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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07. 2024

치킨과 라면, K푸드가 아니었다

K푸드에서 배우는 인생

최근 K푸드 인기가 거침없다. 구글이 발표한 2023년 최다 검색 레시피(음식 조리법) 부문에서 비빔밥이 1위를 차지했다. 비빔밥은 같은 ‘밥’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는 독특한 음식이다.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데도 3대 영양소가 고루 담긴 균형식이다.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藥食同源)’는 우리의 오랜 음식 철학이 담긴 대표적인 건강식, 1997년부터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제공한 이유다.     


세계적인 명성의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 HBS)이 한국 음식에 주목했다. ‘K푸드 세계화 성공과정’을 연구 사례(CJ제일제당)로 선정하고 지난 1월 10일 교재를 공개했는데, 한국의 식품 기업을 사례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표 건강식 비빔밥



K푸드는 글로벌 K컬처 인기의 결과      


K푸드 인기의 이유는 무엇일까. K컬처가 핵심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K팝, K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를 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의 음식과 생활문화에 친숙해졌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멋과 맛으로 확장된 덕분이다.      


HBS 또한 K푸드 경쟁력의 원천이 ‘K컬처 마케팅’이라고 강조한다. K컬처가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문화현상이 되면서, K푸드가 함께 조명을 받는 마케팅 효과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한식의 인기와 수출을 앞장서 견인한 특이한 사례로 제시한다.      



K푸드와 K컬처의 만남


K푸드의 시작점은 단연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한류 초기의 대표 작품인 <대장금>은 한식의 진가를 여성의 성공 스토리에 담아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한류가 중동지역에서 큰 붐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별에서 온 그대>와 <사랑의 불시착>의 치맥, <이태원 클라쓰>의 순두부찌개와 짬뽕, <태양의 후예>의 비빔밥, <오징어게임>의 달고나 뽑기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김밥까지 그 인기는 계속 이어진다.     

 

영화와 한식도 찰떡궁합이다. <올드보이>의 '산낙지 먹는 장면'은 강렬하고 기괴한 컬트적인 매력으로 논란과 동시에 오마주를 불러일으켰다. <아가씨>의 평양냉면이나 <기생충>의 짜파구리 같은 음식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K팝 스타의 한식 즐기기도 화제다. 특히 BTS의 지민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먹는 장면(2018)은 떡볶이 인기를 불러왔다. 덩달아 순대와 어묵, 김밥 등 한국의 길거리 음식이 주목을 받으며 식품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            



K푸드는 관광에서 최고 인기     


한국 음식의 인기는 K푸드 수출과 관광으로도 이어진다. 한국 음식 체인점이 해외에 확산하고, 해외 마트에서 김밥, 라면, 소주 등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와 결합해 K푸드는 한국인의 정과 나눔의 문화를 현지에 전파하는 매개 역할도 한다. 더 이상 K푸드 먹방이 새로운 뉴스가 아닌 것처럼, 이제 한식이 음식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K푸드는 이미 한국 관광을 결정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됐다. 그간 1위였던 ‘쇼핑’이 2021년 들어 ‘음식’으로 바뀌었다(2022년 문화관광연구원의 외래관광객 조사). 외국인들은 한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식 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는 김치, 비빔밥, 떡볶이, 불고기, 삼겹살 순이었지만 실제 좋아하는 음식은 약간 달랐다. 한국식 치킨(16.5%), 라면(11.1%), 김치(9.8%), 비빔밥(8.9%)과 불고기(6.1%) 순으로 나타났다(2023 한식진흥원 조사).           



한국식 치킨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압도적인 K푸드, 치킨과 라면을 알고 보니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인 치킨과 라면은 사실 한국의 고유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연히 K푸드에 속한다. 왜 그럴까.      


치킨의 대명사인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은 KFC다. 흑인 노예들의 솔푸드를 커넬 할랜드 샌더스(KFC 매장에 보이는 할아버지)가 1952년 프랜차이즈화한 것이다. 1984년 서울 종로점이 오픈했으나 너무 짠 미국식 레시피 탓에 초기 안착에 실패한 후 한국식 맛을 받아들이게 된다.


2020년부터 4년째 K푸드 선호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식 치킨’은 1980년대에 국내에서 선을 보인 양념치킨이 출발점이다. 전통적인 양념과 재료를 기본 축으로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를 거듭하면서 다채로운 버전의 한국식 치킨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새로운 식재료를 첨가하거나 치맥처럼 다른 음식과 결합하기도 하면서 K푸드의 놀라운 매력을 발산한 것이다. 이때 등장한 환상의 파트너가 바로 K컬처, 최고의 결합이 따로 없었다.   


라면은 어떤가. 인스턴트 라면(1958년)과 컵라면(1971년)의 종주국은 일본이다. 한국은 1963년 일본식 치킨라면을 도입했지만, 현재 1인당 면 소비량으론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특별하다고 할까. 지난해 라면은 한식 수출 중 역대 최고 수출액을 기록했다. 특이한 건 그중 66%는 '불닭볶음면'이라는 사실.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국물이 끝내주는’ 라면이 아니라, 새롭고 독특한 맛이 세계 시장에 어필한 것이다.


전통에 머무르거나 한 가지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는 것, 라면도 이처럼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 확장하면서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홍대 부근에는 라면 특화 편의점인 ‘라면 라이브러리’까지 오픈했다. 외국인 매출(62%)이 내국인 매출(38%)을 앞지를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머니투데이. 2024.1.4).



빨간 라면이 땡기는 그날이 온다



일상에서 즐기는 K푸드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의 공통점으로 ‘일상성’이 눈길을 끈다.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정찬 스타일의 한식도 주목받고 있지만, 일상에서 누구나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간편식이나 가정식이 단연 인기다. K푸드가 저 멀리 있는 '동경의 정서'보다는 일상의 편안함과 생활 속의 소비 단계로 진입했다는 의미가 크다. 확장성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이는 K푸드 마케팅이 세계의 다양한 입맛에 부응하면서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때로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과 결합해 새로운 메뉴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섞이고 교류하면서 발전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식 치킨이나 라면이 우리의 전통 음식은 아니어도, 그 안에는 우리의 독창적 레시피와 혁신 마인드가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K푸드의 성공 포인트로 요약된다.   



길거리 음식은 우리의 일상이다


        

K푸드에서 배우는 인생     


K푸드는 순혈과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서로 융합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우리의 것'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독특함과 고유함, 그 본질과 정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릴 때 글자 그대로 초딩 입맛에 머물렀다. 비리거나 특이한 맛, 맵거나 강한 향과 소스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입맛도 세속화하고 대중화하면서, 조금씩 어른스럽게 바뀌어간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릿한 생선회와 비주얼이 강한 족발이나 장어 같은 음식도 친숙해졌다.


잠시 영국에서 생활할 때는 기숙사에서 파스타를 해 먹고, 탄두리치킨이나 난 같은 인도음식, 터키의 케밥이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꽤나 헤비한 영국의 조식)도 접하게 됐다. 요즘엔 동남아와 인도의 주식인 '날아다니는 쌀'(인디카 품종쌀)도 좋아할 정도가 됐다. 맛대가리 없어 보이던 그 쌀이 진득한 카레나 짜디 짠 '크랩 튀김' 같은 음식과 천생연분, 잘 어울린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래가는 게 진짜 인기이자 성공


갈수록 입맛이 글로벌해진다. 둥글둥글 세상사에 적응해 가듯이 입맛도 두루뭉술해진 것 같다. 한편으로 한식에 대한 입맛도 바뀌는 걸 느낀다. 한때는 빨간 김치찌개나 떡라면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두부 종류나 곤드레비빔밥 같은 순한 음식을 찾게 된다. 좋아하는 음식도 이렇듯 돌고 돌면서 나만의 메뉴를 다시 찾아가는 것 아닐까.


인생도 비슷하다. 만나고 섞이면서 나만의 것을 찾아나간다. 둥글둥글 원만해진 것 같지만 그 안에 진짜 나만의 어떤 소중함이 자리하고 있다. 중요한 건 오래가는 것이다. 반짝 빛나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꾸준하게 지속하는 것, K푸드도 한때의 인기 음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이 두고두고 찾는 음식이 된다면 그게 진정한 성공일 것이다. K푸드를 대하면서 오늘도 인생을 배운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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