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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22. 2021

북타고니아를 아시나요

한국의 파타고니아가 보이는 그 곳, 노고산

파타고니아가 있다면 우리에겐 북타고니아가 있다. 노고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그 절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겸허한 마음이 드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준비로는 어림도 없다. 프로 찡찡이에 겁 많은 쫄보에 추위에도 약한 춥찔이가 1월의 비박이라니 설렘보다 사실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맹목적으로 떠나고 싶었다. 4킬로가 조금 넘는 힐레베르그 스타이카를 챙겨, 오로지 북타 고니 아만 생각하면 뚜벅이는 응암역으로 향했다.


언니와 얼마만의 백패킹인지 응암역부터 우리는 시끌시끌했다. 응암역 근처 슈퍼에서 먹을 식량을 조금 더 구매한 뒤 704번 버스를 기다렸다. 등산길이 아직 서툰 우리는 백패킹을 떠나기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여행을 준비한다. 이번 노고산 백패킹도, 흥국사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솔고개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언니에게 나만 믿으라면 큰소리를 쳤는데 그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몰랐다. 초입부터 찡얼거리는 나에게 언니는 “길치여도 운은 좋은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면 나를 달래주었다.

한 사십 분쯤 올라갔나… 처음으로 우리가 가는 길 쪽에서 하산하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한 절반쯤 온 거라고 얼른 부지런히 가라고 말씀해주셨는데… 하산하시는 분들의 달콤한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니면서 덜컥 그 말은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40분을 가도, 한 시간을 가도, 두 시간을 가도 우리는 잘못된 길로 들어와 버려서, 돌고 돌아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걷다 정상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슈퍼에서 산 크런키 한 통은 이미 진즉에 다 먹은 상태였고, 정말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쥐어짜면서 한 걸을 한 걸음 내디뎠다. 초입에서는 그렇게 둘이 좋아 죽고 까르르까르르 웃음바다였는데 말할 기운조차 없어 서로 눈 한번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렇게 정상으로 향했다.

두 시간 반이면 올라간다는 노고산을 우리는 네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주말이기에 이미 정상에는 텐트가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텐트를 칠 만한 스폿이 두 곳 정도 남아있었는데 서둘러 더 좋은 자리에 스타이카를 피칭했다. 이너텐트와 플라이를 한 번 결합하면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스타이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둘이서 같이 피니까 시간도 단축되고 우리는 서둘러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하 이제야 한 두 마디 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세네 마디 하려면 뭐라도 입에 넣어줘야 할 타이밍이다. 언니가 아침에 약속시간을 한 시간이나 늦추면서 만들어온 귀하디 뒤한 배추전과 장수막걸리를 꺼내 들었다. 배추전 한 입에 장수막걸리 한 잔을 탁 털어 넣는 순간, 후회했다. “장수막걸리 두 병 사 올걸…”

다이소에서 파는 방석 핫팩 2개면 들끓는 아랫목이 부럽지 않은 뜨근한 일회용 전기장판이 된다.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으니 노곤 노곤 잠이 쏟아졌다. 깜빡하고 잠이 들어 한 시간은 눈을 감았던 것 같다. 텐풍을 너무나도 찍고 싶은데… 눈은 감기지 몇 번을 고민하다 언니와 함께 텐트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깜빡하고 잠이 든 시간과 망설인 시간이 적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많은 텐트의 불이 이미 꺼져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텐풍 가득한 노고산 정상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텐트로 돌아와 언니가 준비한 연유 딸기까지 야무지게 해치운 뒤 잠자리에 들었다. 핫팩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밤에 몇 번을 깼는지 모르겠다. 결국 새벽녘에 하나의 핫팩을 침낭 밖으로 꺼내놓았다. ‘고마워 너 덕분에 정말 푹 잤어 너는 너의 소명을 다했다 핫팩아’ 구스가 1400그램이나 들어있는 40만 원짜리 나의 침낭과 다이소 방석 핫팩이라면 어떤 동계 캠핑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찍 일어나 달도 아직 떠있는 하늘 아래서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내 카메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대포 렌즈까지 준비하고 북타 고니 아를 바라보면 해가 떠오르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미 밝아질 만큼 밝아졌는데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해 앞에서 아휴 오늘은 아닌가 봐 틀렸나 봐 하며 내려가시는 분도 계셨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옆에 계신 아저씨께서 갑자기 내게 불쑥 말씀을 건네셨다.


“어떻게 지금 전화할까?”

“네?!?!”

“해한테 전화하냐고, 언제 올라오는지 물어봐?!”


찐 아재 개그는 아무도 이길 수가 없다. 아저씨 농담 한 마디에 사람들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능선 한가운데서 해가 까꿍 하고 올라왔다. 아저씨가 잠깐 뒤돌아서 전화라도 하셨나 보다.

2021년 새 해 일출이 아니어도, 나에겐 의미 있는 오늘 아침, 해를 바라보면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하루 잘 쉬었다 갑니다. 하산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 흥국사길 방향이 맞는지 두 세분께 물어보고 하산을 시작했다. 우연히 내려가다 만난 할아버지께서는 북한산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설명도 친절하게 해 주셨고 혹시나 길 헷갈릴까 봐 무서워하는 우리와 함께 하산해주셨다. 마지막에 할아버지의 속도가 너무 빨라 끝내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가장 아쉬웠지만 오늘도 언니와의 여정에는 늘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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