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수집: 겨우, 서른
봄과 여름 사이를 줄타기하는 날씨에는 실내에 있는 게 괜히 죄스럽다. 이 생각을 만인이 공용하고 있음은 삼삼오오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모두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볕을 쬐러 나갔을 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꿀이기는 한데, 그래도 가끔은 나가서 커피를 들고 걷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동행인은 두 명이었는데 편의상 친구 1호와 친구 2호로 칭하겠다. 친구라는 단어는 물리적인 나이를 초월하니까 말이다. 친구 1호와 2호, 그리고 나는 전부 다른 년도에 태어났다. 1호는 91년 생, 2호는 92년 생, 그리고 나는 93년 생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11학번이다. 2011년도에 각각 다른 신학대학교에 푸릇푸릇하게 입학했다. 1호는 타 대학에 입학했다가 다시 신학대학교에 입학해 제 나이보다 한 학번이 늦고, 2호와 빠른 년생인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그들은 출생 연도를 근거로 자꾸 자신이 오빠라고 어필하는 것 같지만, 이 글에서는 친구 1호와 친구 2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친구’라는 단어는 물리적인 나이를 초월하니까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오늘 점심에 나와 두 동행인은 좋은 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1호는 이제 막 목회를 그만두겠다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2호는 이제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의 초입에 들어섰고, 나는 여전히 봄과 여름 사이를 줄타기하는 날씨처럼 애매하고 어중간한 인생을 자처하고 있다. 그런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할 주제가 무엇일까. 뻔하다. 30분이라는 짧고 굵은 시간 동안 우리는 짧게라도 ‘앞으로의 날’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철이 없는데, 그래도 철이 들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 구실을 하고 싶다는 말을 대충 둘러서 한 나에게, 그래서 또 어물쩡 결정을 미룬다는 나에게 친구 2호가 띵언을 날렸다. “서른에 시작하기 늦은 건 키즈 모델밖에 없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엄청난 띵언 앞에서 나는 잠깐 이해하기 위해 얼떨떨했다가, 이해한 후에 탄성을 내질렀다가, 결국 늦은 밤까지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하다못해 중고등학교 교복 모델도 할 수 있다고. 서른에 늦은 건 키즈 모델밖에 없다고. 그의 말인지 인용문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서른 즈음에 놓인 세 명의 30분도 채 안 되는 대화가 오늘의 나에게는 어쩐지 개운했다.
<겨우 서른>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구자, 중샤오친, 왕만니 세 명의 여자에게서 골고루 내 모습을 발견한다. 몰입하다가 간혹 눈물이 나기도 한다. 세 여자가 직장 생활, 결혼 생활, 인간관계와 삶을 꾸리는 모습에서 딱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정말 이해가 가거나, 정말 이해가 가지 않거나.
드라마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임신을 한 중샤오친에게 상사가 승진을 제안한다. 너는 이 회사의 초기 멤버이고, 큰 사고를 친 적도 없고,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노력했으니 이제 야망을 좀 가져보면 어떻겠냐고. 운영팀으로 승진을 제안하는 상사에게 그녀는 싫다고 대답한다. 임신을 했으니 더 바쁜 부서에 가는 것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을 모르는 상사는 중샤오친을 답답해하며 말한다. 30대가 되면 크게 한 번 기회가 오는데, 그 기회를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기회가 이미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상사는 자신의 제안을 승낙한 줄 알았지만 사실 그녀가 생각한 기회는 임신이었다.
남편 천위는 현실, 책임감, 과거의 기억 등 다양한 이유로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았고 중샤오친 자신도 남편의 뜻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 임신을 하고 보니 아빠, 엄마, 아들의 옷을 나란히 널어둔 친구 구자네 빨래가 부럽다. 그녀는 30대가 자신에게 가져온 기회가 임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이는 태어나지 못하고, 그 이후 그녀의 삶이 급속도로 변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적잖이 놀랐다. ‘30대가 가져 올 기회’를 당연히 ‘일’의 영역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중샤오친이 답답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일상으로 복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30대의 기회’가 굳이 일에 갇힐 이유가 없었다. 삶의 영역은 다채로운데 굳이 한 영역에서 기회가 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일, 가정, 관계, 신앙, 경제력, 그 밖의 예측할 수 없는 영역 어디서든 ‘30대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철없어 보이고 매력 없던 중샤오친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성숙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드라마에서는 살면서 30대에 꼭 한 번 기회가 올 테니 그것을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친구 2호는 서른에 시작하기 늦은 것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고 했다. 평소 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주시는 한 분이 언젠가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짱짱하고 창창한, 잘못되기엔 너무 늦은 당신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응원합니다^~^.” ‘짱짱하고 창창한’이 참 좋았다. ‘잘못되기엔 너무 늦었다’는 표현은 마음에 훅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나는 사실 잘못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10대와 20대를 다 보내 놓고 이제 와서 잘못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잘못되기엔 너무 늦었지만, 또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 키즈 모델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일은 영영 없을 테니 언제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10년 동안 어쨌든 한 번 이상의 기회는 올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굳이 내가 왜 머리를 싸매고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내일의 나는 또 습관처럼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기점으로 더 넓은 영역을 더 넓은 시야로 보면서, 짱짱하고 창창한 자아를 인식하면서 주문을 욀 것이다. 나는 잘못되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또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
오늘의 위로는 '겨우, 서른'이다. 서른 즈음에 있는 많은 91년, 92년, 93년 생 친구 23988092873498호에게. 겨우, 서른이다. 우리는 잘못되기엔 너무 늦었는데, 또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짱짱하고 창창한 자아를 탑재하고서 오늘도 내일도 움직여보자. 서른 즈음의 우리가 마흔 즈음이 되었을 때, ‘30대의 기회’를 놓쳤다며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