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 - 3
2023년 2월, 전쟁 1주년을 맞아 블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저널리스트들이 회견 시작 2시간 전부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기자 회견이 열리는 지하 벙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출입문 앞에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카키색 전투복 차림의 불곰처럼 생긴 경호원들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이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장했다. 짙은 갈색 눈동자에, 날렵한 턱을 감싼 짧은 수염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1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그의 모습을 근접 촬영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전쟁 당국의 수장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다. 그는 좌우로 갈라선 200여 명의 취재 기자와 카메라맨의 사이를 가로질러 연단에 올라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작아서 놀랐지만, 전쟁 중인 국가의 군 통수권자로서의 위엄은 느껴졌다. 기자들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건넨 뒤 준비한 원고를 펼쳤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으며, 눈썹까지 약간 찌푸린 채 기조연설에 몰입해 있었다. 그에겐 너무나 익숙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젤렌스키는 어릴 때부터 연극 무대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사회생활의 시작은 코미디 연기 활동이었다. 열일곱 살에 코미디 극단, ‘크바르탈 95’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극단에 소속된 배우로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무대에 올렸다. 과거 소련 시절부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서슬 푸른 권력에 맞서, 유머를 통해 비판과 저항 정신을 표현했다. 그것이 미국과 유럽의 스탠드업 코미디와 만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몰아친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는 국민들의 걱정과 불안을 해소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때 큰 인기를 얻은 배우가 젤렌스키였다. 이후 크바르탈 95는 코미디 극단에서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5년, ‘국민의 일꾼’이라는 텔레비전 시리즈를 제작하는데 이때 젤렌스키가 주인공, ‘대통령’ 역을 맡았다. 작품은 부패한 정치에 반대하는 평범한 교사가 여러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결국 대통령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이 시리즈는 정치적 홍역을 앓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정치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젤렌스키를 실제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기자회견은 3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계속되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손 들고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답을 해주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 얼마나 간절했을까? 전장에서 쓰러져가는 젊은 군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외국에서 온 기자, 즉 생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을, 국제 사회를 향해 지원 요청의 당위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였으니까. 운명에 맞서는 것이 때로는 비굴해 보일지라도, 다른 선택은 없었다. 국가의 상황이 어려워, 서방 사회의 지원 외에는 달리 길이 없었다. 그는 절박했다.
장시간 계속되는 기자회견에 모두가 조금씩 지쳐갈 무렵, 젤렌스키 대통령의 얼굴엔 아직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감이 남아있지만, 벙커로 처음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위엄보다는 피로감과 퉁명스러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익어버린 피부와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린 어깨, 턱수염 사이로 하얗게 변색한 터럭이 살짝살짝 비쳤다. 동공을 절반 정도 가린 눈꺼풀 위로 아직 휘발되지 못한 긴 전쟁의 권태와 나른함이 흘러내렸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이 어두워진 사위를 밝혔다. 텅스텐 조명 아래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던 눈송이들이 금빛별 가루처럼 거리에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야간 통금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 채 자기 발끝만 보면서 걸어갔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이라도 있는 듯.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키이우의 봄은 아직 저만치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