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도 화살기도가 필요하군요
창피한 것을 그만 쓰게 해 주세요.
세상에 쓸모 있는 걸 쓰게 해 주세요.
언젠가는 동어반복 말고
전복적인 이야기를 쓰게 해 주세요.
느끼한 문장 안 쓰게 해 주세요.
아니 그냥 우선 꾸준히 쓰게 해 주세요.
- 일간 이슬아 수필집 中 -
일주일 중 주 5일! (주말은 쉰다고 한다) 한 달에 4주! 월 구독료 1만 원! 매일 무슨 글이든 써서 메일로 보내주는 파격적인 일간 글쓰기 서비스의 창시자인 이슬아 작가. 나는 친한 친구를 통해 뒤늦게야 그녀의 이 독특한 글 구독 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지난여름, 나는 그녀의 글이 주는 날 것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일간 이슬아' 한 여름호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 글을 받아 본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그렇게 써온 2년의 기록이 담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사서 사전보다 더 두껍게 쌓여 있는 그녀의 서사를 엎드린 채 읽다가 잠이 들곤 했다.
수필집 초반에 등장했던 '화살기도'라는 챕터를 읽던 중 '창피한 것을 그만 쓰게 해 달라'는 작가의 화살기도에 빵 터져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내가 당장 세상을 바꿀 전복적인 이야기를 쓸 가능성은 없으므로 그런 소망까진 가닿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매일 회사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써야 하는 글 앞에서 나도 이것만큼은 항상 생각한다.
- 데드라인에 쫓겨서 구구절절 창피한 것을 그만 쓰게 해 주세요. 느끼한 문장 안 쓰게 해 주세요. 제-발!
이 일을 시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이 굉장히 크다는 걸 실감했다. 보도자료는 물론이고 콘텐츠 기획에 들어가는 짧은 카피나 헤드라인 문장을 잘 뽑으려면 긴 글부터 군더더기 없이 잘 쓰는 연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 나였지만 처음 회사에서 하는 글쓰기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였다. 보도자료 한 편 써본 적 없이 홍보회사 경력직 대리로 들어간 나는 그 해에 들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문장이 얼마나 긴지, 미사여구는 얼마나 많은지, 퇴고하지 않는 습관이 만들어 낸 창피한 비문들은 얼마나 끔찍한지.
회사에 다시 돌아온 첫날 써야 했던 한 비영리재단의 홍보 콘텐츠 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과학 기술 혁신, 바이오 테크놀로지, 공모전 등 흔치 않은 주제부터가 난관이었다. 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길고 어려운 글을 쉬운 말로 풀어주고 그중에서도 핵심만 골라내는 일이었다. 촉박한 데드라인의 압박에 허덕이다 쓰레기 같은 초안을 써서 담당 과장님께 내밀었다. 내가 봐도 방향을 잃은 난감한 초고의 얼굴이 속상해 눈물이 핑 돌았다. 글은 솔직하기도 하여서 쓰는 사람이 이해 없이 쓴 글은 대부분 백치미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나의 속상함이 느껴졌는지 과장님이 말했다.
" 이 글이 본인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창피하지 않게 내보낼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써보세요. 데드라인은 내가 어떻게든 조정해 볼 테니까. "
감사했다. 오기가 생긴 나는 그 파일을 집으로 가져가서 밤새도록 고치고 또 고쳤다. 이해가 필요한 내용은 계속 찾아보고 공부했다. 그렇게 그 날의 글을 마무리하며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 초안은 다음날 무사히 과장님 컨펌을 통과했고, 나는 이왕 써야 하는 글이라면 지금보다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 한 달 동안 뭐든 쓴답시고 썼었는데 뭐가 문제지 싶어 그간 필사하거나 끄적거렸던 노트와 워드 파일들을 펼쳐봤다. 올해 초부터 스트레스받은 내면을 치유하답시고 매일 새벽 일어나 책 <하버드 글쓰기 강의>에서 본 대로 '프리 라이팅'을 하기 시작했었다. 당시엔 일로서 하던 글쓰기에 이미 질려있었다. 하루 종일 일에서 시달리고 들어오면 나의 글은 한 글자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일을 다시 좋아하고 싶었다.
처음 했던 노력은 '프리 라이팅'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종이 위에 펜을 들고 10분간 뭐든 써 내려가는 일이었다.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까지 똑같은 것을 반복하더라도 무조건 쓴다. 잘못된 문장을 고칠 필요도 없고,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 마음속 말부터 의식의 흐름까지 닥치는 대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것을 매일 아침 반복한다. 딱 10분 동안! 나의 경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노트를 들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해독이 필요할 정도로 난해한 의식의 흐름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걸로 인생이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던가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해방된 기분이었다. 이 글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진짜 말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쌓여간 글들은 몇 달간 노트 속에 희랍어처럼 꼬불꼬불한 고대 문자처럼 남아 나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글 쓰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데는 크게 일조했으만 실질적인 스킬은 늘지 않았다. 그야말로 봐주는 이가 없었고 퇴고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은유'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글도 사람처럼 혼자서만,
사적인 공간에서만 쓰면 성장할 수 없다.
글도 사람이랑 똑같다.
세상에 나와 부딪히고 넘어져야
글도 성장한다.
블로그에 일기를 한 장 쓰고
비밀글로 처리하면 글이 안 는다.
작가 은유 <채널 예스> 인터뷰, 비밀 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中 나온 이야기.
나의 노트북 폴더와 블로그 임시저장 글로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비밀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그 글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흐지부지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 채 어두운 캐비닛 속에 처박혀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 긴장감이라고는 1도 없는 글. 이러니까 안 늘지 싶어 내가 지난겨울 가둬 놓았던 글들을 블로그로 가져와 짤막한 글이라도 마무리를 짓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부족한 글일 지라도 끝맺음을 지어 완성한 글.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글을 발행면서부터 신기하게도 고쳐야 할 부분이 산만큼 크게 눈에 들어오고 발행 전에는 몰랐던 허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행 전에는 '쓰는 입장'에 불과하지만 발행 후에는 '읽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었다. 내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쓴 글을 쑥스럽다는 이유로 '읽는 입장'에서 검토해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로 불특정 다수에게 내 글을 노출시키게 되니 맞춤법 검사기도 한 번 더 돌려보게 되고 이전보다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 내가 100만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50에 머물고 있다면 그 50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는 자연히 고통이 따른다. 성장을 위해선 이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데미안처럼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와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 상하는 창피스러움도 겪어내면서 말이다. 은유 작가님의 말씀처럼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면 빛을 발하지 못하니까.
나는 그때부터 쉬었던 시기에 겨우 살려 놓은 블로그에 눈물겨운 이대리 통신을 쓰기 시작했다.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짧게나마 그 날 회사 생활을 하며 겪었던 소소한 일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도 없었지만 내가 가장 생생하게 쓸 수 있는 글이었다. 현실에 실존하는 상황과 인물들이기에 100퍼센트 구구절절 다 쓸 순 없었지만 훗날의 내가 다시 이 글을 봐도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껴볼 수 있으면 했다. 생각 없이 쓰다 보니 무슨 시리즈 같았다. 주인공은 바람 잘날 없는 나의 본캐이자 부캐, 이 대리였다. 그 당시 내게 가장 무거웠던 이름...
그렇게 내가 주인장인 블로그에 이대리가 되어 오늘 점심 메뉴도 소개하고 그 날 그 날 나를 각성시키던 커피 사진도 인증하며 소소한 하루를 기록했다. 냉혹한 사회 속에서 외로웠던 이대리가 세상에 외치는 유일한 생존 신고였다. 놀랍게도 그렇게 풀어내기 시작한 글들을 꾸준히 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적은 숫자였지만 그 다정한 분들은 비밀 댓글을 통해 함께 공감해주시기도 하고 때론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해 왔다. 사실은 아직도 내가 이전에 쓴 이대리 통신을 다시 꺼내 보기기가 어렵다. 이불 킥을 할 정도로 너무너무 창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아직도 서툴게 하루하루를 헤쳐가는, 고작 인생 1회 차인 이 세상 인턴일 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계속하는 한 과연 안 창피한 것을 한 번에 쓰게 되는 날이 오기는 올까. 초고는 왜 항상 쓰레기인가. 쓰레기인걸 알면서도 무슨 자신감으로 수정할 생각도 안 하고 저렇게 날 것의 글들을 늘어놓은 채 방목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절대 꾸준히 뭔가를 써내는 일을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내 글보다 더 창피하고 서툴었던 나의 행동들에 왜 그랬지 자책하며 앉아 있다. 오늘 밤엔 나도 이슬아 작가처럼 화살기도를 하고 자야겠다.
창피한 것을 그만 쓰게 해 주세요.
아니 그냥 우선 꾸준히 쓰게 해 주세요.
아니 그보다...
바보 같은 짓들을 그만 하게 해 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