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스윔 Sep 26. 2023

01.서울사람

서울에서 양양으로

양양으로 완전히 이주를 결심한 건 3년 전쯤...

5년간 운영하던 카페를 리모델링할까 우리가 하고 싶은걸 정말로 실현해 볼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 가슴한켠에 늘 담아두고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아마 누구를 위해가 아니라 나를 위해 만들고 싶었던 오아시스 같은 장소를 만들고 싶었고 그 갈래에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나는 평일에는 도시에서 일을 하고 주말은 촌에서 살아가는 5도 2촌을 하고 있었고 머지않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아갈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남편은 바닷가 앞 아주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구두를 신고 출근과 퇴근을 할 수 있었던 도시민이었던 삶


그래 이왕 넘어지는 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넘어져야  일어나지 라는 생각과 그냥 지금 적당히 잘 먹고 잘 사는데 그깟 주말부부 매일 만나 지루하기보다 일 년에 한두 달 길게 세계여행 가는 것도 멋지잖아?라는 생각이 공존하던 시기...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그것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에겐 "양양"이라는 곳에 이미 집을 짓고 있었다.


원래 지금의 힐러스 자리에 언젠가 작은 집과 작은 카페를 지으려고 땅에 ㄷ 도 모르는 내가 그 땅을 밟았던 그날의 그 풍경에 빠져 덜컥 계약을 해두었었다.

이날 이 풍경에 빠져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는 땅문서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집을 지은 곳은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고 집 짓기는 약속된 시나리오라도 있는 듯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진행되었다.


나이 40에 어쩌면 아주 이른 나이에 시골에 집을 지었다. 내손으로 평면도와 입면도를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집을 지었다. 다행히 고마운 사람과 인연이 되어 평생 살아볼 일 없을 법한 따스하고 좋은 집이 생겼다. 서울이라면 전셋값도 안될 돈이었지만, 먹고살 일이 걱정이 되었지만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집 짓기는 큰 형부를 통해 유덕당이라는 당호를 얻게 되었고, 그 집의 완공이 되기가 무섭게 우리의 오아시스인 "힐러스"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유덕당이라는 이름과 현판을 선물받아 부착 하던 날의 가족들


그렇게 매일이 지나가고 20년 넘게 출근 퇴근하며 살던, 노트북 없이는 여행도 못 가던 내가 하루에 몇 시간을 공사 현장에 머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정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작은 회사를 차렸다. 공간이 완성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법인을 설립했다.

몇 번의 개인사업자는 창업과 폐업을 반복했지만 법인은 처음이었다. 잘하고 싶었고, 잘 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40살의 나는 너무 많은 일을 저질렀다. 그전에는 나 하나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빚과 내가 챙겨야 할 식구도 생겼다.

사실 그간 별 고민이 없었다.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하던 게 있으니 그거 하면 되겠지...

그렇게 매일 양양에서 눈뜨고 눈 감으며 하루하루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새로 지은 집에서 힐러스로 가는 짧은 구간에 문득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 내가 생각하던 내 모습이 왠지 새삼스러웠다. 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나는 적당히 밝고 대범하며, 적당히 사교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이며, 지극히 시니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나를 보통의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 집에서 힐러스로 넘어가는 길


하지만 지금 느끼는 나는 나는 모든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주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좁고 깊은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포기를 아주 잘하고 또 아주 빠르게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후회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는 새로운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정의 내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에서 살기엔 너무 나약한 존재였다. 강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싸구려 와인잔처럼 쉽게 깨지는 사람이었다.


도망치고 싶기도 했고, 천천히 살고 싶기도 했고, 제대로 살고 싶기도 했다. 서울이 아니어도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야 했다. 상황이 그랬고, 내 마음이 그랬다.


비로소 시작된 나의 삶은 평생을 살아온 도시가 아닌 강원도 양양,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아주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


2023년 여름, 언덕위의 힐러스에서 마주한 일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