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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포즈받은 날 벌어진 일

남편: 계획대로 안돼서 속상했어...

by Fresh off the Bae
우리 오늘 사진 많이 찍을 거야.


남편의 이 예고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전 날 머리를 감았던 터라 아침에는 머리를 질끈 묶고는 "나가자"를 외쳤더니 했던 남편의 말이었다. 사진으로 남긴다는 말에 억지로 평소에는 하지 않던 마스카라를 집었다.


그렇게, 우리의 주말 데이트를 가장한 남편의 프러포즈 플랜이 발동되었다. 전 날 남편은 모처럼 LA인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변, 라구나 비치 Laguna Beach에 가자고 제안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이 어떻게 이곳을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라구나 비치는 꽤 오래전에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라구나 비치를 가장 좋아해. 한국에선 모래사장 바로 앞에 잔디가 있는 곳을 본 적이 없거든. 근데 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초록 빛깔 잔디의 조합이 너무 예쁘더라고. 아 그리고, 그 옆에 찐한 파란색의 파라솔이 가득한 예쁜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대기가 너무 길어서 못 갔어.


하지만 LA에서 꽤 먼 곳이라 3년 간 데이트 하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다. 그 해변가와 레스토랑이 프러포즈 이벤트 장소가 된 것이다.


첫 코스는 크리스털 코브 Crystal Cove였다. 뷰가 유난히도 예쁘고 정말 맛있었던 햄버거 가게를 시작으로 크리스털 코브 곳곳을 둘러봤다.


Shake Shack Crystal Cove.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쉑쉑버거 집이 아니다.


마침 꽃들도 흐드러지게 핀 계절이어서 사진도 원 없이 찍고 가슴이 뻥 뚫린 정도로 시원한 바닷가도 구경하고, 아기자기 귀여운 동네 산책도 마쳤다.


이쯤이면 크리스털 코브에서 라구나 비치로 넘어가야 하는데, 특히나 남편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그날은 유독 시간을 끄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지는 선셋과 친구들을 만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것이다.




Emergency! Change of Plan! Change of Plan!!!!


뜬금없이 예약했다는 레스토랑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남편.


엥?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전화를 줘? 보통은 예약 확인을 위해 문자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전화까지 하는 건 듣도보도 못했다.


레스토랑은 지금 예약한 곳에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니, 예약을 왜 하겠어? 미리 테이블을 잡아놓으라고 예약을 하는 건데, 우리 테이블을 딴 사람들한테 줬다는 건가?


좀 이상했지만, 침착한 남편을 보고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조금 후 레스토랑에서는 다시 또 전화가 와서 사람이 너무 많으니 옆에 있는 문을 이용해 들어오면 우리 자리로 안내해 주겠다고 했단다.


엥? 그게 뭔 말이여 도대체?!


그런데 또 엄청 침착한 남편. 덕분에 나도 암말 않고 남편을 졸졸 따라갔다.


나: 엥? 여기 갤러리인데?
남편: 그러게, 근데 여기로 들어가면 레스토랑 옆문이랑 통하나 보지 뭐. 사람이 엄청 많나 보네.
나: 흠.. 그런가?


'아 진짜 뭐지??'


마침 앞에 앉아 있던 갤러리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레스토랑에서 전화받았다고 설명하니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아... 여기가 레스토랑이랑 연결이 되긴 하나 보네.'


근데 나와야 하는 레스토랑 옆문은 안 보이고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보인다. 카메라를 든 익숙한 얼굴의 그 여자분은 우리에게 왼쪽으로 가라는 손짓을 한다.


'남편 친구의 여자친구랑 참 많이 닮은 분이네...'


남편은 그 손짓에 따라 나의 손을 이끌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오. 마이. 갓!!!!!


Will you marry me?


그렇다. 남편이 프러포즈를 한 거다.


남편은 미리 준비한 약혼반지를 내밀었다. 너무 깜짝 놀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남편이 들이민 반지를 냅다 빼려고 했다. 그러자 무릎을 덜덜 떨며 같은 포즈로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남편은 결국,


허니, 대답을 해야지!!!

아!! YES!!!!


그러자 남편이 직접 반지를 케이스에서 꺼내 내 손가락에 끼워줬다.


나의 약혼반지


그렇게 우리는 약혼을 했다. 단연,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그렇게도 닦달했던 결혼에 대한 확신을 남편은 그렇게 프러포즈로 보여줬다. 확신 때문에 결혼의 길목에서 이별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서...


https://brunch.co.kr/@freshoffthebae/27


그렇게 남들 결혼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훔쳤건만, 정작 내 프러포즈에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연신 웃음만 나왔다.



비하인드 스토리


원래 남편이 프러포즈를 하려고 계획했던 장소와 선셋 시간이 있었다. 그 장소는 예약이 되지 않는 공공장소였기 때문에, 남편의 친구들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홈리스들이 이미 그곳을 장악하고 있었던 거다. 결국 내가 들었던 그 이상한 레스토랑 전화는 "Change of Plan"을 다급히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대신 친구 중 한 명이 남편이 예약한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그 레스토랑 옆 갤러리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장소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갤러리 뒤에는 해변가가 보이는 작은 테라스 공간이 있었고, 그곳이 우리의 잊지 못할 프러포즈 장소가 되었다.



얼굴이 익숙했던 사진 찍던 여자분은 남편 친구의 여자친구가 맞았고, 예약된 레스토랑으로 가보니 남편의 친구들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나 이제 안 조를게. 나는 그냥 확신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이제 그냥 가만히 있을게.
남편: 뭐래?! 약혼했으니까 이제부터 결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 얘기를 시작해야지!
나: 아......


그리고 프러포즈를 받은 같은 해,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다음 편에서: 약혼반지와 결혼반지의 차이에 대해 소개할게요!


인스타그램에서도 다양한 미국 생활 적응기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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