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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Jan 23. 2019

PORTO. 13

포르투 21일, 살아보는 여행의 기록


1. 이제는 단골가게가 되어버린, Namban


너무 좋아하는 가게를 세 번 째 방문했다. 사장님이 내 이름을 물어보셨고, 나를 kay라고 소개했다. miguel과 sako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식당, Namban



오늘의 메뉴는 계란과 닭고기가 들어간 커리. 한 번의 식사에서 너무나도 다양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배를 불리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정말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식사를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 커리

은은하게 나는 고수 향기, 그리고 부드러운 계란과 닭가슴살의 식감. 메인요리이고 분량이 가장 많으니,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너무 싱겁지도 너무 짜지도 않은 적당한 간의 세기를 유지했다. 커리를 반쯤 먹었을 때 반숙된 노른자를 터뜨려서 커리랑 섞어 먹었는데, 좀 더 고소하고 단단한 맛이 났다. 닭가슴살과 고수 잎을 같이 싸먹는 것도 괜찮은 조합이었다. (저는 고수를 사랑해요)

- 하얀색 브로콜리 샐러드와 1가지 찬

메인 요리 먹다가 입을 리프레시하고 싶을 때, 하나씩 집어먹었다. 이 곳에서 처음 하얀색 브로콜리를 먹어봤고,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물렁하지도 않은 정도로 적당히 데쳐졌다. 그 위에 깨소금을 많이 뿌려 놓으셨는데 아주 고소한 깨향이 확 올라와서 계속 식욕 돋는 상태가 유지됐다.

나머지 한 가지 찬은 설명을 제대로 못들어서 뭔지 잘 모르겠는데, 달콤한 장아찌의 느낌이 났다. 양념이 야채의 속 까지 충분하게 베어있었는데, 너무 오래 푹 익혀낸 정도는 아니라 아삭함은 살아있었다.

- 스프

파와 감자가 들어간 스프. 지금까지 이 곳에서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간이 셌다. 그렇다고 과한 수준은 아니었고, 한국 기준으로 적당히 짭짤하게 먹을 수 있는 수 있는 정도. 맑은 국물이었으면 좀 심심했을 뻔 했는데, 다진 감자가 들어가서 살짝 묽으면서 씹히는 식감이 있다. 그냥 물을 마시는게 아니라, 근기가 있는 음식이 나를 채워주는 기분.


Namban

Rua dos Bragas 346, 4050-122 Porto



2. 아몬드 카푸치노가 맛났던 까페, Early



최애 밥집 바로 옆, 인스타 갬성의 까페 발견. 이 나라 까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콘센트도 있다. 크루아상에서 허브 향기가 났고, 아몬드 카푸치노는 정말 고소했다. 서빙해주시는 직원분이 진짜 너무 아름답고(..) 친절했다. 창가에 앉아서 노트북펴고 글 쓰기 좋은 환경이었고, 실제로 책읽고 글 쓰거나 노트북 하는 손님들이 옆에 있었다. 숙소 근처에 생각보다 힙한 곳이 많아서 놀랍다. 또 갈 예정!


Early

Rua dos Bragas 374, 4050-122 Porto




3. 아티스트 바이브가 넘쳤던 구제샵, Yesterday



가게안에 있는 주인 친구? 형아?랑 눈이 마주쳐서 들어간 구제샵. 저번엔 그냥 지나쳤는데, 들어가보길 잘했다. 역시 궁금하면 일단 들어가봐야한다!


이 형아는 아티스트 바이브가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이었고, 자기의 museum이라며 열성적으로 나에게 이 곳 저 곳을 소개해줬다.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것 처럼 보이면서도, 전체적인 공간의 분위기는 단단하게 이 사람 취향으로 묶여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가려고 인사했더니, '스티커 줄까?' 라고 물어보길래 yes! 라고 답했고, 형아가 직접 만든 'power of yes' 스티커를 나에게 건네줬다. 에너지 넘치는 예술가의 기운을 느꼈다!


Yesterday, 2nd Hand Shop

Rua da Torrinha 121, 4050-611 Porto




4. 살아보는 여행의 또 다른 장점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니 날씨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된다. 곧 해가 뜬다는 것을 알고, 그 때도 나는 여기에 있을테니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막연하게 나가서 빛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흐린 날에는 날씨가 흐리니까 특별한 무언가를 안해도 마음이 편하다. 자연스레 더 차분하고 정적인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이것 자체가 또 다른 여행의 모습이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어 좋다.


제목과 살짝 다른 얘긴데, 이 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덜 바쁜 삶을 사는 느낌이다. (물론 사람들이 치열하게 일하는 공간에 가보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하루의 중간에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휴식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고, 대개의 많은 식당들은 항상 오전 장사 후에 몇 시간동안의 브레이크 타임을 운영한다. 그리고 저녁 7시가 되면 다시 영업이 시작 된다. 조금씩 이 호흡에 적응해나가고 있는데, 한국가면 정신 못 차리려나. 그렇진 않겠지.




5. 포르투갈 연어 사시미의 맛! Okone sushi Porto



스시가 너무 먹고 싶어서 집 근처 스시집을 찾았다. 물 쓰듯이 돈을 펑펑 날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요즘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오늘은 똑똑하게 밥을 사먹어보기로 했다. thefork라는 웹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했고, 스타터+메인요리를 주문하면 총 금액의 30%를 할인받는 쿠폰을 썼다.





미소시루+프리스타일 15피스+맥주를 주문하고 17유로를 냈다. (2만 2천원 꼴) 한국에선 미소장국을 기본 찬으로 내어주는데 여기선 4천원이나 내고 먹는게 좀 아깝단 생각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생선의 종류가 참치와 연어밖에 없어서 처음 접시를 받아들었을 땐 실망감부터 들었다. 그런데 연어가 쫀득쫜득 너무 맛있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 결과적으로 망한 식사 정도까진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재방문 의사는 다른 스시 레스토랑을 경험해본 다음에 결정되지 않을까. 일단 킵.


Okone Sushi Porto

R. de Nossa Sra. de Fátima, 4050-357 Porto




6. 오늘 경험한 술집들의 기록



더 많은 종류의 포르투갈 수제 맥주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찾은 곳. 버번 위스키가 섞인 스타우트를 마셨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을 제대로 잘 보내지 못해서 아쉬웠고, 다음에 한 번 더 가볼 예정. 집이랑도 그리 멀지는 않으니까. 사장님도 젠틀하고 쿨해서 좋았음!


Catraio - Craft Beer Shop

Rua de Cedofeita 256, 4050-174 Porto





뭔가 오늘 한국말이 하고 싶어서, 맥주 한 잔 할 동행을 구했다. 어둑한 분위기에 로컬피플들로 가득 찬, 축구 보는 펍. 내가 경험한 포르투갈의 밤 거리는 꽤나 평화로운 편이라, 이 나라 사람들은 밤에 집에만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 다 여기에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참 큰 것 같다. 펍에 티비가 있으면, 한 번의 예외도 없이 SPOTV의 포르투 축구 경기가 나오고 있었다. 술 먹던 중에 FC PORTO가 한 골 넣었는데, 사람들이 펍이 부서질 것 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서 나도 같이 박수쳐줬음.


Bonaparte Baixa

Praça Guilherme Gomes Fernandes 40, 4050-150 Porto


열두시가 넘은 시각에 우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버 앱의 아름다운 사용 경험.


7. etc


프랑스로 넘어가는 날을 제외하면 포르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8일 정도 남았는데, 먹고 관광하고 수다떠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생산적인 경험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방점을 찍어두고 그것만 집요하게 파보는 그런 경험. 포르투갈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떤 아웃풋들을 내고 있을까. 디자인 스튜디오에 문을 한 번 두드려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60,156원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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