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의 손상 없이 이 일을 할 수는 없을까
" 내가 어제 JYP 인터뷰인지 뭔지를 봤는데 그걸 보고 네가 떠올랐어! "
어느 날 나의 가장 오래된 벗이 닭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본래 체구도 작고 둘 다 말라비틀어졌던 시절이었지만 이상하게 서로만 만나면 성인 남자 3인분 분량을 차근차근 먹어 치우던 시절이었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오랜 시간 봐온 친구라 그녀가 가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얻은 어떤 인사이트를 전해줄 때면 귀가 쫑긋해지곤 했다. 그날 그녀가 어떤 인터뷰를 보고 발견했다는 나에 대한 인사이트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흥미로웠다.
" 사람은 둥근 원, 세모, 꽉 찬 네모 등 여러 가지 모양이 있는데 개중에 보기 드물게 별 모양이 있대. 뾰족하고 날카로운 각이 최소 다섯 개는 돋아있는 특이한 별 모양! 그런데 그 별 모양의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편한 운명이래. "
두 가지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제 모습과 똑같은 별 모양을 만나던가 아니면 그 별을 감싸 안는 둥근 원을 만나던가. 정리하자면, 일단 내가 그 개중에 보기 드물다는 별 모양이라는 이야기였고, 뾰족하게 각이 많은 내 친구여 너는 너와 같은 별 모양 아니면 둥근 원을 만나렴, 하는 죽마고우만이 해줄 수 있는 애정 어린 제안이었다. 사실 그 말을 했다던 사람이 JYP 인지 양군인지 누군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의 상황과 치킨, 그리고 맥주 500잔의 기억만이 선명하다.
그놈의 별은 내 운명인가. 그 얘기조차 잊힐 정도로 몇 년의 세월이 지나 나는 뜬금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꽂혀 6개월의 교리 수업 후 바다의 별 (마리)'스텔라'가 되었다. 내가 스텔라가 된 데에는 김연아가 8할이었다. 그녀가 경기 직전 깡 생수 한 모금을 야무지게 마시고 빙판에 오를 때 성호를 긋고 한다던 기도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경기에 이기게 해 주세요가 아닌 '이 경기에 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나는 거기에 꽂혀 명동성당까지 내 발로 찾아가 6개월간 나의 소중한 불금을 헌납한 뒤에야 한국 천주교회가 인정한 스텔라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성당에 안 나간 지는 꽤 오래됐지만 회사의 공식 영문 이름과 메일 아이디로 야무지게 쓰고 있다.
같은 별은 싫어!
스텔라가 되기 전에도, 스텔라가 된 이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세모와 네모 혹은 같은 별 모양을 만나왔다. 달랐기에 끌렸고 같았기에 생겼던 동질감 때문에. 별 모양의 홍보인은 자연히 일에서도 고생이었다. 섬겨야 하는 이들이 많은 홍보 회사 생활. 각지고 뾰족한 모서리를 숨긴 채 대표님과 임원진, 상사들, 기자님들, 클라이언트 (일명 광고주님)을 상대해야 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가 섬겨야 했던 수많은 이들은 높은 확률로 나 못지않은 별 모양들이었다. 처음 입사하고 가장 많이 당했던 지적은 내 뾰족한 모서리를 깎아내야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나의 네이처로는 도저히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인가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뾰족한 각도 내 살이었기 때문에 그 살을 뭉툭해지게 만들기 위해선 계속 아프게 갈아내야 했다. 너무 많이 웃지 마. 차라리 손을 좀 묶어둘 수 없겠어? 싫은 내색을 해선 안돼, 다만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해. 그러기 위해선 단호한 친절이 중요해. 동그라미도 너무 세게 치지 마, 없어 보여! 몸을 너무 많이 흔들지 마. 목소리 톤도 일정하게 가져가. 속을 내비쳐선 안돼.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부드럽게.
물론 항상 속없이 헤실 거리고 고 텐션의 밀도 높은 감정선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점은 사회생활에 있어 충분히 고쳐야 마땅하다지만, 내 본연의 네이처를 억누르고 이 대리로, 스텔라로 성장해 나가는 동안 나는 매일 나의 무능함과 마주하며 뾰족한 모양의 돌기를 가진 내 살들을 깎아 내며 피를 철철 흘려야 했다. 굳은살이 배기기엔 너무나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던 멘탈 개선 작업들. 그 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체 뭐였을까. 내가 하고 싶던 이 일에 대한 짝사랑이었을까. 내가 그 순간 아무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놓을 수 없었던 건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에 느끼던 묘한 매력과 애증의 감정들. 지금 역시도 아니라곤 말할 수 없다. 나의 예민한 네이처를 이토록 험난하게 깎아내지 않으면서도 이걸 장점을 살리며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고칠 건 고쳐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깎여 나가는 과정이 조금은 기분 좋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같은 별 모양에게도 이런 강점이 있지 하며 인정해 주고 싶다. 굳이 원이나 같은 별 모양이 아닌 세모나 네모들이 봐도, 반짝반짝 빛나는 돌기가 조금은 뾰족하고 아플 것 같아도 한 번은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개성 같은 것 말이다. 그간 부정하고만 싶었던 내가 가진 모양을 이제는 토닥이며 받아들여 주고 싶다. 그렇게 피나게 깎아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노력해 줘서 고마워. 그 피투성이 노력들이 아직도 내가 일 인분의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오늘도 화살기도를 하며 잘 준비를 마친다. 내일은 내일의 월요일이 찾아올 테니까.
이 밥벌이라는 경기장에서
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모양 스텔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