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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21. 2024

일본,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되는 3가지 이유

K컬처와 세계의 문화현상 1 <일본>

한국인의 최고 인기 여행지는 어디일까      


단연 일본이다. 2023년 출국자 2,272만여 명 중 3분의 1 정도인 696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 일본 내 전체 방문객의 27.8%로 압도적인 1위. 2위 대만인(420만)과 3위 중국인(242만)을 합친 수보다 더 많았다(일본정부관광국 통계).


한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외국인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역시 일본이다. 232만 명으로 일본인 출국자 4명 중 1명은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 방문객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지만 방한 외래객으로는 1위다. 중국이 202만 명, 다음은 미국(109만 명), 대만(96만 명), 베트남(42만 명) 순.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외국인 방문객 중 1위를 차지한다. 그만큼 가깝고 왕래가 잦다는 의미다. 이미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속해 왔다. 특히 문화 측면에서 일본의 J컬처와 팝, 애니메이션, 영화 등은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며 교류의 발자취를 이어왔다.    



일본, 세계를 강타하다


K컬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문화 현상을 아는 게 필요하다. 세계의 문화 사조와 현상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 태도와 인식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오랫동안 그들은 ‘오리엔탈리즘’의 양상을 보였다. '동양은 열등하다'는 서양의 편견이 담긴 것으로, 특히 18~19세기 유럽 제국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동양에 대한 관심은 사실 중동과 인도, 중국과 일본이 중심이었다. 17~18세기 중국문화(시누아즈리, Chinoiserie)가 유행했고, 19세기에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일본문화 쇼크가 유럽을 강타한다. 1854년 문호 개방 후 파리 만국박람회 등을 통해 알려진 일본의 예술과 공예품이 이국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30년 이상 일본 문화 열풍으로 이어진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우키요에(浮世繪, 일본 목판화)라고 하면서 새로운 소재와 참신한 색채 구성을 도왔다.”라고 강조한다.          

 

반 고흐의 '탕기 영감의 초상'(1887). 배경에 자포니즘의 영향이 물씬 풍긴다.



융성과 쇠퇴, 문화는 흐름이다 


20세기 들어 일본의 문화는 영화, 출판만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등에 걸쳐 지속적인 관심과 인기로 이어진다. 국가적으로 일본은 1960년대 이후 30여 년간 고도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      


이와 함께 일본 대중문화는 1980년대 최전성기에 오른다. 괴물 같은 20~30대 천재들이 등장해 문화판을 혁신하는데, 그 중심과 정점에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있다. '마크로스', '코난' 등의 작품이 아시아 전역에 확산하며 주목을 받는다. 1984년에 히트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의 활약상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전성기 시절 일본의 대중문화는 독특한 양식과 오타쿠적 기질로 눈길을 끌었다. 내용면에서는 인류 공통의 고민을 담은 거대하고 야심만만한 스케일과 프로젝트를 선보인 시기다.


하지만 점차 시야가 국내로 축소되며 세계적인 보편성과 공감 획득에 실패한다. 충분한 내수에 만족한 채 글로벌 개방화에 뒤처지고 '갈라파고스화' 현상에 빠져든 것이다. 1962년 창업한 연예 기획사 '쟈니스'가 문화권력화하며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장기 독점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유보다 보호에 치중한 폐쇄적인 음악 저작권 시장, 비주얼을 선호하고 퍼포먼스가 약한 아이돌 등은 1990년대 정점에 오른 J팝이 2000년대 들어 침체기에 빠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초가 강한 오타쿠의 나라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기초와 저변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뿌리가 강하면 쉽게 시들거나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9명에 이르는데 대부분이 기초과학 출신이다. 문화예술의 기초인 문학상 수상자도 3명. 고집스레 한 길을 걸으며 깊이 파고드는 '장인정신'의 성과가 아닐까.


문화 측면에서는 '오타쿠'를 주목할 만하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10분의 1인 1,200여만 명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마니아. 게임을 포함한 오타쿠노믹스 3대 시장이 4조 엔 규모라고 한다. 이런 인력 기반과 사회 분위기는 창작의 근간을 형성하며 일본의 문화적 역량과 지속성을 뒷받침한다.           


   

특유의 킬러 콘텐츠가 있다    


두 번째 특징, 일본의 문화는 특별한 데가 있다. 독창적 장르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게 괴수물과 애니메이션이다. 해외에서는 '서브 컬처(소집단이 즐기는 하위문화)'로 소비됐지만, 시대와 세대를 거듭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대중성도 확보하게 된다. 오래 지속하고 숙성도를 더하면 주류가 되는 것. 2023년 12월에는 미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1위, 도호가 제작한 ‘고지라 마이너스 원’이 2위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은 만화산업의 세계적인 강국이다. 웹툰 같은 디지털 만화시장은 한국에 선두를 빼앗겼지만, 만화는 문화 콘텐츠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보물창고다. 애니메이션과 연결되어 일본문화의 대표 장르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23년 국내 영화시장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큰 강세를 보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4위와 6위를 차지했다. 2019년 일본 상품 불매를 골자로 한 ‘노재팬’ 운동의 열기가 식은 이후,  일본 만화 영화와 함께 J팝 등 J웨이브의 열풍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한번 깃발을 들면 무섭다    


마지막으로, 집단적인 응집력으로 국가적인 목표에 올인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어두운 모습이 기억나지만, 최근 '관광강국'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면 놀랍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우리보다도 적은 관광 후진국이었다. 한국이 역전을 당한 건 2015년. 일본의 관광객 수가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외래 관광객 1975만 명으로 1323만 명에 그친 한국을 크게 따돌린 것이다. 2018년에는 3000만 명을 넘어섰는데, 단기간에 2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늘어난 건 기적에 가깝다. 한국은 외래 관광객 1750만 명이 최고 기록.      


이는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인구소멸과 고령화문제를 해결할 신성장산업으로 관광을 낙점하고 강한 정책 드라이브를 추진한 결과다. 총리가 직접 ‘관광입국추진 각료회의’의 의장으로 활동하며 진두지휘했다. 모든 부처가 똘똘 뭉쳐 ‘관광입국’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성공으로 이어진다.      


일본은 현재 '지방창생'을 외치며 풀뿌리 인바운드 관광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하는 반면, 우리 정부의 관광에 대한 정책 의지가 그만큼 강력한지 업계의 불만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K컬처에 대한 관심과 인기를 관광으로 연계하는 치밀한 전략과 실천 노력이 아쉽다.        


   

문화는 서로 섞이며 발전하는 것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면서 필생의 라이벌 같은 관계다. 나라와 인구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서로 간에 경쟁심과 대결의식은 은근히 강하다. 이번 아시안컵 축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세계적인 위상으로 발전한 나라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문화는 서로 교류하며 발전한다. K컬처의 태동은 J컬처와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현재 K팝은 음반 판매가 줄며 위기론에 휩싸이고 있다. 획일화 우려가 있는 K팝의 다양성 측면에서 J팝과의 교류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J컬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K컬처의 발전방향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시사점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K컬처 또한 홀로 빛나는 게 아니라 세계의 문화현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세계의 흐름과 호흡하면서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K컬처와 J컬처가 상생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날을 그려본다.  






* 표지 사진은 일본의 목판화(우키요에) 작가인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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