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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아이유 님이 내게 주었던 짧은 단상

당신의 닉네임은 무엇입니까?

by LBR

" 월계동 아이유 님?


".... "


" 월계동 아 이 유 님!!! "



절친한 언니와 월계동 트레이더스 스타벅스에서 오붓한 디저트 타임을 갖고 있었다.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활기 넘치는 스벅 매장을 한순간에 조용해지게 만들었던 건 한 스벅 회원님의 닉네임이었다. 바리스타 분이 낭랑한 목소리로 '월계동 아이유'님을 외치던 그 순간. 커피를 마시던 언니와 나는 물론이고 모두가 약속한 듯이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궁금했던 걸까. 월계동 아이유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에 대해. 하지만 웬일인지 월계동 아이유 님은 한 번에 등장하지 않았다. 잠깐 화장실에 간 건지 뜻밖의 매장 분위기에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인지. 그 둘 중 하나겠지만 정답은 모르겠다. 바리스타분이 월계동 아이유 님을 세 번이나 목놓아 외치는 동안, 결국 우리는 그분을 뵙진 못했기 때문이다. 벽을 보고 앉았던 내가 한 번씩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월계동 아이유 님 커피 받아 가셨어요? "

" 아마도 몰래 받아 가신 것 같아. 커피 쟁반이 사라졌어. "



너무도 귀여운 닉네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월계동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라 케이크를 오물거리는 약 10초 동안 고민했다. 나도 닉네임이란 걸 등록해볼까. 내 사랑 아이유는 이미 그분이 선점하신 듯하니 '월계동 아이린'이나 '월계동 박수진'이라고 지으면 어떨까. 훗, 다행히도 1초 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커피를 찾으러 가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는 전용 카드 또는 사이렌 오더로 음료를 주문하는 경우, 직원이 영수증 번호 대신 고객이 직접 설정한 닉네임으로 불러 주는 '콜 마이네임'이라는 고객 닉네임 등록 서비스가 있다. 원래 자신의 영문 이름이나 별명, 애칭 등을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끔 발음이 너무 어렵거나 직원을 당황시키는 닉네임들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원들의 닉네임을 불러줌으로써 특별한 느낌을 받게 하고 싶었던 스타벅스의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이 서비스는 적지 않은 이들을 장난꾸러기로 만들었다. 그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누가누가 더 재기 발랄한 닉네임을 짓는가에 대한 전 국민 눈치게임은 한때 온라인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이를테면 '오지 마십쇼'라던가 '박보검 닮은 고객님', '반성하세요' '세젤예' 기타 등등.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게 될 경우 해당 연예인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선명한 이미지와 그에 대한 어떤 기대 심리로 인해 아무 생각 없이 지었어도 불릴 때마다 시선을 끌곤 한다. 닉네임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 친구 중 '김태희'와 '신민아'는 어딜 가서든 이름이 불리는 순간 모든 이의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나의 동생 태희는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면 "태희예요."라고 작게 대답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혹시.... 김.....? "


내 친구 민아도 마찬가지다. 그 두 친구는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서로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어떤 동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그 둘은 그 이름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지만 연예인 이름이 갖는 브랜드 파워는 이렇듯 초강력하기 그지없다.


대체 닉네임이 뭐길래.

닉네임을 네이버에 쳐보니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님께서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에 지어 부르는 이름'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렇듯 닉네임이란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존재기에 이따금씩 어떤 모임이나 이렇게 소소한 서비스에서 닉네임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면 잠시 눈을 껌뻑이며 고민하게 만든다. 이게 뭐라고.


이 이야기를 쓰면서 나 또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내 닉네임에 대해 고민해본다. 세례명 스텔라는 이제 너무 식상한걸? 이 대리라고 할까. 프로예민러라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월계동 아이린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월계동 아이유 님만큼은 닉네임을 바꾸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각인되기도 쉽지 않으니까. 게다가 스타벅스에서 인정한 월계동의 유일무이한 '아이유'가 아닌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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