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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월모일 Oct 21. 2021

백패킹은 처음이라서

배낭 하나면 충분한 여행의 시작

살면서 몇 번의 실패를 만나게 될까? 오래도록 잊히지 않거나 어쩌면 기억도 못하는 그런 실패 말이다. 

19년 가을, 내가 만난 실패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그런 실패였다. 마음을 다쳤다. 실패 이전과 다를 거 

없는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한 언니가 불쑥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곳, 굴업도 사진이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언니, 우리 여기 가자.”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마음이 앞섰다. 어쩌면 나는 무작정 떠나고 싶은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배를 두 번이나 타야 갈 수 있는 곳, 인천의 작은 섬 굴업도. 

끝없는 망망대해를 하루 종일 바라볼 수 있는 곳, 개머리 언덕. 


굴업도로의 낯선 여행을 위해 2만 원도 안 하는 60리터 배낭부터 구매했다. 평소 캠핑을 즐기던 친한 선배에게서 매트와 의자, 백패킹에 필요한 몇 가지 장비를 서둘러 빌렸다. 백패킹이 뭔지도 모르면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가방을 꾸렸다. 연안부두에 일찍 가기 위해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택시를 탔다. 예상 가능하지 않은 것들만 가득할 것 같은 여행은 그렇게 나를 일상에서 잠시 멀어지게 해 준 것만 같았다.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배는 덕적도에 멈췄다. 이제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들어가는 좀 더 작은 배를 다시 타야 한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남아 선착장 한쪽에 가방을 잠시 내려두고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바다를 바라본 게 언제였더라, 나의 마지막 바다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도록 이것, 저것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래도 빼먹은 몇 가지를 보충하기 위해 섬에 있는 마트에도 잠시 들렀다. 굴업도로 들어가는 배는 좀 더 작은 배라, 꼭 마룻바닥처럼 생긴 넓은 공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좌식으로 앉아서 가야 하는 구조였다. 자리가 불편해도 상관이 없었다. 첫 백패킹에 들뜬 마음이 편안한 등받이가 되어주었다. 


배에서 내리자 몇 대의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서둘러 트럭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뛰었다. 우왕좌왕 어떻게 하지 당황한 우리에게 고수의 느낌이 풀풀 나는 언니가 “그냥 얼른 타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아빠가 예전에 일하실 때 트럭을 사용하셔서, 뒷바퀴를 밟고 올라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리가 다 차기 전에 배낭을 올리고 그 위로 서둘러 올라탔다. 초등학교 이후로 트럭에서 오프로드를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우리가 탄 차는 이장님 댁 트럭이었는데, 트럭에서 내려 이장님 댁에서 물과 공깃밥을 구매했다. 


사진으로만 본 풍경을 직접 볼 생각을 하니 조급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원래도 급한 성격의 내가 그 조급함을 누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빨리 서두를 것. 이장님 댁에서 구매한 물건들은 배낭에 꾹꾹 집어넣고 출발했다. 저질체력이 겁도 없이 십 킬로가 훨씬 넘는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를 줄이야. 이제 개머리 언덕이 보일까 기대심에 부풀어 쳐다보면 한참을 걸어가야 할 새로운 평야가 보이기를 반복... 나 자신이 참으로 용감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도전으로 하기에 굴업도가 그렇게 만만하고 쉬운 곳이 아니었다.



두 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중간중간 참 많이도 쉬었다...) 마지막 언덕을 넘고 갈대가 가득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사진에서 보던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언니에게서 연락이 오고 처음 보았던 그 사진. 망설임 없이 언니에게 떠나자고 대답할 수 있게 만들었던 그곳. 우리는 한 참을 걸었고, 오랫동안 얘기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다를 바라보며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게 그냥 이유 없이 좋았다.



10월 30일 그리고 11월 1일. 가을의 끝자락에서 추위 쫄보는 롱 패딩까지 챙겼다. 언니가 준비해 준 핫팩과 롱 패딩의 조합은 무적이었다. 10시가 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갑갑함과 핫팩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핫팩의 뜨거움에 사실은 우리는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 둘이 똑바로 누울 수도 없이 작은 텐트에서 서로 반대로 엇갈려서 잠을 잤으니 언니와 내가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둘러 텐트 문을 열고 고개부터 내밀었다. 후후 몇 번 심호흡하고 나니 숨 막힘이 나아지고, 갑갑함과 답답함도 사그라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별을 내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서둘러 언니를 깨워 텐트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잠들었을 그 새벽, 서둘러 별자리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밤하늘을 바라봤다. "언니 저거 저거 북두칠성 맞지?” “현애야 이거 봐봐 저게 작은 곰자리래.” “언니 언니 저 거봐 진짜 커 진짜 밝아!!” 우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쪽에 잘 정리해두었던 의자를 다시 꺼내 앉았다. 쉽게 잠들지 못할게 분명했다. 핫팩이 덜 뜨거웠더라면, 1인용 텐트가 아니라 넓은 2인용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면, 아마 보지 못했을 하늘이었다. 우리의 엉성함이 만들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11월의 첫 태양도 바라봤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질 만큼 차가운 공기였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난 덕분에 굴업도에서만 볼 수 있는 사슴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장 근사한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일상에서 멀어져 익숙했던 내 삶에서 살짝 한 걸음 떨어진 하루였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언제 생각해도 근사한 시작이었다.


 

다시 배를 타기 위해 내려오면서 언니와 커다란 보냉백을 서로 들겠다고 싸우며 업치락 뒤치락, 서로의 앞모습을 뒷모습을 열심히도 핸드폰에 담았다. 언제고 다시 꺼내봐도 둘이 함께 활짝 웃을 수 있는 보물 같은 사진들이다. 우연한 계기로 인사를 나눈 한 아주머니와 야탑 터미널까지 함께하면서 그분이 건넨 마지막 인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언젠가 우연히 또 만나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느리고 게으른 나에게 시작했으니까 된 거야, 잘했어 충분해, 라는 위로가 되는 말 같아서 그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완벽한 시작이 또 있을까. 나는 배낭 하나면 충분한 그 여행에서 대단한 걸 깨닫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로받았고 충만하게 행복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이토록 완벽한 시작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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