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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결혼식 주례는 누가 맡을까?

Will you marry us?

by Fresh off the Bae
I married two.


어머나. 나에게 갑자기 두 번 결혼했다고 고백하는 건가?


나의 보스얘기다.


내 결혼식에 대해 얘기하던 중 갑작스럽게 꺼낸 그녀의 말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 두 번... 결혼... 했다고요?
보스:...
나:...?
보스: 푸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이 아니고, 내가 두 명을 결혼시켜 줬다고.


I married two people!


그렇다. I married two, 즉, 두 사람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줬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주례는 축사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신랑신부의 성장에 대해 소개하고,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법적인 권한은 없다.


반면 미국에서의 주례는 법적으로 결혼을 성립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의 결혼식은 보통 웨딩 세리머니와 리셉션으로 나뉘는데 사회자가 있는 한국 결혼식과는 달리, 미국의 세리머니는 주례가 주관한다. 신랑신부의 입장부터 서약과 반지 교환, 결혼 선포까지 세리머니의 흐름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결혼 증명서(Marriage License)에 서명해 혼인 성립을 공식화하는 거다.


주례가 되려면 주 정부의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는데, 각 주 정부 별로 조건이 다르다. 물론, 어려운 건 아니다. 누구나 신청할 수는 있지만,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 귀찮을 수 있어 우리도 주변에 부탁하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주례가 된다는 것은 부부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이벤트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고...


남편과 결혼 준비 과정에서 주례를 누구로 해야 하나에 대해 얘기하다 주례를 Officiant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내가 Officiate/Officiant라는 단어를 어떻게라도 들어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저 단어도 몰랐으면 보스가 설명해 주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거다.


이 단어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지도 않을뿐더러, 한국에서 보통 '주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하신 주로, 남성분을 떠올리기 때문에 젊은 여성인 나의 보스와 주례를 연관 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보스가 이미 주례를 해봤다고, 심지어 두 번이나 했다는 것 아닌가!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생각이 꼬물꼬물 피어나기 시작했다.




주례 말이야... 내 보스에게 부탁하는 건 어떨까?


퇴근하자마자 나는 남편에게 물어봤다. 평소 내가 회사에서 생긴 이런저런 일들을 남편과 많이 공유하다 보니 남편도 나만큼이나 내 보스를 좋아했다. 특히나 프러포즈 반지를 여기저기 자랑할 수 있게 해 준 장본인이 아니던가! (아래 글 참고)


https://brunch.co.kr/@freshoffthebae/35


남편은 만약 우리 부탁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동의했다.


우리는 게스트 30여 명의 아주 작은 스몰 웨딩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스트도 결혼식을 위한 게스트가 아니라 우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만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기에, 우리의 결혼을 공식화해 줄 수 있는 주례도 의미 있는 사람이 해주길 바랐다.


나는 나의 보스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녀는 젊은 40대 중반의 여성으로, 스마트하고 화끈한 리더십, 결단력, 화통한 성격, 재미있는 말재주를 가진 쌍둥이 아들 맘이다. 특히, 미국회사에서 한국인으로 쩔쩔매는 나를 이 야생에서 살아남게, 아니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다. 영어 때문에 항상 말도 버벅대고,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기 일쑤고, 그 흔한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없어 회사 내에서 난 항상 진지하고 조용한 사람인데, 그런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 주고 있는 게 나의 보스다. 이러니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직접 만나서 주례를 부탁하는 게 예의라지만, 보스는 하필 휴가를 떠난 상태였고, 텍스트로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텍스트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Send' 버튼을 눌렀다.



Will you marry us?
우리 결혼식의 주례가 되어주시겠어요?

Photo by Mongwoo on Unsplash


Absolutely! It would be my privilege and pleasure! Thank you for asking me!
물론이지! 정말 영광이야. 나에게 물어봐줘서 고마워!



남편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도 주례는 주로 신랑신부에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이가 좀 있으신 가족이나 친척, 혹은 가까운 친구가 맡는 경우가 흔하다고. 만약 교회를 다닌다면 목사님이나 종교 지도자가 주례 역할을 맡기도 하고, 부탁할 사람이 없거나 조금 더 포멀 하게 진행하고 싶을 때는 전문 officiant를 고용하기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결혼식장에서 계약할 때 준 Preferred Vendor List (결혼식장 측에서 선호하는 DJ, 플로리스트 같은 업체 리스트)에 Officiant도 있었다. 만약 주변에서 찾지 못한다면 이런 방법으로도 찾을 수 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150 Bill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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