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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간 항로

 길을 잃은 항해자

세상에 태어나 50번째 봄을 황사와 코로나로 맞이했다. 

역대급으로 외롭고 쓸쓸한 봄이었다. 

뜻하지 않게 40대 마지막 해를 암과 함께했다. 

왜 내가 그런 병에 걸렸는지 알고 싶었다.     


외적인 일의 성취나 결과로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긴 세월 일 중심으로 바쁘게 살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질수록 자신을 더 다그쳤다. 그러나 결과물의 성과는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몸이 피곤했으며 마음도 힘들어 자주 우울했다. 신경성 위장병, 지루성 피부염, 원형탈모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가끔은 사람 많은 전철이나 비행기에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도 생겼다. 암 수술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 증상들이 암에 걸리기 전, 몸에서 올려준 마지막 경고란 것을.     


"그만 좀 쉬어. 그렇게 사는 방식은 좀 문제가 있어."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며 그동안의 삶의 방식을, 재편할 시기임을 절감했다. 더는 예전처럼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과 마음에 뭐라도 해야 했다.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재발과 죽음의 공포를 뒤로 하고 명상과 요가를 했다. 처음엔 수술 후유증으로 근육이 굳고 짧아져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고통을 견디며 요가를 더 열심히 했다. 근원적 해답을 찾아 분석 심리와 심신상관 의학, 요가, 영성 관련 책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북극곰이 곰곰이> 어썸 키즈

간절했다. 

정신과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살았던 나를 어떡하든 이해하고 싶었고, 다르게 살아갈 가능성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난 오랜 시간 바깥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내면 무의식으로 향했다.  


중간 항로에서는 새로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 한다. 지금 사회에는 통과의례라는 것이 없고, 개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방황하고 있을 뿐인 주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 항로를 종종 두렵고 외로운 길이라고 인식한다. ..세 번째 정체성은 2차 성인기로, 개인의 투사가 사라졌을 때 시작된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는 배신감과 투사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공허함이 중년의 위기를 만든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만 우리는 부모의 결정, 부모 콤플렉스, 문화적 조건을 넘어 진정한 개인으로 거듭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매우 아쉽게도, 권위에 의존하는 퇴행적인 정신 때문에 개인이 콤플렉스에 갇히고 성장을 멈추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최초의 죽음을 회피한 사람은 그다음에 다가올 죽음에 사로잡혀, 의미 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더퀘스트   


이 책을 읽으며 암의 재발과 죽음의 공포가 다른 차원으로 이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한 번 갔다 와 보니, 삶처럼 죽음도 눈앞의 현실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진짜 두려운 건, 삶이 끝이 나서가 아니었다. 그건 그동안의 치열한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질까, 그게 두려운 거였다. 인생의 중간 항로에 이르러 삶의 항해술을 잃어버렸을 때, 그 어두운 밤바다에 홀로 남아 두렵고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순간이었다.   

  

<빈 집>

오랜 망설임 끝에 그룹 꿈 작업 모임에 참여했다. 

개인의 꿈은 깊고 은밀한 세계여서,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며 투사하는 것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꿈을 혼자 다루는 게, 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집단 꿈 투사의 가치와 의미를 담은 책을 보며 용기를 냈다.  


“정기적으로 모여 꿈을 나누고 그 의미를 같이 탐색하다 보면 서로 친밀해지고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투사를 하고 어떻게 자신을 기만하며 살고 있는지도 꿈을 통해 쉽게 알게 된다. 

우선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결론은 모든 꿈은 꿈꾼 이의 건강과 온전함 wholeness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말 나쁜 꿈은 없다. ..꿈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고 또 우리 개인이 지닌 나름의 독특한 성격과 환경을 반영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고 보편적인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꿈을 탐구하는 것이 가능한 까닭은 꿈이 바로 이런 심층의 ‘원형적’ 수준에서 은유와 상징이라는 보편의 언어로 얘기하기 때문이다. ..꿈꾸기에 대한 제일 좋은 은유는 민담에 나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울’인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자기 부정과 기만의 함정에 빠져 있더라도 꿈은 내면 깊은 곳의 진실을 비춰 준다. 그것은 꿈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과제이다.”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 제레미 테일러, 동연 

  

꿈은 밤마다 무의식이 의식에 말을 걸어오는 거라고 한다. 

깊은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꿈을 들여다보는 이유이다. 하지만 꿈은 상징과 은유의 언어로 구성되었기에 우리는 그 꿈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꿈의 세계를 알려면 그 상징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게 꿈 작업이었다. 거기서 결이 맞는 사람들을 따로 만나 본격적인 내면 공부도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의식 세계 너머 인간 깊은 내면에 무언가가 있음을, 삶으로 직감하고 깊이 들어가보려는 모임이었다.


난 관련 책들을 부지런히 읽으며 내 마음을 흔든 문장들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진지하고 겸손했으며 한없이 다정했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결에 날아가는 생각들을 글로 차분히 붙잡아 앉히고, 조금씩 아껴보고도 싶었다.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어느 날 그때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게 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나처럼 아무 이룬 것 없이 갑작스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누군가가 또 있다면, 이 글을 통해 건네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그래. 그런 나로 사느라 고생 많았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 참 다행이다.”     


삶에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살다,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무언가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건 자신의 등 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진 삶의 그림자다. 인생의 굴곡만큼 무거워졌을, 그림자를 달고 사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죽을 만큼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버텨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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