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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안전장치

내면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이를 낳고 그림책 세상을 만났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림책보다 만화를 더 보았다. 미처 알지 못하던 세계였다. 어느 날 난 그림책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내면 아이를 다시 만났다.  


“타고난 본성과 사회화된 자신 사이에서 우리 대부분은 그저 신경증 환자 수준으로 생존하고 있다. 숙고하지 않은 성인기의 성격은 유년기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태도, 행동, 정신적 반사작용으로 이루어지고,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어린 시절의 유기적 기억을 되도록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유년기의 유기적 기억을 우리는 ‘내면 아이( inner child)’라고 부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신경증은 내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진화한 전략들이다.(여기서 ‘신경증 neurosis’ 은 임상적 의미가 아니라 본성과 사회화 사이의 균열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다.) ..삶과 씨름하는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아이는 행동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개인과 세계에 대한 태도까지 내면화한다. 그로부터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결론을 도출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더퀘스트    


여기서 유기적이란 뜻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유년기에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럼 나는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을까. 어린 시절 시골 농사꾼이었던 부모님은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왔다. 도시 노동자가 되어 개미처럼 열심히 살았지만, 일곱 대식구의 살림은 늘 빠듯했다.

아빠는 술을 자주 드시고 밤새 주정을 부렸다. 번듯하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갖지 못한 이유를,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서라 생각했다. 지난날, 농사지으라고 시골에 붙잡아둔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분노를 터트리고,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다투었다. 과거를 끊임없이 후회하면서 자신의 삶을 억울해했다. 엄마는 이 모든 게 조상이 덧난 탓이라며 굿 해먹을 집안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날마다 난 숨죽여 자는 척을 했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광경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시골집>

                            

집 안 분위기는 무거웠고 우울했다.     


그때부터 난 나도 모르게 죄책감과 억울함, 수치심 같은 걸 내면화했던 거 같다.

우리 때문에 아빠가 원하지 않는 삶을 선택해 힘들게 사는 게 미안했다. 보답하기 위해 공부라도 잘해야 했지만, 만화 보고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았다. 비교적 공부 잘하고 똑똑한 오빠들 틈에서 난 좀 어리숙해 보였다. 그래도 오빠들보다 내가 잘하는 게 하나쯤 있었을 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어떡하든 공부만 열심히 해,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했다. 사회적 명성과 지위, 경제력을 성취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배웠다. 그건 늘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견뎌야 한다는 삶의 방식으로 고착되었다. 결국 그렇게 살다 난 인생의 중간 항로에서 병을 얻고 표류하는 중이었다. 더는 아빠처럼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억울해하며 남은 삶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현실에 짓눌리는 아이는 자신의 연약한 경계를 뚫고 타자( the other)가 침범해오는 강렬한 아픔을 경험한다. 아이는 지금과 다른 생활환경을 선택할 힘이 없고 타인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할 객관성과 경험을 비교할 근거가 부족하다. 때문에 아이는 방어적이며 환경에 지나치게 민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약한 정신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수동성, 상호의존, 강박적 성향을 ‘선택’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더퀘스트 

   

그림책 안에 그때의 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방에서 혼자 놀았다. 조용히 만화책을 보고, 낙서하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성장한 지금의 나도 보였다.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방에 앉아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땐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나중에 단짝 같은 친구 몇 명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살면서 모두 연락이 끊겼다. 내 안과 밖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지금 내겐 오랜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때도, 지금도 외로워 보였다.  


<똥 마려워!> 아이앤북

“영국 정신 분석가 도날드 위니컷 Donald, Winnicutt에 따르면 이 나이 아이들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은 엄마를 자기 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를 자기 안에 넣어둔 아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없는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 놀 수 있을 것이다. ..길 잃은 샤를로뜨의 밤을 보호해주고, 숲의 유령인 검은 표범을 물리치고, 영원히 곁을 지켜주는 푸른 개는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유년기 내내 빠져 있던 환상의 총량’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서 조금 덜 어린 시절로,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힘겨움 속에서 필요로 하는 좋은 감정의 총량이 아닐까. 무한한 공감과 지지가 필요한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꿈꾸게 되는 수호신이 아닐까.”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지음, 바람의 아이들 


왜 그렇게 외로웠을까. 

아무래도 내겐 저 환상의 총량이 부족했던 거 같다. 어둡고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줄 좋은 감정들의 경험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기억의 망각 속엔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림책에서 그 부분이 건드려지고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년의 시기에 그게 필요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엄마와 같은 안전장치가 내겐 그림책이었다. 도서관에 가, 그림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읽으며 아이와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내면 아이를 안아주며 다독여주고 싶었다.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질거야." 


<배탈 난 호주머니> 어썸키즈

“엄마 품을 충분히 누린 아이만이 엄마 없이 혼자 있는 상태를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리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기존의 세계가 ‘죽어야’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즉 성장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겪는 것만큼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두려운 마음들을 버텨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을 조금 쉽게 만들어 주는 대상을 위니컷은 ‘중간 대상’이라고 불렀다.

그는 환상계와 상징계 사이에 ‘중간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중간 단계는 유아기 말기의 아이들의 세계이며 그 시기의 마음으로 사는 어른들인 예술가들의 세계이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윤정 지음, 바람의 아이들   


중간 단계는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경계의 시간이다. 

난 환상계인 꿈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앉아 그림책을 보았다. 어른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와 산 지 너무 오래된 나에게 그림책은 환상계로 돌아가는 중간 대상이 되어주었다.    

 

그곳에 내면 아이가 홀로 서 있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앞에 나가 존경하는 인물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누가 쳐다보면 부끄러워 볼이 빨개지는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전 비폭력주의 간디를 존경합니다."

아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이렇게 읊조렸다.

"오~그래?"  

믿기지 않는다는,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만 싶었다.      


우리 집에 가끔 오던 떠버리 친척 아줌마가 있었다. 

해야 할 말보다 안 해도 될 말을 더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날, 친척들이 집에 놀러 왔다. 아이는 사촌들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 아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아줌마였다.

“아이고. 우리 00이는 손도 이쁘네.”

00이는 아이와 다르게 집안에서 공주 대접을 받던 사촌이었다. 어둠 속 얼굴이 00이가 아님을 확인하자, 아줌마는 아이 손을 확 내치며 말했다.

“에이.”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엄마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가만히 자다 깬 아이는 억울했고 창피했다. 00이가 아닌 자신이어서. 몸이 그대로 얼어붙어 뒤척일 수조차 없었다.


<똥 마려워!> 아이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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