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1개에서 0개, 다시 2개로… 반전의 결말
결혼식 이틀 전 발생한 일이다. 나는 '웨딩드레스' 때문에 차라리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었고, 너무나도 간절하게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던 두 달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지만, 누가 봐도 꼼꼼하지 못한 내 탓이었기에, 아무리 신세한탄을 해보아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결혼식 두 달여 전.
나는 웨딩드레스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예쁘고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어! 몇 시간뿐인 결혼식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붓진 말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쿨병'에 걸렸던 것이다.
여러 웨딩드레스 숍 중 내가 간 곳은 David's Bridal. 미국의 드레스 전문 체인인데, 저렴한 드레스 옵션도 많고, 파티 드레스, 각종 소품들도 한자리에서 쇼핑할 수 있다. 아무리 웨딩드레스에 많은 돈을 쏟아붓지 말자고 생각했다더라도, 나도 사람인지라 고급스럽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보면 눈이 돌아갈 것이 뻔했다. 결국 큰 맘을 먹고 처음 방문한 David's Bridal에서 다른 곳을 가 보지도 않고, 내 웨딩드레스를 결정했다.
보통 웨딩드레스는 잘록한 허리 끝에서부터 퍼지는 풍성함과 화려한 비즈, 레이스가 고급스러움을 결정한다. 내가 고른 드레스는 레이스나 비즈 장식, 긴 트레인 같은 화려함은 없었고, 오프숄더에 단정한 실루엣, 깨끗한 라인으로 담백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홀린 듯 바로 계약을 했다. 금액은 $300. 웨딩드레스가 헤어, 화장, 액세서리, 웨딩 촬영 의상, 웨딩 베뉴, 각종 소품 등 우리 앞에 놓여있던 수백 가지의 선택사항 중 가장 쉬운 선택이었다.
내 키와 사이즈에 맞추어 수선을 요청해 놓고, 몇 주 후 옷을 픽업하러 가는 날.
직접 드레스를 입어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날 다시 수선을 맡겨야 했다. 드레스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여 바로 픽업해 왔고, 그 후로도 액세서리와 매칭을 해보느라 두세 번 입어봤지만, 다른 결정해야 할 사항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정작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드레스에 대해서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결혼식 이틀 전.
사건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머리에 크라운을 할지, 티아라를 할지,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는 어떻게 할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헤매던 중에 발생했다.
갑자기 날카로워진 남편의 목소리.
여기 옷이 왜 이래?
드레스의 가슴과 팔, 등 부분에는 무거운 드레스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무밴드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이 부분의 접착이 강력하지 않고, 옷 사이즈가 제대로 수선되지 않아 딱 맞지 않고 흘러내리는 거다. 워낙에 오프숄더 디자인이었던 데다, 흘러내리는 콘셉트이긴 해서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았고, 꼼꼼히 체크해보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었다.
가장 심각한 건 등 쪽이었다. 아예 고무밴드가 훤히 다 드러나있었던 것. 웨딩 세리머니를 하면 하객들이 내 뒷모습을 쳐다볼 텐데, 그들은 내 흘러내린 드레스의 고무밴드에 눈이 갈 테고, 아니, 그것만 바라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뒤가 보이지 않았던 나는 이 부분을 간과했고, 심지어 매번 머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남편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온갖 푸념과 후회와 한탄과 짜증을 1분에 백 마디는 쏟아냈다.
차라리 전문 드레스 숍을 가서 좀 더 구경을 하고 잘 따져보고 살걸...
아무리 한 번 입는 드레스라지만, 그래도 내가 주인공인 내 결혼식인데...
사진은 평생 남을 텐데...
비용만 따지다 망했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후줄근한 신부가 될 거야...
나는 심지어 리셉션 드레스도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 몇 시간 동안 고무밴드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말 그대로 아찔했다.
우리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1) 옷에 붙이는 테이프를 쓰자: 온갖 테이프는 다 갖다 써봤지만 옷이 너무 무거워서인지 피부에 붙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땀이 나서 붙었던 테이프도 얼마 후 뚝 떨어졌다. 급하게 산 옷에 붙이는 테이프는 피부와 옷 사이에 붙이는 게 아니라 옷과 옷 사이에 붙이는 용도인 건지, 정말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2) 다른 드레스를 사자: 결혼 준비 때문에 하루/이틀 만에 배송이 오는 아마존 프라임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급하게 아무 드레스나 사자는 생각으로 아마존과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오는 드레스는 없었고, 당시 시간도 밤이 넘어간 상태라 다음 날 배송이 올 수 있는 드레스는 하나도 없었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마지막 방법은 옷 수선을 맡기는 것이었는데, 이게 하루 만에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무리 심플한 드레스라 해도 웨딩드레스 아닌가... 그리고 이곳은 미국. 한국처럼 빨리빨리 해주는 곳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우리는 남편의 정장 옷 수선을 맡겼던 친절한 한국인 아저씨를 떠올렸다.
다음 날 아침 9시. 나는 옷 수선집이 오픈하자마자 쳐들어가 아저씨에게 "결혼식이 내일"인데 드레스가 이 지경이라며 울먹였다. 아저씨는 어떻게 웨딩드레스를 이렇게 대충 만들고, 수선도 대충 할 수 있냐며 분노하시면서도, 오프숄더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되어 있다며 당황하셨다.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있던 우리에게 당시는 웃돈을 주든 어떻게 해서든 고치는 게 문제였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 적게 들이자고 시작한 일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너무 처참했다. 아저씨는 일단 고쳐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화점으로 향했다. 최악의 경우, 세리머니 동안만 잠시 그 드레스를 입고, 리셉션에 갈아입을 다른 옷을 찾아보자는 계획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웨딩촬영 의상과 리셉션 드레스 때문에 근처 백화점이란 백화점은 샅샅이 뒤진 상태였고, 파티 드레스를 찾는 것조차 쉽지가 않아 리셉션 드레스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일단 가보자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질질 끌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한산한 백화점. 남편은 피팅룸 하나에 나를 넣어두고는 흰색드레스라는 드레스는 전부 다 가져와 안으로 넣어주었다. 내 인생에 가장 많은 '흰색드레스'를 그것도 '한 번에' 입어본 날이었다.
그렇게 극적으로 고른 또 하나의 드레스. 금액도 $330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다. 이것도 사이즈가 좀 커서 예쁘게 핏 되지는 않았지만, 제일 마음에 들었던 드레스였고, 안 입게 되면 리턴할 생각으로 일단 구매했다.
그 후 오후 5시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방문한 수선집.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반기시더니 수선한 드레스를 입어보라고 하셨다. 정말 놀랍게도 아저씨는 팔 부분이 내 몸에 딱 맞도록 줄여놓으셨다! 그때의 그 감격이란!!!
우리는 얼마가 나오던지 돈을 낼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돈을 받지 않으셨다.
그냥, 잘 살아요. 내 결혼 선물이에요.
어머! 네?? 아니에요! 지금 이거 고쳐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은인인데...
아저씨는 굳이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가 단골도 아니었고, 결혼 전 남편 정장 수선을 한 게 다인데,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신다고? 굳이 아무것도 안 받으시겠다는 아저씨께 우리는 결혼식이 끝난 후 다시 방문해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가 봐!
결국 두 개의 옵션이 생겨버린 나의 드레스.
웨딩 세리머니에는 아저씨가 고쳐주신 좀 더 차분한 분위기의 원래 드레스를 입었고, 반품을 하려 했던 두 번째 드레스는 나의 리셉션 드레스가 되었다.
고민고민하던 나의 Second Look이 완성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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