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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23. 2021

강천섬, 마지막 백패킹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처음 강천섬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20년 가을, 나와 오빠는 배낭 하나씩 맨 채 전기 킥보드를 타고 강천섬을 찾았다. 텐트와 타프를 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빠가 챙겨 온 보드게임도 재밌었고, 집에서 만들어 온 밤 조림은 밖에서 먹으니 더욱 달고 맛있었다. 저녁으로 우리가 먹은 연어회와 화이트 와인은 우리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다음날 아침엔 가을비까지 내려 타프 아래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첫 강천섬이 이렇게 낭만적일 줄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빠에게 다음에 다시 강천섬으로 꼭 백패킹을 가자고 얘기했다. 가을의 강천섬을 다시 한번 함께하고 싶었는데, 21년 5월 늦봄과 초여름 사이, 우리는 마지막 강천섬을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서둘러 향했다. 

강천섬은 백패커들에게는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가깝고, 화장실 시설이 있으며, 넓은 잔디광장과 함께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이들이 강천섬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같이 배낭 하나면 충분한 백패커들은 물론, 가볍게 캠핑을 즐기시는 분들도 강천섬을 많이 찾았다. 일부의 문제가 가장 크다. 화장실 옆쪽으로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들. 누군가 한 사람의 시작으로 ‘괜찮겠지, 에이 한 번만 버리자.’가 반복되고 반복되었을 것이다. 화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그곳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심지어는 석쇠까지 챙겨 와 고기를 굽는 일부 어떤 사람들. 그들의 이기심이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함을 앗아갔다.

LNT. Leave Not Trash. 

내가 머물렀던 그곳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백패킹의 문화라 할 수 있는 LNT.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는 내가 도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 맞다. 

화기사용이 금지된 곳에서 만큼은 비 화식을 지키는 것이 맞다.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다면 화기를 사용하여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발열 도시락 같은 비 화식 도구를 사용하여 조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게 일부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로 너무 많이 덮여 온 것 같다. 

초록을 좋아하는 내가, 강천섬이 좋았던 건 산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눈앞 가득 초록세상이 펼쳐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의 강천섬이 유난히 더 그 초록이 짙고 깊게 느껴졌다. 출발할 때 날이 살짝 흐려 걱정했는데, 오히려 흐린 날씨 덕분에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노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텐데, 예쁘기까지 하니까 마음 한 구석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피곤함에 잠시 잠이 들었던 오빠를 깨워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작년 강천섬에서의 저녁은 연어회였는데, 올해 강천섬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엄마가 만들어주신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따뜻하게 데워먹기로 했다. 물론 비 화식으로. 바로쿡에 따뜻하게 데워먹는 엄마표 김치볶음밥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초여름을 앞두고 있는 5월인데도 불구하고 밤이 되는 공기가 차가워진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인지 맑은 아침이 밝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컵라면 따뜻한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다. 서둘러 하산하지 않아도 되기에 잠시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마지막이라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만큼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모두를 생각했으면 한다. 무엇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잠시 머물다 올뿐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 주세요 

그저 그날의 온도와 공기를 기억해주세요 

나무의 향기와 바람도, 자주 보지 못했던 하늘까지 

어디든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몰라요 

우리가 지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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