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끝과 결혼 그 사이 어디쯤
두 살 연상 연하 커플인 우리는 꽤나 늦은 나이에 만났다. 내 나이 36에 만났으니... 그러고서 3년을 연애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 내 나이 39세. 불혹에 가까워져 왔다.
이미 남들에 비해 많이 늦은 나이었지만, 결혼에 대한 회의감, 자녀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 커리어와 이민 생활의 불안감이 더해져 '결혼'에 대한 생각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연애 초반 남편에게 결혼에 대해 물었을 때 서두르지 않았던 그의 대답에 안심하기도 했었다.
결혼은 한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경제적 준비, 마음의 준비가 모두 되어 있어야 하고, 준비가 된 사람이 준비가 덜 된 사람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가 ‘준비된 사람’, 나는 ‘준비 안 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올 미래는 생각도 못한 채...
나는 3년 사이 이 사람과는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함께 키우고, 어려운 미국살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문제는, 두 살 어린 이 연하 남편, 당시 '남자친구'가 도통 결혼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준비, 마음의 준비를 늘 강조하던 그여서, '완벽한 준비라는 건 없다!'라고 설득해보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 상황이 역전된 거다.
TV에서 누가 결혼하는 장면만 봐도 감동적이고, 프러포즈 장면은 또 왜 그렇게 부럽고 눈물이 나던지... 그렇게 자존심에 꾹꾹 눌러 담은 나의 서운함이 어느 날 폭발했다.
그래서 언제 준비가 되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
계획이 뭔데?
나 나이가 40이야.
언제까지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
아니 결혼 생각이 있기는 한 거야?
그날의 싸움은,
연애와 결혼, 이별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다툼이었다.
나는 그저, 내년이면 내년, 2년 후면 2년 후라는 대략적인 그의 계획을 듣고 싶었다. 계획이라는 것이 물론 바뀔 수 있기에 정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최소한 '결혼'이라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 그가 말하는 '준비'라는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의 입장
갑자기 '분노 발작 버튼'이 눌러진 이 '여자친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3년을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왔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3년 만난 여자 친구를 두고 결혼 안 한다고 도망갈 것 같았나? 나를 그 정도의 인간으로 보는 건가?'
더 화가 난 건, 내가 이미 서프라이즈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친구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프러포즈를 선물하고 싶었다. 일단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도와줄 친구들을 섭외해서 미리 계획을 공유하고, 반지도 준비해야 했다.
심지어 그녀의 반지 사이즈는 내가 알 턱이 없다.
밤에 혼자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여자친구의 손을 조심스레 살짝 들어 왼쪽 네 번째 손가락 사이즈를 가늠해 봤다. 내 새끼손가락 사이즈와 비교해 보며 고심을 거듭하고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물어봐 겨우 사이즈도 골랐다.
그런데 나에게, 이렇게 열심히 혼자 프러포즈를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 "결혼을 언제 할 거냐"니?!
도대체 프러포즈도 안 했는데 결혼을 언제 할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아냔 말이다. 프러포즈를 해야 결혼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고, 웨딩 플랜도 시작하는데, 나한테 결혼 날짜를 내놓으란 건가?!
프러포즈를 계획하고 있다고 알려줄 수도 없고 너무 화가 났다.
그 이후 여자친구는 결혼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입을 닫은 것이다.
큰일 났다. 계획을 서둘러야겠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내 닦달의 시너지로 얼마 뒤 평생 잊지 못할 프러포즈를 받았고 우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프러포즈를 먼저 하고, 그 후에야 결혼 준비가 시작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미국에서의 결혼 준비가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미국식 결혼 준비가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다.
다음 편에서: 한국과는 또 다른 미국의 프러포즈와 약혼 문화 이야기
*상단 커버이미지: Photo by Al Elme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