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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불 Mar 01. 2021

말의 조각들은 삼켜져서

덩어리 진 채

원래는
내 과거의 조각들을 참 사랑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끄럽다는 감정이 든다.

그래서 지금 말하고 쓰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또 언젠간 부끄러워지겠지라는 생각에
울멍울멍 올라오는 말들을 삼켜낸다.
말들은 아래로 내려간다.
계속해서 하향한다.
구멍이 생긴다.
구덩이가 생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구덩이 끝엔
세심함이, 아니 부끄러움이, 어쩌면 수치심이 아니면 그 비슷한 종류의 모든 것이

덩어리 진 채
질펀하게 겨울잠을 자고 있다.

종종 무례하게 꺼내어져
웃음거리가 되고 함부로 다뤄졌던 그 덩어리이다.

지금은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오랜만이야

덩어리의 등쯤으로 보이는 것에
손바닥을 올려본다.

덩어리는 상처 받은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움츠러든다.


-올라가자

덩어리는 흘긋, 나를 본다.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이내
조금씩
굳은 몸을 움직이며

언제 다시 또 눈을 뜰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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