비야.

이 작은 날갯짓의 끝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머나먼 하늘에 이 노래가 닿는 그날까지 부디 멈추지 말자. 그저 꾸준히 함께 날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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