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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등지고 라면에만 집중하던 그녀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돌아왔어요

by LBR

나 혼자 산다 화사에게 배운 '여기, 지금'의 미학


한 달간의 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나는 내가 그 곳에 계속 있던 사람인 줄 알았다. 그 누구도 나를 오랜만에 본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나도 마치 어제도 출근했던 사람처럼 출근보고를 쓰고 뉴스 기사를 클리핑했다. 마치 비어 있던 그 한 달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뭐랄까,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나도 돌아왔고 학생 인턴도 한 명 새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구내식당 밥 대신 특별식을 먹자는 상사의 제안에 따라 그 날 점심은 중국집 짜장면을 먹었다. 그 어느때보다 더 열심히 먹었다. 내가 다시 평범한 나의 본캐 이대리로 컴백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복직 후 금요일의 소중함을 되찾았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이틀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탄과도 같은 금요일 퇴근길. 그때의 감성은 그렇게 세상 관대해지고 기분이 샤방샤방할 수가 없다. 하늘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웠나. 저 구름 봐라. 꼭 맥도널드 아이스크림 콘 같잖아? 꺄르르.


그 좋아하던 금요일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한 달을 떠올렸다. ‘나 혼자 산다’를 봐도 재밌지 않고 주말이 와도 주말 같지 않았던 내 쉼표의 달. 지금도 복직 후 처음 맞았던 금요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별의 아픔을 서서히 극복 후 입 맛을 되찾은 여인처럼, 나는 금요일이 주는 깊은 단 맛을 다시 되찾았다.


다시 즐길 수 있게 된 ‘나혼자 산다’를 당당하게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생 연어회를 풀어 놓고 와인을 한 잔 따라 놓은 채 경건한 마음으로 본방을 기다렸다. 어쩜! 이 세상 타이밍은 재밌기도 하지. 그 날 따라 시기 적절하게 데뷔 이래 처음으로 두 달간의 긴 휴가를 받았다는 가수 마마무 '화사'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그래, 두 달은 쉬어 줘야 조금 아쉬운 듯하게 쉬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의 한 달은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 19라는 독한 손님을 맞이했기에, 꼼짝없이 집에 처박혀 2년간 방치해둔 블로그를 다시 열어 매일 같이 글을 써대는게 전부였으니까.





그 날 방송은 두 달간의 휴가를 마무리하는 화사의 하루를 촬영한 듯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열정적이게 일하던 가수로서 화사의 무대 파워를 알고 있기에, 그녀의 잉여로운 하루 일상이 더욱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그중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화사가 깜깜한 밤, 차를 끌고 나가 한강에 가서 라면을 먹던 장면이었다. 그녀의 에피소드 중 이제 먹방이 빠지면 섭섭하지. 거기다 한강까지 가서 팔팔 끓인 편의점표 '끓라(끓인 라면)'를 안 먹고 온다면? 곱창을 먹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하지 않은 찝찝한 느낌일 것이다. 먹방계의 '배운 여자' 화사는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끓라’는 물론 만두, 소시지, 바나나 우유까지 야무지게 챙겨 와서 성실한 전투 자세로 하나씩 차분히 클리어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익숙한 일상이다. 늘 그래 왔듯 그녀는 환상적인 면치기 실력과 뛰어난 사이드 메뉴의 조합으로 금요일 밤의 우리를 다짐하게 만든다.

" 날 풀리면 한강 가서 저거부터 먹는다. "

내가 그런 1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무지개 회원 나래 언니가 중요한 한 마디를 날렸다.




저기까지 가서 한강을 등지고 먹네.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 그 야경 구경하라고 주욱 늘어져 있는 한강공원 둔치의 벤치들. 화사는 그 벤치에 앉아서 라면을 먹는 게 아니라 앉는 자리에 라면과 주전부리들을 펼쳐 놓고 한강을 제대로 등진 채 열과 성을 다해 라면을 먹는다. 마치 이 세상 전부가 눈 앞의 라면 한 그릇이라는 듯.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라면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 현재 라면의 나트륨과 MSG가 주는 환상적인 맛에만 집중한다.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화사는 곱창을 먹든, 라면을 먹든, 오락을 하든, 현재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몰입력이 굉장히 높아 보였다. 현재에 머물러 사니 행복감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 점심을 먹으며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생각하고 재밌는 연극을 보며 이번 달에는 또 어떤 연극을 본담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사의 가장 큰 매력은 '여유로움'이다. (나 혼자) 오래도록 지켜본 그녀는 자기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여유로움에서 느껴지는 높은 자존감. 그 여유로움은 그녀가 눈 앞의 '현재'에 충실히 살며 느끼는 진짜 행복감에서 나온다.



쉬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어떻게 이 일을 했지?
다시 음악이 너무 하고 싶어 졌어요.
쉬고 나니까.
며칠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날 방송에서 나왔던 화사의 인터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시 차오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다는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퇴직으로서 이 시간을 갖게 되겠지만, 나나 화사처럼 운이 좋은 케이스는 아주 짧은 잉여의 시간을 갖고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간다.


한 달 만에 사무실로 출근했던 그 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들과 그 날의 이슈를 떠들며 점심을 먹고 식곤증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하나하나 하던 일을 묵묵히 쳐냈다. 뒷목도 몇 번 잡았고 머리를 쥐어짜며 썼던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주 조금 달라진 내 마음일 것이다. 그때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크게 닥쳐왔던 위기의 마음. 화사처럼 "쉬고 나니까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충분히 쉬진 못했지만 내가 잘하지 못할지언정 이 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까. 그저 나인 투 식스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나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워라밸의 개념이 아닌 진정한 워라밸의 개념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을 정확히 때우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아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한 일이 아닌, 어떤 이유로든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아니 당장 잘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은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임하는 나인 투 식스. 나의 소중한 시간!



지금, 여기에서
먼저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궁금해했다. 내가 왜 회사로 다시 돌아갔는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함을 느껴야 어딜 가도 행복할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 참으로 어렵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일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다는 부자이자 나의 인생 멘토 '사이토 히토리' 선생의 <부자의 운>이라는 책에서 이 문장을 접했었다. 그 날의 충격이 생생하다. (스승님이시여, 어렵습니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선 안되고, 그 어떤 것도 지금과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움직여야만 한다고.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있는 부모와, 지금의 회사에서, 지금의 상사와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만일 이직을 하고 싶다면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먼저 행복한 다음 이직하라고. 그래야 반드시 다음 회사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이토 히토리 스승님의 말씀. 그동안 진심으로 외면하고 싶었다. (아니 스승님, 행복한데 왜 이직을 합니까!) 하지만 머리론 알고 있다. 이 말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행복해야 어딜 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만큼 어리석은 여행이 있을까. 파랑새를 찾아 떠난 치르치르 미치르처럼. 파랑새, 행복은 바로 여기 지금에 있는데 말이다. 내 눈앞 내 옆도 아닌 바로 내 안에. 나는 내 안에 파랑새가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글로 쓰니 쉽지 매 순간 까먹는 내 안의 파랑새다. 나는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꼈고 온전치 못하다며 나 자신의 한계를 지어버리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기에, 이걸 정화시키는 작업에 이렇게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이걸 인지하기 시작했으니 어떤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신기하게도 자꾸 도망가고 싶어 지고 포기하려는 순간마다 어떤 기회들이 주어진다. 휴직의 기회가 주어져 이 일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직은 아니야. 수행이 더 필요해. '하며 나를 잡아채 다시 제 자리에 앉혀 놓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기에 앉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주는 기회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러므로 현재에 머무르려고 노력하는 나는, 이렇게 삶을 위해 노력의 첫걸음을 내디딘 사람이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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