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수집: 같이 버티고 있는 것들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두 번째 집이다. 새로운 집은 잘 조성된 천을 따라 직장까지 30분 정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같은 직장, 다른 부서에 있는 나와 남편은 한 사람이 늦게 끝나면 다른 한 사람이 기분 좋게 걸어갈 수 있는 지금의 집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오늘까지 퇴근 후 혼자 천을 따라 걸어서 집에 온 횟수가 세 번이다. 처음 출근했던 한 겨울에는 퇴근 시간이 늘 어두웠는데 봄이 왔는지 이제는 제법 밝다. 처음 집에 걸어가던 날, 과감히 구두를 신고 천에 발을 내디뎠다. 이사를 준비할 때부터 여러 차례 집까지 가는 길을 지도로 찾아봤다. 지도를 보며 남편과 함께 곧게 뻗은 천을 걸어 다닐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삼 개월 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이제는 제법 길이 눈에 익었다.
처음 집에 걸어가던 날, 나는 일직선인 천을 걷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고 내 위치와 목적지를 확인했다.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찢어져 흐르고 있긴 하지만 우리 집은 가장 굵은 물줄기를 직선으로 따라가면 나오는 아주 단순한 길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 번째가 돼서야 천에 꽃이 얼마나 피었는가를 볼 수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것은 두려움이 많다는 뜻이다.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향을 가졌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간을 늘 낯설어하면서도 나는 자의로 타의로 매번 새로운 것을 앞에 두고 있다. 생각해보면 타의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엔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늘 에너지를 쏟고 힘들어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 새로운 것을 찾아온 새로운 직장에, 새로운 터전에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게 싫지만은 않다.
개나리가 가득 핀 천을 따라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집까지 걸어온 저녁. 김숨 작가의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 2017)>라는 책을 읽다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높이, 두려움을 느꼈던 처음 시간까지 돌아가 본다.
초등학교 일 학년. 첫 등교 전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내가 다닐 초등학교에 갔다. 오늘은 엄마와 같이 가지만 내일부터는 너 혼자 가야 한다며 학교 정문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큰길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은 초등학교 뒷문에서 더 가까웠다. 좁고 복잡한 골목을 여러 차례 통과해야 하긴 했어도 등교가 익숙해지고 난 후 나는 매일 같이 뒷문으로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가장 쉽고 안전한 길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날 엄마와 함께 학교까지 향할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날, 나는 엄마가 일러준 대로 기억을 더듬어 걷다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울상이 되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학교가 없어!" 내가 기억하는 한 늘 일을 했던 엄마인데도 집으로 돌아갔던 그날 아침에는 엄마가 집에 있었다. 엄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학교가 왜 없어. 학교가 어딜 갔겠어." 그리고 나는 다시 가방을 메고 엄마와 함께 학교로 갔다. 나 혼자 갔을 때는 가도 가도 없던 학교가 엄마와 함께 가니 떡하니 길 끝에 서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처음으로 두려운 감정과, 그 감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목적지가 나온다는 법칙을 알았던 것 같다. 때때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본능적으로 질주하는 지금의 습관이 생애 첫 등교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뒤편으로 흐르는 천은, 그 끝을 찾아 올라가면 한강이 나온다고 한다. 서울에서 살던 집이 꼭 한강 옆이었는데, 그 한강이 흐르고 흘러 도착하는 곳에 새로운 집을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한강을 따라 걷고, 산책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홀로 앉아서 답답함을 토로했던 시간들이 부지런히 달려서 지금의 동네로 흘러들어온 기분이다. 내가 부지런히 달려온 만큼, 똑같이, 부지런히.
나는 늘 내가 게으르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발만 담그고 있을 뿐이라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보다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다고. 밤늦게까지 깨어있다가 아침에 잠들기 일쑤라고. 무엇보다 남들에 비해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고. 그런데 공식적으로 게으름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내가 단 한 번도 부지런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쉴 새 없이 어딘가에 소속됐고, 무언가를 시작했고, 누군가를 만났다. 그리고 딱 그만큼 두려움을 느꼈고 에너지를 쏟았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좁디좁은 방에 박혀 책을 펴고, 드라마를 보고, 핸드폰과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러니까 옷과 책상과 책장에 둘러싸인 본가의 좁은 방에서의 시간들은 결혼을 하고 터전을 옮길 때 부지런히 함께 왔고, 거기에 한강 옆 신혼집에서 쌓은 시간들이 얹혀 가속도가 붙은 채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아주 부지런히.
혼자 집까지 걸어가던 첫날, 천을 따라 걷던 나는 쉴 새 없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구두를 신고 이어폰을 끼고 주변을 볼 새도 없이 시선을 지도에 처박고 걷던 나는, 아마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문득, 엄마한테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엄마, 학교가 없어. 엄마, 이 길이 맞는 거야? 엄마, 내가 잘 가고 있는 게 맞아?
엄마, 학교가 진짜 있는 게 맞아? 엄마, 그 학교가 내가 갈 학교가 맞아?
나는 이제 엄마가 웃으며 "학교가 없긴 왜 없어." 하고는 손을 잡고 데려다 줄 나이는 아니다. 고로 엄마한테 전화할 수는 없다. 사실 전화를 한다고 해도, 엄마도 학교가 있는지 없는지 학교에 가는 길이 맞는지 그 학교가 진짜인지 그 학교가 내 학교인지는 모른다. 그때의 엄마는 내 두려움과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의 엄마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엄마도 엄마의 학교를 찾아가기 바쁘다. 고로 나는 그날 엄마가 가르쳐준, 그리고 심어준 습관대로 두려움을 느끼는 딱 그만큼 천을 따라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없다.
학교고 집이고 결국엔 다 형체가 있다. 곧은 골목 끝에, 천을 따라 걷는 길 끝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러니 그 이상 버텨내는 것은 내 몫이다. 구두를 신어서 발이 아프더라도, 길이 너무 길게 느껴지더라도, 인적이 없어 무섭더라도 부지런히 버텨내야 부지런히 걸을 수 있다. 또 부지런히 걸어내야 같이 버티고 있는 그것들을 부지런히 찾을 수 있다. 나만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 집도 내가 올 때까지 함께 버티고 서 있다고 생각하니 어떤지 뜬 구름 잡는듯한 기분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다.
오늘의 위로는 '같이 버티고 있는 것들'이다. 오늘도 내일도 어서 내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며 같이 버티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