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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8. 2024

<탄소>

초단편 소설 - 1



“지구에서 21광년 떨어진 곳에 다이아몬드로만 이루어진 행성이 있어.”

그가 어느 날 말했다.


“그런데?”


“만약 그곳에 다이아몬드를 캐러 탐사선을 보낸다면,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채굴 로봇을 하나 보낼 꺼야.”


“21광년 거리면 갔다가 돌아오려면 몇백 년은 걸릴 텐데도?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말이야.”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냐. 내 후손을 위해서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보통 미래와 연관됐다. 가령, 그가 든 네 개의 적금은 각각 그가 미래에 사고 싶은 물건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는 집, 하나는 차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내가 알 수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운동하는 이유도 남들과는 달랐다. 체중감량이나 몸매를 가꾸는 것이 아닌, ‘늙어서 고생하지 않기 위해’였다.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마치 학교 시간표나, 장 단위로 짜인 연극 대본에서 내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할 법도 한데. 그는 음식점을 정하는 일은 물론 첫 키스나 첫 섹스의 날짜도 미리 생각하고 나에게 물었었다. 난 당황하긴 했지만, 미래가 정해져 있는 일을 수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하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그와 다르게, 나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메뉴가 많으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 한참을 서 있을 때가 많았고,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일은 괴상하리만큼 어려웠다. 그래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계획적인 면에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다르게, 나는 내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계속 있게 될까? 라는 질문은 사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난 현재에 투자하는 걸 좋아했다. 갖고 싶은 게 생기면 큰 고민 없이 질렀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인터넷을 뒤져 가게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다음 달의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와는 이런 것으로 자주 싸웠다. 너는 그렇게 계획도 없이 살면 불안하지 않니? 그러면 나는, 계획하고 미래만 바라보는 삶은 답답하지 않아? 라고 되물었다. 이런 싸움을 할 때도 우리 둘은 달랐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쏟아냈지만, 그는 내 말을 들으면 턱을 괴고 생각하고 난 뒤에 답했다. 그는 그 순간에도 미래지향적인 대답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한숨.


과거를 돌이켜보면, 다이아몬드 별에 채굴 로봇을 보내겠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되는 대답이었다. 어느 날은 그와 서로 재미있게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는 임업, 그러니까 나무를 키우는 일을 다룬 한 일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임업은 나무를 심은 사람의 세대에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래. 그들이 파는 나무는 수십 년 전에 심은 나무 들이야.”


“그래서?”


“지금 내가 심은 나무가 키워지고, 그다음 베고, 그러고 나서 그 나무의 값을 받는 건 최소 50년 후에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몫이란 거지.”


“그러면 지금 열심히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닐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결과가 나한테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


“그게 중요한 포인트인거야. 믿음이라는 거지. 50년 전에 나무를 심고 보살핀 사람들이 너처럼 생각했다면, 그건 지속될 수 없어. 수 세대를 걸친 믿음이 필요한 일인 거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세대에 걸친 인류애의 믿음을 끌어내는 그를 보며 참 그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얼굴을 알지도 못할 먼 후손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여섯 달 전 그가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곳은 B 도시의 외진 곳에 있던 사거리였다. 블랙박스를 보면 그의 차가 미끄러지면서 맞은편에 오는 트럭과 부딪쳤다. 비가 오는 날도 아니었고, 그의 차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 이상의 생각이 스쳤다. 그가 그려 놓았던 미래도 같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 그 슬픔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사고나 죽음은 그의 계획에도 그리고 나의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가 왜 B 시의 외진 도로에 갔을까, 에 대한 물음에 나는 어떠한 추측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주 전 나는 그 얄궂은 운명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차가 미끄러졌던 이유는 사거리의 도로가 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온도만 살짝 영하로 내려가기만 했지,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았다. 그 일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되기 전 전말이 밝혀졌다.


도로가 얼었던 건 누군가가 도로에 물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견인차를 가진 50대 남성이었다. 그는 생계가 어려웠는데, 자신이 견인할 차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도로에 물을 뿌렸다고 말했다. 도로에 물을 뿌려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견인차를 부를 거니까. 혹은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현장으로 나가면 될 테니까. 그래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근데 진짜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물론 나도 그 사실을 듣고 너무나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하거나, 이미 죽은 그의 사진을 보고 한숨을 짓는 일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법의 계획대로 판결받을 것이고, 그가 죽은 원인은 그의 실수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사고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순탄하게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뒤늦게 그의 차에서 발견된 유류품 중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함이었을 거다.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죽은 전 연인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가 물건을 산 곳에 다시 가져가 팔고, 그 돈을 다시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반지 박스에 적혀 있는 장소를 검색했고, 그 금은방이 B 시에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는 나를 위한 프러포즈 반지를 사기 위해 집에서 떨어진 B 시까지 갔던 것이다. 나는 그가 육 개월 전 갔을 길을 따라갔다.


금목걸이와 반지를 한 주인이 다이아몬드 감정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까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별이 있다네요. 거기 가서 조금만 파 와도 부자가 될 텐데 말이죠. 그렇죠 아가씨?”


그 별은 21광년 떨어져 있어서 가는 길에 아저씨가 늙어 죽을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 눈에서 눈물이 차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의 어머니에게 반지값을 계좌로 부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다이아몬드 별이 있는 21광년의 거리를 지구에서 갔다 오는 것만큼 길었고 고통스러웠다. 그토록 미래 지향적이었던 그가, 잘못된 계획을 한 사람의 행동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 나는 그를 만나는 시간 동안 그를 동경했던 적도 있었고, 그의 모습에 싫증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건 그가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이제 그에게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그의 이 년 주기 계획에 나와의 결혼이 있었다는 것. 장난기가 있던 그가 20년 후 쯤 계획에 이혼도 넣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끝까지 알 수 없었던 그의 적금 중 한 가지는 다이아몬드 별로 가는 채굴 로봇을 사기 위한 것이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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