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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거절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은 아름다우니까요

첫 기자 간담회의 추억, 제주에서 만난 '별이 빛나는 밤'

by LBR

우연히 2년도 훨씬 더 지난 예전 일기를 보게 되었다. 생판 처음 보는 소설을 읽는 것 마냥 낯설고 신기했다. 제법 심각했던 상황의 이야기들인데도 불구하고 남의 이야기인 양 느껴지며 재밌기까지 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때론 소소하고 때론 어느 웹사이트 판에 올라와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막장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겪어 내며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때 그 시간의 기록.


그때,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또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하지만 그때만큼은 선명했던 삶의 숙제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년 전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며 어떤 문제를 풀고 있었을까. 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자고 일어나서 눈뜨면 '그날'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기서 '그날'이란 첫 PR 회사에 입사한 이후 가장 큰 행사였던 기자 간담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날이 지나면 뭔가 큰 압박에서 벗어나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때의 기자 간담회는 중요하고 큰 행사였을 뿐 기자분들을 마주하는 일이 그렇게 스트레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 해나가야 하는 일이 주는 커다란 압박감과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하루빨리 '그날'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거절을 접했던 한 달이었다. 내가 맡고 있던 미디어 아트 전시의 두 번째 개막 전시회였다. 해당 전시는 국내 거대 미디어 후원사를 두고 있었기에 타 언론사의 기자들을 간담회에 섭외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장소는 전시관이 있던 제주도였다. 간담회 당일 이른 아침 김포에서 출발하여 제주 성산에서 전시를 보고 취재를 마친 후 식사를 하자마자 제주 공항으로 가서 다시 김포로 비행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 거의 모든 기자들이 선뜻 가겠노라 대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주 언론사 역시 쉽지 않았다. 일간지 언론사는 대부분 제주시에 있었고 한 시간은 차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성산의 전시관으로 이동해 일정을 소화한 후 돌아와 그날의 기사를 마감하기엔 다소 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배포할 새로운 전시의 *프레스킷(press-kit)을 제작하고 급하게 해야 할 다른 업무를 마친 후 혼자 하루에 30통에서 40통가량의 전화를 돌렸다. 반은 받지 않았고 나머지 반 중 99%는 묻.따.말 거절이었으며 나머지 1%의 기자분들만이 아직은 스케줄을 확정할 수 없으니 나중에 또 전화 달라는 친절한 응답으로 희망의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들었다. 야속한 하루하루가 흘러 갈수록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혹시나 내가 남긴 번호를 보고 콜백을 주지 않을까 고려하여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돌렸다. 혹시 몰라 문자로 내 명함과 연락한 이유까지 남겨 가면서. 전화를 받지 않으신 분들을 메모해 끝까지 전화를 걸었으니 수백 명의 기자에게 정중하게 혹은 차갑게 거절당했다. 하루 동안 진행됐던 수십 통의 통화에서 남의 집 잔치에 초대하지 말라는 차가운 목소리부터 왜 우리 언론사는 먼저 초대하지 않냐는 항의의 윽박지름까지 모두 종합 선물 세트처럼 나를 강하게 단련시켰다.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었다. 그나마 내가 첫 기자 미팅에서 만나 뵈었던 존경해 마지않는 그분! E 언론사 문화 부장님께서 만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대로 참석하시겠다는 YES의 응답을 주셨다. 휴대폰 너머로 그분의 후광이 비치며 평생 충성을 다짐하게 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내가 가지고 있던 미디어 리스트도 이미 구식이 되어 있었다. 가지고 있던 리스트에 있는 대부분의 기자들은 출입처가 바뀌어 있었고 나는 물어물어 알아낸 새로운 미술 문화부의 담당 기자분들에게 우리 전시를 알리고 재빠르게 간담회 리스트에 올려 항공권을 예약해야 했다.


나는 매일 목이 터져라 손가락이 터져라 외쳐댔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살아 움직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눈앞에 반 고흐의 팔레트가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일지!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직업병이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기적적으로 총 36명의 기자 섭외를 마쳤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전 날 저녁 밤늦게 회사에 남아 항공권을 점검하고,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 점심 식사 장소 예약을 마치고, 행사장의 동선 체크 및 예상 질의와 여분의 프레스킷을 챙긴 후 집으로 돌아가 간신히 누웠다. 긴장으로 인해 한 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생길지도 모르는 수많은 변수들을 셈하다 보니 벌써 새벽 4시 반이었고, 이제 그만 일어나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 긴장을 풀기 위해 잠 못 자 시뻘게진 토끼눈을 끔뻑거리며 오히려 업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책을 읽었다. 혹시나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김포 공항을 지나 내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끔찍한 예상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돌발 상황은 끊임없이 줄을 이었다. 제때 도착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비행 직전에야 게이트를 통과하신 분들까지 확인하느라 내 정신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30명 가까이 되는 서울 기자분들을 모시고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에 가면 열 분이 넘는 제주 기자분들을 추가로 마주해야 했다. 한 분 한 분 모두 홀로 직접 컨텍 한 기자분들이었다.


실제로 만나 뵌 기자분들 중 잊지 못할 만큼 좋으신 분들도 많았다.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며 고생했겠다며 말해주시던 기자분들을 마주할 때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꾹 참아 냈다. 하지만 간혹 다혈질의 당혹스러운 분들과 마주할 때면 겉으론 의연한 척 대처했지만 가슴은 이미 콩닥콩닥 녹아내릴 듯 무너져 내렸다. 마음을 졸이느라 1시간 10분의 비행이 20분처럼 느껴졌다.


제주에 도착 후 바빠진 마음으로 공항을 벗어나 야자수 몇 그루를 마주했으나 그때의 제주는 내가 알던 그 낭만의 섬이 아니었다. 야자수가 주는 자유로운 혼저옵서예~ 제주의 정서를 감상할 정신이 내겐 없었다. 부랴부랴 전시관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화려한 비주얼의 반 고흐와 고갱을 테마로 한 미디어 아트 전시가 펼쳐졌다. 가뜩이나 미술 전시를 좋아하는 내가 너무나도 기대했던 그 전시였다. 그 처음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긴장 속에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화려한 색감의 영상미가 아닌 기자분들 동선과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게 살펴야 하는 그분들의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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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흐와 고갱의 그림이 웅장한 음악 사이로 모였다 흩어졌다.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눈앞에 살아 움직였다. 고흐가 압생트에 취해 봤던 별이 빛나는 밤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고흐의 별이 빗방울이 되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떨어진 빗방울은 다시 빛나는 별로 피어 오른다. 그 순간 고흐와 고갱이 주는 이 감각적인 여유를 즐길 수 없음이 조금 슬펐지만 나름 이 예술은 매력적이라 혼자 감탄하는 청승맞은 내가 서있었다. 이런 전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니 너무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한 달간의 섭외와 준비 여정, 그리고 전 날 밤 미처 잠들지 못했던 피로감이 미친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아 제발 이 모든 일정이 이슈 없이 마무리될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한 달 내내 길거리 쓰레기를 줍고 다니겠나이다'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주문처럼 외우며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눌러댔다. 소화가 안 되는것 같았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바로 준비된 장소로 모두 이동한 후 본격적인 미디어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긴장 속에 모든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Q&A, 식사 장소로의 이동, 제주 공항으로의 이동, 도와주신 과장님과의 커피 한 잔, 긴장이 다 풀려버린 이후 나눴던 의식의 흐름과도 같았던 대화까지. 모든 것이 아득하게 흘러갔고 나는 그토록 기다렸던 '그날'을 마감했다... 고 생각했다!


시작은 그다음부터였다. '그날'이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일보다 더 힘든 다음날이 시작됐다. 전시 개막 후 프레스 깃과 함께 언론사에 수백 건의 보도자료가 뿌려졌고 나는 그날 오전부터 밤까지 수십 통의 문의 전화를 받으며 온갖 미디어 응대에 진을 뺐다. 매너 좋게 기사에 필요한 자료며 정보들을 요청하시는 좋은 분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노골적으로 광고를 요구하거나 따로 만남을 요구하는 성희롱, 간담회 기사 아주 잘 봤다며 왜 초대 안 했냐고 윽박지르는 분들까지… 각양각색 커뮤니케이션에 시달리다 두어 달 만에 처음으로 저녁 6시에 회사를 나섰다. 허무했다. 그냥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지난 3개월간의 이런저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불과 3개월 전의 기억이… 내가 지난 1년 전의 일기를 보았을 때와 같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아침 게재된 기사량을 확인했다. 총 81건의 기사가 게재됐다. 어안이 벙벙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이었다.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게재량이었으며 기사가 많은 만큼 내 일도 늘어났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간의 모든 고생의 순간을 다 보상받은 듯 벅차올랐다. 티끌만 한 실수도 만들지 말고 완벽해져야 한다는 상황이 주는 압박에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자신감은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다. 업무 평가도 함께 준비해야 했다. 작은 일에도 눈치를 살피던 내 모습이 속상해 심각한 번 아웃을 겪고 있을 무렵 처음 접했던 성과였다. 너무 고됐던 날들 속에서도 늘 우주는 나의 편이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맹목적으로 믿었던 우주도 그런 나를 한 번은 안아주고 싶었는지 그날 아침만큼은 많은 기자분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정말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사소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차가웠던 온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핫팩보다 더 따뜻했다. 이런 거 보면 정말 사람 마음이란 말 한마디가 다인데 말이다. 나 정말 단순한 사람인데!





그날 저녁, 뜬금없이 하루만 바다에 가서 멍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를 보며 모래사장에 앉아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과 치즈에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이왕이면 제주의 바다였으면 했다. 그 날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반 고흐의 움직이는 '별이 빛나는 밤'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시보다 더 아름다울 실제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모두 지난날의 일기가 나에게 전해준 그날의 기억들. 남겨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사다난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한 해 동안, 그리고 나의 일생에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누가 얼마나 오래 내 곁에 남을지는 결코 예측할 수 없지만.


마음 한구석에 절대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모든 게 다 바뀌어도 그 풍경만큼은 내 방에 걸어 놓은 그림처럼 변하지 않고 단단하게 못 박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런저런 생각들로 그 해 초겨울, 찬 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보통날이 또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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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스킷 [press kit] :언론사 배포용 보도자료와 정보 자료의 묶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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