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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22. 2021

예봉산, 야경맛집이네요

이렇게 힘들줄은 정말 몰랐어요

굴업도를 시작으로 나는 언니와 어설픈 백패킹이자 부족한 캠핑이라 부를 수 있는 여행을 두세 번 더 다녀왔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문턱 앞에서 부족한 장비였지만 행복했다.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은 기념으로 큰맘 먹고 가방부터 새로 샀다. 2만 원짜리 가방으로도 행복했는데, 20만 원이 조금 넘는 가방을 사려니 손이 떨렸지만, 비싼 만큼! 그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새로 구매한 배낭은 기존에 사용하던 가방과는 다르게 배낭의 무게를 어깨와 허리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조금은 덜 힘들게 산에 오를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왼) 나의 새 가방, 툴레 버선트 / (오) 언니의 새 가방, 미스테리랜치 글레시어

봄의 기운이 이곳저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3월, 우리는 예봉산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 서울에서 가깝다. 두 번째,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 세 번째, 야경이 아름답다. 그 세 가지 이유가 전부였다. 뚜벅이 백패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팔당역으로 향했다.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면 매번 기분이 묘하다. 우리와 같은 뚜벅이 백패커들도 은근히 많이 있을 텐데, 단 한 번도 (심지어 지금까지) 우리가 아닌 다른 백패커를 만난 적이 없다. 최대한 구석으로 자리 잡아 가방을 내려놓고 서있어도 신기하게 쳐다보는 분들이 많다. 안 무겁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시다. 웃으면서 “무겁습니다 하하” 답해드리면 한 번 더 신기해하신다.


언니와 내가 다른 부분 중 하나는 나는 겁이 심각하게 많고 언니는 정말로 겁이 (내 입장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없는 편이다. 예봉산 초입 부분에서 중년부부 두 분을 만났는데, 두 분은 여자 둘이 겁도 없이 어떻게 산에서 자려고 하냐며 걱정을 하셨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저씨께서 “가끔 멧돼지 나오는데…” 라며 우리를 걱정하셨는데… 나는 그 말에 안 그래도 많은 겁이 두배가 되었고,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팔을 세게 꼬집으셨다. 서둘러 아주머니가 말씀을 덧붙혀 주셨다. “사람 있는 데는 안 나오지~ 사람 없어야지~ 걱정마요 걱정마요” 두 분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멧돼지’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그 순간 뇌구조를 그리라고 했으면 아마도 절반 이상의 크기에 멧돼지를 넣었을 것이다. 


겁쟁이 쫄보인 나를 달래며 올라가느라고 언니는 두 배, 세 배 힘들었을 것이다. 토요일이니까 다른 분들도 계시겠지? 우리만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라는 주문을 외우며 부지런히 산에 올랐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여전히 패기와 용기가 한참을 앞서있었다. 예봉산을 올라가는 코스는 두 가지 있다. 완만하게 긴 코스 그리고 경사가 좀 심하지만 총 소요시간을 훨씬 짧은 코스. 집 근처에 있는 아차산, 그것도 정상이 아니라 팔각정까지 몇 번 올라갔다 온 게 전부인 나는 언니에게 완만한 코스로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다. 크나큰 실수였다.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예상한 시간보다 등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었고, 생각보다 오지 않았던 버스 때문에 출발시간까지 늦어져 더욱 서둘러야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헬기장에 도착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하하호호 얘기 나누며 산을 올랐던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나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앞장서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해는 순식간에 떨어진다. 서서히 떠오르는 일출과는 다르다.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말로 무섭게 순식간에 뚝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언니가 스틱으로 봉우리를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저기까지만 가면 돼 현애야, 우리 조금만 힘내자” 너무나도 멀어 보였지만,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불안함과 머릿속 멧돼지가 사라지지 않지만 언니에게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는 한 줄로 서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절반 정도 지날 때쯤 사람들의 말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땅에 그물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던 언니가 뒤돌며 반갑게 얘기해줬다. “현애야 헬기장 여기인가 봐!” 근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쫄보인 나의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었고, 우리말고도 다른 백패커분들이 많이 계셨다. 이미 한쪽에 텐트를 피칭 중인 분들을 보며 말도 못 하게 반가웠다.


중간중간 땀이 너무 나서 바람막이를 입었다 벗기를 반복했는데, 헬기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예봉산 오기 전전날 산 얇은 패딩을 서둘러 꺼내 입었다. 서둘러 텐트를 피칭하기 시작했다. 헬기장 한쪽에 먼저 텐트를 다 피칭하신 아저씨께서 바람 영향을 최대한 덜 받을 수 있도록 텐트 방향과 가이라인 잡는 것까지 도움을 주셨다. 우리 텐트까지 3-4동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다른 백패커 분들도 많이 올라오셨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까지 멧돼지 걱정 하나도 없이 잘 수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멧돼지가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언니랑 영상도 찍고, 텐트 밖에서 커피도 마시고 싶었지만 서둘러 등산한 덕분에 체력은 너무 바닥인 상태였고, 바람마저 더욱 춥게 느껴졌다. 서서히 해가 떨어져 가는 모습은 카메라에 맡겨둔 채, 언니와 텐트 안에서 몸을 녹이고 체력을 끌어올려줄 식량을 몸에 공급해주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텐트 안에서 소소한 수다를 이어나갔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서서히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우리는 야경을 보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예봉산에 온 세 번째 이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나의 일상. 도시의 모습을 이렇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참 아름답다. 때로는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할 때도 있고, 일에 치여 힘들고 지친 날도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기에 여가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헬기장은 형형색색의 텐트로 가득했다. 덕분에 야경만큼이나 예쁜 알록달록한 텐 풍모 습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산에서 백패킹을 할 경우, 다음날 아침 등산객들이 올라오기 전 빠르게 하산하는 것이 백패킹의 매너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초보인 우리가 일어났을 때 이미 두 세동의 텐트는 하산을 하신 상태였다. 꼴찌로 하산할 순 없지! 언니와 나는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여전히 바람이 세게 불어 케이스, 파우치가 날아갈까 무서워 손에 꼭 쥔 채, 주머니에 꽁꽁 숨긴 채 모든 짐을 다시 배낭 하나에 차곡차곡 넣었다. 간발의 차이로 결국 우리는 꼴찌가 되었다. 정리가 다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계셨던 부자 두 분이 사진 촬영을 부탁하셨다. 사진 장인 언니는 다양한 앵글로 사진을 찍어드렸고 우리는 마음 놓고 편하게 꼴찌로 내려가자 생각했다. 조심히 내려가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우리도 기념 촬영을 했다. 야경도 멋있었는데, 아침 풍경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언니와 함께 더욱더욱 멀리 내다보자는 마음으로 포즈를 취했다. 

원래도 하산을 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 사고가 나기 마련이니까. 어제보다는 덜 힘듦에 언니와 중간중간 얘기를 나누며 조심히 우리의 첫 예봉산을 뒤로한 채 다시 도시로 향했다. 장비가 업그레이드된 만큼 체력도 업그레이드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의지의 문제였다. 체력은 아직이지만 마음만큼은 장비보다 더, 두 단계는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렇게 점점 백패커가 되어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싶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래 백패커의 길을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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