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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밍 Nov 22. 2020

남미에서의 첫날밤

<국민루트>라고 불릴 정도로, 남미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루에서 여행을 시작해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여행을 마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남미여행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다른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부분은 리마에 저녁 11시30분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혼자서 남미 여행을 한다는 것 때문에 겁을 잔뜩 먹었는데 그렇게 늦은 시간에 텅텅 빈 공항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고심 끝에 한인민박을 사전에 예약하고 픽업택시를 요청해두었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괜한 걱정이었다. 왜냐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무색하게, 친척들이 모인 명절날 큰집처럼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을 찾는 수많은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나를 숙소로 데려다 줄 택시 아저씨를 만났다. 택시 아저씨는 삐뚤빼뚤하게 쓴 한글로 내 이름이 써진 판넬을 들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까지는 약 한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고, 택시 아저씨는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우리는 더듬거리며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다. 


 - 웨어, 아유 프롬?

- 꼬레아

- 어...델 수르, 델 노르떼?(남쪽에서 왔니, 북쪽에서 왔니?)

- 델 수르 (남쪽)

- 어...아이 라이크 삼성    

오...예아...삼성 이즈 그레이트…


몇 개의 서투른 문장을 나눈 이후로 우리는 내내 침묵했다. 그렇게 한창 동안 침묵이 이어지던 중,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차창 바깥을 가리키며 오션! 오션!이라고 외쳤다. 나도 예에, 오션! 오션! 이라고 답했다. 늦은 저녁 창밖에는 바다는 보이지도 않고 어둠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 펼쳐져 있을 바다를 상상했다. 그리고 저 끝없는 바다 너머에 있을 한국을 생각했다. 그제서야 내가 아주 멀리 떠나와, 남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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