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한 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케네디 공원>을 산책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행 잘 하라고 덕담을 주고 받았다. 나는 리마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미라버스>로 향했다. 리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라버스를 타면 리마 근방 여러 곳을 관광할 수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리마 시내를 돌아보는 코스를 선택했다.
미라버스 시내관광은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구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일정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남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신시가지에는 쭉 뻗은 대로에 세련된 가게들과 금융가, 공관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구시가지로 갈수록 도로도 점점 좁아지고 건물도 점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미라버스를 타고 돌아본 곳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산 프란치스코 수도원>이었다.
<산프란치스코 수도원>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타일들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 스페인에서 공수해온 것이라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온 내게도 남미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데, 그 옛날에 스페인에서 남미까지는 얼마나 아득한 거리였을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지구에서 달로 가는 것처럼 아득히 멀고 힘든 여정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수천장의 타일이라니, 그 무게와 부피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수도원을 지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수천장의 타일들로 채워진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은 뒷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타일장식이 본래 스페인이 아닌 이슬람 문화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었다. 과거 스페인이 이슬람에 정복되었을 때, 이슬람의 타일장식도 함께 스페인으로 넘어왔다. 그러니까 <산프란치스코 수도원>의 타일은 이슬람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페루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타일들은 페루의 것일까, 스페인의 것일까, 아니면 이슬람의 것일까. 내게는 인간들이 칼을 휘두르고 피를 흘리며 만들어낸 역사 그 자체 같았다. 산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복도에는 순교자들의 초상이 걸려 있었는데, 각각의 그림에는 순교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순교자들은 창에 찔려 죽었고, 어떤 순교자들은 목이 베어 죽었고, 또 어떤 순교자는 소뿔에 받혀 죽었다. 하지만 그런 잔혹한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순교자들의 얼굴은 평화로웠고, 수도원은 고요했다. 그리고 무수한 타일들 위로 햇살이 부딪히고 또 흩어졌다.
미라버스 투어를 마친 뒤 걸어서 라르코마르 해안가로 걸어갔다. 해가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지며, 하늘과 바다가 연보라빛으로 물들었고, 저 멀리 해안가를 따라 차들이 후미등을 밝히고 달리며 일렁이는 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나는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내 모자였다. 바람에 날려 떨어졌던 모양인데, 고맙게도 떨어진 모자를 주워 돌려주려고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나는 서투른 스페인말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막연히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곳에서, 뜻밖의 친절을 받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 자체가 뜻밖이었다. 온통 겁먹은채로 문을 나섰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잃어버릴 뻔했던 모자를 되돌려받기까지 했다! 리마에서 보낸 하루는 남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고, 남미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동안 무섭게만 느껴지던 남미라는 곳이 이제는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앞으로의 여행이 조금씩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