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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약혼반지, 결혼반지 두 개가 필요한 이유

두 개의 반지, 미국에서는 이렇게 쓰인다.

by Fresh off the Bae
OH. MY. GOD!! ARE YOU ENGAGED??
약혼했어???

프러포즈를 받고 Engagement Ring(약혼반지)를 낀 채로 출근 한 첫날이었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던 반지를 목격한 나의 보스는 마치 영화 '나 홀로 집에'의 어린 케빈이 아빠의 스킨을 얼굴에 바르고 깜짝 놀라 소리치던 표정과 몸짓으로 외쳤다.


jamie-haughton-Z05GiksmqYU-unsplash.jpg Photo by Jamie Haughton on Unsplash


Congratulations!!!


그때부터 나의 보스는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Bae'가 약혼했어!
Bae야, 이 사람들한테 너 약혼반지 보여줘 봐.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보스는 일부러 소심한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Engagement, 약혼은 미국에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아 마땅한 인생의 큰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프러포즈는 어디서 받았냐, 서프라이즈였냐, 얼마나 사귀었냐 등등의 질문을 하고, 극 내향형 인간인 나는 소심하게 프러포즈 당일의 일을 설명해주곤 했다.


특히 우리 남편은, 보스가 소심한 나 대신 약혼 사실을 동네방네 알려주고, 반지도 여기저기 자랑할 수 있게 해 줘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마 덕분에 반지 산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하지 않은 다른 팀 동료의 왼쪽 손에서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반지를 목격했다.


'아! 저 친구도 약혼을 했구나?!'


약혼반지의 목적과 쓰임, 생김새의 차이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보통 약혼반지는 다이아 같은 보석이 박혀있어 약혼반지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프러포즈에 쓰이는 약혼반지는 "결혼하자!"라고 여성을 꼬셔야(?) 하기 때문에 반짝반짝 눈에 띄는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를 이용한다. 가격대도 비교적 높고, 대개는 한 사람, 여성만 착용한다.


반면, 결혼식 때는 비교적 심플한 링을 서로 주고받는다. 미국에서는 결혼반지를 ‘웨딩밴드(Wedding Band)’라고 부르는데, 처음엔 그걸 몰라서 사람들이 ‘웨딩밴드’라는 말을 할 때 무슨 얘긴지 잘 못 알아들었었다.


alexander-dummer-Em8I8Z_DwA4-unsplash.jpg Photo by Alexander Dummer on Unsplash


나는 내 약혼반지가 마음에 쏙 들었었다. 나름 쏟아지는 주변인들의 관심에 더 자랑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남편과 함께 착용할 웨딩밴드를 고르기 시작했고, 나는 이 예쁜 약혼반지가 아닌 웨딩밴드를 껴야 한다는 사실에 내심 속상해했다.


나: 결혼하고 나서 웨딩밴드만 끼면, 이 약혼반지 괜히 그리울 것 같아.
남편: 아니야, 결혼하면 두 개를 같이 끼는 거야.
나: 어, 진짜? 나는 약혼반지는 보석도 크고 비싸니까, 특별한 모임이나 이벤트 있을 때만 끼는 건 줄 알았어. 현실적으로도, 일상생활엔 좀 불편하잖아. 그래서 한국에선 큰 보석 반지는 집에 모셔두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
남편: 여기도 그렇게 하기도 하는데, 특히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Newly Married'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두 개를 같이 끼고 다녀.
나: 어머... 그렇구나... 전혀 몰랐어.


그러고 보니 결혼한 지 꽤 된 우리 보스도 항상 두 개의 반지를 같이 끼고 있었다. 큰 보석이 내심 부담스러웠던 나는 결혼 후 한동안 웨딩밴드만 끼고 다니다, 남편의 서운함이 담긴 한 마디를 들은 후, 이제는 아침마다 잊지 않고, 약혼반지를 챙긴다.


결혼 준비를 하다 생긴 또 하나의 의문.


그럼 결혼식 때는 약혼반지를 빼고 있다가 바로 웨딩밴드를 끼는 거야?


이건 사실 정답이 없었다.


결혼식 때 약혼반지를 아예 끼지 않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약혼반지를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운 뒤, 결혼식 중에 남편이 왼손에 웨딩밴드를 끼워주면, 그 후에 오른손에 있던 약혼반지를 빼서 웨딩밴드 위에 같이도 한다. 약혼반지를 사랑했던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지만, 사실 정확한 룰은 없다.


다만 이런 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는, 남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줘야 했고,


보통은 여자들이 더 잘 아는데, 왜 이런 걸 하나도 몰라? 이거 UNIVERSAL 아니야?


하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한 열 번쯤은 들은 것 같다.


커버 이미지: 나의 웨딩밴드와 약혼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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