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일 Aug 08. 2021

최고의 휴식, 깊은 산에서 멍 때리기

- <종교와 관광> 산사에서 머물면 좋은 5가지 이유

2021년 여름은 길고도 지루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열대야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휴가철 이동량 증가에 4차 유행에 접어든 코로나 기세도 좀체 꺾일 줄 몰랐다. 당국의 거듭되는 ‘이동 자제와 모임 금지령’도 말발이 먹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1년 반 이상 누적된 코로나 피로감으로 사람들은 지쳤고 더는 그들을 막지 못한 것이다.      


지칠 때마다 나는 산으로 들어간다. 


내가 즐기는 휴식은 ‘깊은 산속에서 멍 때리기’다. 도심에서 벗어나 호젓한 산사를 찾으면 몸과 마음은 절로 정화되는 것 같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종교가 아니라 휴식과 여행으로 떠난다. 산속의 절에 잠시 머무는 '템플스테이(이하 템스)'가 한일 월드컵 즈음에 시작했으니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템스가 좋은 이유를 5가지로 정리해본다.    

 

1. 가볍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템스의 최고 장점은 준비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개인 세면용품과 간단한 옷가지 정도가 전부다. 지갑도 가볍다. 5만 원이면 1박에 삼시세끼 제공에다 1인 1실의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방마다 대개 현대식 세면시설이 있어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      


나는 10년 전쯤 템스를 시작해서 그간 10여 개 사찰에 머물렀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처음으로 입문한 공주의 영평사(지금은 세종시)에서는 강당 같은 방에서 여럿이 합숙했다. 그때만 해도 그런 숙소가 대부분이었는데, 큰 방에 둘러앉아 촛불을 켜놓고 각자의 인생 보따리를 하나씩 풀었던 기억이 난다. 송년을 보내는 약간 쓸쓸한 느낌이 완전 엠티 같은 분위기로 하게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따로 없다.      


2. 여행의 관점이 바뀐다     


여행의 이유는 백 가지, 천 가지가 넘는다. 사람 숫자만큼 많을 거라고도 한다. 여행의 즐거움 중에 빠질 수 없는 건 먹는 것이다. 여행 준비도 자연스레 먹을 걸 바리바리 싸는 경우가 많다. 펜션이나 야외 캠핑장에서 바비큐라도 하려면 더욱 그렇다.      


절에 들어서면 물론 스님 식단이다. 처음엔 먹는 게 걱정될 수도 있지만, 막상 숟가락을 들면 새로운 맛의 세계를 만난다. 영평사에서는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찌개와 음식이 참 구수하고 좋았다. 나물이 맛깔난 곳도 있고, 후식이 다양한 곳도 있다. 정성이 들어간 담백하고 소박한 찬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는지 차츰 알게 된다.


템스의 미덕이라면 겸손한 수용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사람은 낯선 여행지에서 외려 세상을 배우고 감사를 느낀다. 뭔가 부족해도 색다르게 여운이 남는다.      



3. 그냥 쉬면 원 없이 멍 때린다 

 

산사의 일정은 아주 단순하다. 먹고 자고 그 외 시간은 모두 자유다. 템스는 크게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뉜다. 체험형은 사찰의 불교 관련 의식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인데 신참자라면 해볼 만하다. 휴식형은 최소한의 일정(오로지 식사만도 가능)으로 자유시간을 즐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단연 휴식형이다.    

  

이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충분히 쉰다. 누구 눈치 보거나 신경 쓸 일도 없다. 찐 휴식을 즐기려면 스마트폰은 가능한 한 멀리하는 게 좋다. 속세의 소란스러움에서 잠시 벗어나는 거다. 모든 걸 잊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심정으로 자신을 만나보자. 최대한 게으르게 무위도식을 즐긴다. 황제가 따로 있나. 그렇게 멍 때리며 지내다 종소리가 울릴 때 공양간으로 가면 된다. 책 한 권쯤은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 약간 말랑한 걸로.   

  

4. 산속 여행지의 매력, 적막한 자연을 만난다     


사찰은 대개 도심에서 멀다. 자연의 한가운데, 때로 산속 깊이 자리한다. 물 맑은 계곡을 끼고 있거나, 울창한 산이 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주변 오솔길을 따라 호젓한 숲으로 산책을 하거나 뒷산으로 한나절 등산의 기분을 낼 수도 있다. 산속에 자리한 절은 비대면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경기도 고양의 흥국사는 서울 시내에서 가깝다. 북한산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참 멋지고 시원하다. 잠시 드라이브 삼아 방문해서 북한산 정취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시간 내어 흥국사 뒤편 둘레길을 따라 걸어보면 마음개운진다. 숲길은 단아하고 나무는 청량한 기운을 내뿜는다.     



흥국사는 둘레길이 걷기에 편안하고 북한산을 보며 마음의 돌탑을 올리기에도 좋다.


5. 과하지 않은 인연과 스친다     


사람 사는 덴 어디나 인연이란 게 있다. 요즘 같은 거리두기 시즌에도 인연은 스친다. 템스를 하면 왠지 느낌이 다른 사찰이 있다. 접수를 하는 분부터 공양간의 식사를 준비한 손길까지 미묘하게 오가는 마음이 느껴진다. 원하면 스님과의 차담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커피가 아니라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스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내 고민거리로 인생 상담을 해도 좋다.


스님들은 대개 스토리가 특이한 경우가 많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본 후 이윽고 절까지 이른 분들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생활을 했던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에서 만난 스님은 에너지가 넘쳤다.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다가 대기업에 근무한 후 늦깎이 스님 생활에 접어든 분이었다. 차담 시간에 함께한 처음 보는 모녀는 딸의 진로 문제를 진지하게 상의했는데, 서로 의견이 약간 달랐다. 스님은 두루뭉술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딸이 원하는 대로 자기 인생을 선택하게 하라."  


하지만 이 또한 적당한 거리두기의 인연으로 대하면 된다. 만사를 폐하고 머물러도 되지만,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면 절에서 만나는 분들과 눈길, 말길을 터보는 것도 좋다.     

      

   

회암사 템플스테이




템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몸까지 홀가분한 상태로 돌아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종교에 상관없이 머리를 식히는 휴식과 부담 없는 여행으로 시작해보자. 고즈넉한 산사에서 자신을 오롯이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다원성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크다. 우리가 가진 풍부한 종교 자원을 문화관광 측면에서 활용하는 것도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종교 자원과 문화 관광)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그해 6월 한 달간 1만여 명의 내외국인이 참여하면서 여러 곳의 언론 보도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2009년 OECD 관광 보고서는 전 세계 가장 성공한 5개 문화콘텐츠의 하나로 템스를 선정한 바 있다.

이 성공을 계기로 상설화해 지금은 전국의 140여 사찰에서 운영하고 현재까지 20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템스는 단순한 종교의 개념보다 우리의 긴 역사에서 불교가 가진 의미와 연결하여*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 체험, 휴식의 장을 지향한다.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이 있고, 체험할 만한 프로그램으로는 참선과 명상, 스님과 차담, 발우공양, 예불, 108배, 연등과 염주 만들기 등이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 총 5,028점 중 종교별 관련 분류를 보면 불교 1,567, 유교 118, 천주교 58, 개신교 36, 단군 신앙 3, 기타(비종교 포함) 3,248점으로 집계된다.)   

종교를 문화 관광 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은 다른 종교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2015년부터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영성 프로그램인 ‘소울 스테이(Soul Stay)’를 운영한다. 템스와 비슷하게 비신자도 신청할 수 있다. 현재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를 중심으로 16곳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개신교에서도 전국에 1,000개가 넘는 기도원 등을 시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처치스테이(Church Stay)’ 운영에 관한 논의가 있다. 현재 실시되는 곳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 표지 사진은 공주 갑사.






        

이전 10화 한류와 관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