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나 여행을 가면 나는 엽서를 사서 모은다. 우리집 거실에는 대학생 때 <델피르와 친구들>전에서 샀던 엽서 한장이 붙어있다. 사진이 주는 평화로운 느낌이 좋아서 붙여둔 건데, 우리 회장님도 이 사진을 꽤 좋아해서 자주 만지작 거린다. 이 엽서를 살때는 내 딸과 함께 보게 될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는데 인생이란 건 꽤 신기한 일이다.
회장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계획적으로 살았다. 적당한 나이에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나서부터는 계획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저 인생이라는 바람이 그동안 나와 같은 방향으로 불고 있었을 뿐.
아기를 낳고 나서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대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분유를 이 정도는 먹어야 하는데, 잠은 이 정도는 자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있으니 계획과 현실을 자꾸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애초에 아기에게 계획이라는 게 적용될 수가 없다. 그건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인생이 가져다주는 무질서와 우연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니 훨씬 행복해졌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좋다. 인생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줄 수 있다. 딸과 함께 이 사진을 들여다 보는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