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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스윔 Sep 27. 2023

03.여행의 시작

서울에서 양양으로

서핑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나는 매주 주말 양양으로 향했다. 오고 가는 길이 그전처럼 우울하고 슬프지 않았다. 신나고 즐거웠다. 양양으로 향하는 길은 행복 그 자체였다. 도착하면 파도가 있건 없건 바다로 들어갔다. 서핑을 잘하기엔 비루한 몸뚱이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 위의 고요함, 그 단절의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정말정말 푹 빠져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까? 발리에 서핑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하고 싶어졌다.

2001년 첫 회사를 시작으로 나는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일주일을 쉬었을 때는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아 급하게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 시기였다. 모든 게 급급했고, 틈이 나면 일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야 했다. 뒤쳐지기 싫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발리로 서프트립을 가는 계획을 세웠다. 무려 한 달을...


그렇게 발리로 서프트립을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을 겪었다. 오토바이도 타보고 하루 만원도 안 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한 달 더, 한 달 더 하며 결국 3달을 발리에서 보냈다.


나의 첫 시즌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남애3리 바닷가 앞에 작은 방을 얻었다. 그리고 5도 2촌을 시작했다. SI시장의 기획자, 프리랜서, 그리도 싫었던 직업이었는데 서핑을 하고 나니 만족스러운 직업이 되었다.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또다시 발리로 떠나고 다시 돌아와 일하고 또다시 발리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매년 2~3개월은 발리에서 지냈다. 아마도 5년은 그렇게 보냈던 것 같다.

소비로 가득한 시간이었으므로 당연히 행복했다



서울은 너무 답답했다. 평생 살았던 서울인데 서핑을 시작하고 난 이후 나는 아주 작은 오피스텔에 살거나, 반지하에 살았다. 서울에서 잘 살 필요가 없었달까... 잠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하루에 7~8시간 머무는 공간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걸 잘 모아서 더 많이 양양을 가고 발리에 가고 싶었다.


그 사이 서핑을 하는 친구들과 친해져 작은 가게와 방이 함께 있는 공간을 얻어서 지냈다. 그해 여름 엄마가 양양에 놀러 왔다.


나이 40에 얻은 늦둥이 막내딸이 뭐 하고 다니나 궁금했겠지...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곳을 보곤 이럴 거면 집을 사라 했다. 씻을 곳이 없어 주변의 서핑숍에 가서 샤워를 하고, 방 하나에 2층 침대 3개를 놓고 한쌍의 부부와 친구 두 명 그리고 나... 엄마가 보기엔 참 생경한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정말 거침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다.


하지만 불편하지 않았고  나는 그때까지 집을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시골에?  서울에도 없는 집을?


하지만 왠지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몇 개 있지도 않은 부동산에 가서 매물을 찾았다. 20 가구 남짓 있는 갯마을해변의 작은 언덕배기 동네... 30초만 걸어 나오면 멋진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빈집도 많은 동네였다.


갯마을의 풍경

고민은 오래되지 않았고 그 집을 계약했다. 서울의 반지하 전세도 안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바닷가 앞, 걸어서 서핑을 하러 갈 수 있는, 35평 남짓의 단독주택이었다. 인테리어를 대충 하고 나니 그럴듯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

2016년 봄, 갯마을 해변에 첫 터를 내렸다. 이름하여 "어서오시게스트 하우스"



이때도 정말 신나게 놀았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모여 서핑을 하고 수다를 떨고 고기를 굽거나 외식을 하고,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냐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술을 마시던 나였지만 서핑을 시작하고 나서는 술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서핑하며 만난 친구들도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 친구들이었고 서로에게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낼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주 보았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서울이었다면 볼 일도 없었을 영역의 친구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양양에 관심이 많아지는 친구들을 보며 서울이 아닌 양양에 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은퇴를 하고 양양에오면 가게를 해야겠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살곳은 있으니 무언가 일 할 곳을 미리 선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만 해도 서울에 비해 양양은 그런 시도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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