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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Oct 31. 2020

여행은 어떻게 관광이 되었을까

-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관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는 누구일까?

 

1997년 미국의 <라이프> 지는 지난 1000년을 빛낸 위인 100인을 선정했는데, 두 명의 여행가가 포함되었다. 47위에 이름을 올린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남겨 동양의 문화를 처음 유럽에 소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13세기 후반 베네치아 출신 상인이다.      


명성은 약하지만 44위를 기록한 사람은 진정한 여행가라고 불렸다. 모로코에서 48년 뒤 태어난 이븐 바투타다. 네루도 <세계사 편력>에서 가장 위대한 여행가로 꼽았다. 마르코 폴로가 17년간 20개국(오늘날 국경 기준)을 여행한 데 비해 이븐 바투타는 27년간 44개국을 주유했다. 여행 거리가 마르코 폴로의 3배에 이르는 12만 킬로미터로 베이징-파리 구간을 여섯 번 오갈 수 있는 거리다.  마르코 폴로는 '진짜로 여행을 했는지'에 대해 진위를 의심받지만 이븐 바투타는 세 대륙의 방문지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측면의 풍부한 기록을 남겨 신뢰도에서 앞선다.      


최초의 여행자는 누구일까? 서양 역사에서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로 알려져 있다. 뚜렷한 목적이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행 자체가 즐거움’인 여행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페르시아, 이집트 등지로 10년에 걸친 여행을 했고, 생생한 지식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원전 440년경에 아홉 권에 달하는 <역사>를 남겼다. 나일강의 범람을 보고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썼다.     




여행의 출발은 이동이다.


이동은 태초 인류부터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위였다. 일상적인 사냥과 채집, 유랑과 목축 활동은 나의 주변 너머, 먼 곳에 대한 탐사로 이어졌다. 여행의 동기와 목표는 바로 호기심이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동경’과 모르는 것에 대한 인식의 ‘욕구’는 모험의 원동력이다.


여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고 세계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여행은 후기 로마 시대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다. 여행의 필요조건인 행선지와 여행안내서, 시간표를 가지고 여행경로를 짤 수 있었다는 것이다. 14세기경에는 개념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르네상스를 거치고 근세에 이르면 해외 유학형 여행인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면서 패키지 관광의 초기 형태를 보인다. 산업혁명 후 기술 발달에 힘입어 마침내 대중적인 관광의 형태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5세기)에는 주로 전쟁이나 교역 등 생업과 관련된 이동행위가 주를 이루었고, 여가 목적의 이동은 제한적이었다.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던 1~2세기에는 축제와 유적지, 온천으로의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는 모세혈관 같은 교통 인프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서양 연안에서 중동,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까지 당시 로마제국이 건설한 도로망은 2급 도로까지 합치면 20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이 도로망은 행정, 기술, 군사 목적이 주였지만 점차 무역과 통신, 여행과 모험을 자극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중세(~15세기 중반)에 여행은 개념적으로 자리 잡는다


문명의 침체기이고 종교 억압의 시기라, 여행은 종교적인 순례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순례는 본래 경건한 종교 행위였지만, 여행과 모험의 욕망을 풀기 위한 구실과 일탈이기도 했다. 또한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순수한 여가와 유랑 목적의 여행도 점차 활발해진다. 이처럼 교류가 확대되면서 세계는 가까워지고 지식은 확장된다.   

  

14세기경에 영어의 ‘travel’(여행)이 공식으로 사용되었다.

 

고행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고어인 ‘travail’이 어원이다. 당시 여행이란 길고 힘든 행군이었다. 여행의 주요 수단이었던 마차는 18세기까지도 하루에 평균 25에서 6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길은 험해서 마차가 진창에 처박히는 일은 다반사였고, 숲에는 강도와 산적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강이나 바다를 통한 왕래를 좋아했던 이유다. 짐, 여성, 아이들이 아니라면 건장한 남자들은 말을 이용한 이동을 선호했다.       


근세(~18세기 후반)는 ‘투어(tour)’의 시대다.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상업과 무역이 번성했다. 대표적인 여행은 바로 ‘그랜드 투어(Grand Tour)’다. 영국의 상류계급 사회에서 유행한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로의 해외 유학형 장기 여행이다. 목적지, 숙소, 동행 안내인, 주요 활동 등 전반적인 일정이 사전에 기획되었다. 패키지형 투어이면서 개별적인 맞춤의 형태를 띤 것이다. ‘tour’는 우리말에서 외래어인 투어관광으로 쓰이는데 ‘tourism(관광)’과 혼동을 가져오기도 한다.     


근대는 본격적인 관광의 시기다.


1784년 제임스 왓트(J. Watt)가 발명한 증기기관, 1830년 첫 여객 수송이 시작된 철도 등 산업혁명으로 인한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은 대중 관광 발전의 초석이 된다. 교통 인프라의 구축은 1841년 영국의 토마스 쿡이 기획한 최초의 단체 패키지 투어를 가능하게 했다. 대중 관광이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단체적 집단적인 관광의 시대로 접어든다. 관광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면서 점차 독립된 산업으로 발전하는 틀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      


‘tourism(관광)’은 라틴어 ‘tornare’(순회하다)에서 유래한 tour에 접미사가 붙은 것이다. 한 바퀴 돌아온다는 의미가 담겼다. 18세기 후반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1811년 옥스퍼드 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되었다. 관광(觀光)은 중국 역경(易經)에 나오는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의 “관국지광(觀國之光)”에서 왔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영어의 tourism을 번역한 용어다.    


  



여행과 관광의 출발이 달라도 공통점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이동이나 이주와 다른 점이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소진이나 탕진이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눈, 새로운 에너지를 갖고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고 활기차게 가꾸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우리는 이를 통해 행복해져야 한다. 

여행과 관광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그칠 줄 모르는 여정이다.        

   


< 참고문헌 >

1. 빈프리트 뢰쉬부르크(1997). 『여행의 역사』(이민수 옮김, 2003). 서울: 효형출판.

2. 설혜심((2013). 『그랜드투어』.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3. 이연택(2020), 『관광학』, 서울: 백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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