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고민하는 데 나이가 어디 있어

위로 수집: 우리 집 청소년과 소설

by haley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출판사에서 청소년 문학을 양장본까지 두 개의 버전으로 출간하는 것을 백분 이해한다. 주옥같은 작품들이 ‘청소년’ 매대에만 머물러 있어 많은 어른들이 보지 못한다면 내가 편집자라도 속상할 것이다. 영 어덜트 소설, 성장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몸 담고 싶은 장르이기도 하다.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는 자신 안에 있는 아이가 글을 썼다고 표현했다.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때때로 곱씹는다. 나 또한 내 안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이 아이는 아마 죽을 때까지 어른인 나와 한 몸에 공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희영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때때로 그 아이가 불쑥 나와 글을 쓰기도 한다.


청소년 소설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못 참겠을 때는 자연스레 우리 집 청소년에게 독서 바통을 넘긴다. 우리 집(친정 집)에는 17살짜리 청소년이 있다. 4남매의 막둥이인 이 청소년은 얼굴과 성격이 나와 매우 닮았으며 취향마저 비슷하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레 이 청소년에게 나의 청소년 시절을 투영한다. 아직 덜 컸으나 명목상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스스로 잘했다 생각한 일은 ‘공부에 방해되는 책’을 읽지 말라는 주변 어른들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문학을 가까이한 것이다. 모든 책이 다 좋겠지마는 찬찬히 쌓아온 문학 책들 덕에 지금의 내가 삶을 더 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얼굴과 성격이(심지어 MBTI도) 나와 똑같은 이 청소년이 문학을 가까이하며 삶을 잘 견디고, 누리고, 운영하기를 바라는 게 책을 건네는 띠동갑 언니의 마음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는 독후감이나 수행 평가처럼 책을 읽어야만 하는 소중한 숙제들이 있다. 우리 집 청소년 또한 어차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거나 수행 평가를 해야 하니 큰 언니가 가져다 안기는 책들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가져다주었더니 창의 시간에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카톡이 왔다. 옳다 커니! 그 이후로 내가 읽은 책을 가져다 나르는 동시에, 신간이 나오면 친정 집으로 바로 보내기도 한다. 이 청소년의 책장은 날이 갈수록 두둑해지고, 함께 ‘구병모’ 작가의 신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실 이 정도면 덕질 메이트를 키운 것 아닌가 싶어 내심 뿌듯하다.



몇 년 전,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펑펑 울면서 읽었다. 몸 안에 있는 물이란 물을 눈으로 다 뿜어낼 기세로 울어댄 후 아낌없는 박수와 함께 이 책 또한 우리 집 청소년에게 넘겼다. 여느 때처럼 재미있다는 카톡을 받고 ‘이번에도 나의 큐레이션이 성공했군’하며 내적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이꽃님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친정으로 한 권을 주문했다. 지난번 그 재미있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는데 네가 먼저 읽고, 다음에 내가 읽자. 계획은 착착 이루어졌다.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이라는 제목의 책은 우리 집 청소년의 손에 머물다가 지난주가 되어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이제야 좀 읽어볼까 싶어 책을 집어 들었는데 군데군데 페이지 귀퉁이가 접혀 있었다. 오호라? 우리 집 청소년의 흔적이었다. 독후감 숙제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짐작하면서도, 이 청소년이 과연 어떤 문장에서 멈칫하며 줄을 그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그 문장들을 톺아보았다.(사실 책에 친 밑줄은 개인의 삶과 생각에 연관되어 있으니 삶의 조각이 허락 없이 공개되었을 때 당사자가 불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집 청소년은 내 글을 읽지 않기 때문에 일생 불쾌한 일이 없을 예정일뿐더러, 설령 들킨다고 해도 해당 청소년에게 허락을 구할 다양한 협상안을 가지고 있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안심하고 적어본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가족이라서 가능하다.)


인생은 늘 엉망진창이지만 혹시 아는가. 이 녀석들의 바보 같은 행동이 엉망으로 엉킨 인생을 풀어놓을지. (p.34)
인생은 자주 장난질을 하고, 나는 아주 가끔 기회를 던져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왔는지 알지 못한다. 용서받을 기회, 달라질 기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줄 기회들. (p.61)
못난 어른들은 네 앞길이나 잘 챙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 생각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너나 잘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하는 말들이 비겁해지라는, 눈을 감으라는 말인 줄도 모르고. (p.88)
“잘 봐라. 이게 네 인생이야. 달리면서 절대 공을 놓쳐선 안 돼.”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최 감독의 말이 맞다. 인생은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저 작은 공 같은 것이다. 그것을 지킬지, 빼앗길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p.110)
모두 공을 보고 뛰지만, 한 곳을 향해 뛰지는 않는다. 그게 축구고, 인생이다. (p.112)
인생은 끔찍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p.165)
인생이 당신을 구해 줄 거라고? 개소리 말라지.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구해야만 한다. (p.181)


우리 집 청소년의 흔적을 들여다보며, 나는 반복되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인생’

물론 이 책의 표지에서부터 ‘인생’에 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할 거라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까지 ‘인생’이 들어간 구절들에 밑줄을 그어놓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집 청소년은 아무래도 이 책을 통해서 ‘인생’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수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인생. 아빠와 엄마, 두 언니와 한 오빠, 한 형부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자신의 인생.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는 자신의 인생. 친구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인생. 어른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인생. 마주하는 모든 상황과 환경 앞에 선 자신의 인생. 언니로서는 평생을 알 수 없는 우리 집 청소년 만의 인생. 그렇게 묵직한 책인지는 읽어봐야 알 테지만, 이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해 고민했을 우리 집 청소년을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더 많은 책을 가져다 안기고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집 청소년을 통해서 아동에 대해, 청소년에 대해, 어른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왔다.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이 청소년은 아직 아동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 당시) 우리 집 아동은 어느 날 언니 학교에 놀러 가도 되겠냐며 문자를 보내왔다. 집과 학교가 버스 한 번이면 충분히 오가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래, 와’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고 도착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갔다. 같이 저녁을 먹고, 학교 주변 마카롱 집에서 사이좋게 마카롱도 두 개씩 사 먹고 선선한 날씨에 광화문까지 걷는데 우리 집 아동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래,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


당시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 아동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맛있는 저녁과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선선한 날씨에 걸으며 수다를 떠는 소소한 행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소소함이 우리 집 아동에게까지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제야 생각해보니 내 옆에 있었던 그 아동은 이미 학교와 학원, 교회학교, 오케스트라 등 일주일 동안 제시간에 도착해야 할 장소가 상당히 많은 인생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내 옆에 있는 이 아동이 우리 집 귀여운 아기가 아니라 아빠와 엄마, 나와 다른 동생들과 똑같은 인생임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카롱을 먹으며 광화문을 함께 걷던 아동은 청소년이 되었고, 지금은 ‘겨우, 서른’ 즈음 밖에 안 된 큰 언니와 책을 매개로 함께 인생을 고민하고 있다. 수동적으로 살지 말고 능동적으로 살자. 남에게 내 인생을 맡기지 말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자. 남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을 꾸리자. 때때로 인생을 위협하는 것 앞에서 마냥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이겨낼 힘을 갖자. 내가 나에게 하는 다양한 잔소리가 책을 통해 전해진 걸까. 우리 집 청소년은 작년 말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때 능동적으로 이곳저곳에 묻고, 정보를 찾고, 기를 쓰고 고민하며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 갔다.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의 의견과 상관없이 인생의 한 면을 자신이 책임진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하냐 말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이 작은 책임들이 모여 나중에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 집 청소년이 밑줄을 그어 넘긴 문장들을 내가 소화할 차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할까. 독서 중에 우리 집 청소년의 흔적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잠시 그녀를 위해 짧게 기도한 후 다음 페이지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어른인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오늘의 위로는 '우리 집 청소년과 소설'이다. 삶에서 우위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두 단어를 애틋한 마음으로 읽어내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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