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한 달, 정확히 4주. 나에게 주어진 쉼표의 시간이었다. 다들 부럽다고 했다. 당연히 한 달간 무급이긴 하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고 병원을 다니든 무언갈 배우든 내 맘대로 운용할 수 있는 한 달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출근도 없고 일 생각 없이 그저 멍 때리는 것도 가능한 시간.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대리의 입장은 달랐다. 안 돌아갈 거라면 모를까 결국 다시 돌아가야 했다.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일하는 나의 모습은 한 달 전과 결코 같은 모습 이어선 안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뭐라도 하나 기가 막히게 변해 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하루하루 가는 것이 두려웠다. 휴직 당시 심리적 압박의 여파가 가져온 건강 악화는 공식적인 휴직의 이유가 되었었다. 건강도 얼른 회복해야 했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에도 기력과 의지를 잃었다. 그전까지 재밌게 즐기던 펜싱 클럽도 그때부터 나갈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닐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금요일이 반갑지 않다는 점이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땐 언제나 금요일만을 기다렸다. 나에게 있어 금요일은 100% 충전된 휴대폰 배터리와 같은 존재였다. 마치 금금금 같은 느낌으로 콘텐츠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수집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금토일일지라도 일단 주말이 오면 뛸 듯이 기뻤다. 더군다나 금요일 밤은 나 혼자 산다가 하는 밤 아닌가. 쟁여뒀던 와인을 한 잔 따라놓고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는 그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맙소사! 더 이상 금요일 밤의 깨알 같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었다. 나 일주일 동안 뭐했지. 책은 얼마나 읽었지? 글은 뭘 좀 쓴 게 있나. 운동은? 이러다가 시간만 보낸 채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겠네. 이제 며칠 남았더라. 넋 놓고 있다가도 시계를 볼 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것이 내 쉼표의 밤이 칠흑같이 어두웠던 이유다. 그 밤에 반짝이는 별들을 수놓고 여유 있게 감상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내가 이대리로 살던 삶은 아득하게 멀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시절 남겨놨던 글들을 조심히 열어봤다. 마치 삭혀둔 김칫독을 여는 기분이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예민'이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예민 목록 1,2 순위는 사람과 음식이었다. 그 소중한 시간에 만나는 사람이 주는 기운이나 느낌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면 몹시 슬퍼졌다. 게다가 나름 간헐적 단식을 한답시고 하루에 한 끼 정도만 겨우 섭취했기에 그 한 끼가 유난히 소중해져 버린 것이다. 최고로 맛있는 한 끼를 위해 나의 미각 레이더는 부지런히 도 예민을 떨었다. 그저 예민하기만 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평소에 안 하던 짓도 유난히 많이 했던 한 달이었다. 안 다니던 길로 한 번 가보겠다고 들어서서 몇 시간씩 길을 헤맨다던가. 평소엔 절대 안 사던 스타일의 액세서리를 사서 이틀 만에 잃어버린다던가 하는 생산성 없는 짓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휴양에 가까운 여행을 계획했다. 태국의 치앙마이로 가서 책도 실컷 읽고 글도 엄청 쓰고 와야지 하고 큰 맘을 먹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19가 우한 폐렴이라 불렸을 정도로 초반이었다. 그 당시 국내 확진자는 단 3명! 확진자들이 어느 병원을 갔고 어느 편의점에서 뭘 샀는지 까지 나올 정도의 디테일한 동선을 보며 기막혀하고 있을 때, 외국으로 가는 모든 항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코로나가 이렇게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제2의 페스트였을 줄은.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같이 나가 몇 시간씩 줄을 서기 시작했고 뉴스에서는 코로나 이외의 다른 소식은 들을 수 없었으며 전시 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 다녀왔던 미술 전시에 대한 리뷰글을 시작으로 글을 쓰는 일뿐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2년 동안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어 보았다. 주인 없이 오랫동안 방치된 별장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먼지를 털듯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무작정 쓰고 싶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고소영 절체조를 변형시킨 100배 체조를 하며 빌었던 소원에 대해서 쓰기도 하고 블로그에 쓰기 부끄러운 글들은 워드 파일 창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예민했던 그 한 달 동안 할 수 있었던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다. 쓰고 또 쓰고 인풋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웃풋에 할애했다. 결코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이었지만 그냥 무던히 쓰고 또 썼다. 쓸 주제가 없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A부터 Z까지 단어를 하나씩 정해서 아무 말 대잔치라도 써냈다. 그 칠흑 같은 밤에 유일하게 수놓을 수 있었던 별은 글쓰기 하나였다. 끝도 없이 마음이 힘들고 외로운 날이 계속됐지만 뭐라도 써가며 버텼다. 그런 나를 보고 나의 벗은 '글 공장 보람'이라고 불렀다.
아프고 상처 입은 마음이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으로는 절대 회복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미웠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빼박 진리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배움들 만큼은 결코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 밤 이 후로 배운 네 가지 사실.
첫 번째, 한 번에 하나 씩! 너무 커 보이고 복잡해 보이는 일 일 수록 이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시작점은 하나이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맨 처음 밟아야 할 첫 번째 계단을 찾는 일이었다. 그다음에는 한 계단, 한 계단, 한 번에 하나씩 밟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맨 꼭대기에 도착하게 된 다는 것. 잠시 쉬더라도 결국엔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첫 발걸음을 떼는 내 노력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챗셔 고양이의 대화를 기억하자. 불후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길을 잃은 앨리스가 챗 셔 고양이를 처음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길을 잃은 앨리스가 물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챗 셔 고양이의 대답이 일품이다. 앨리스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심오한 챗 셔 고양이의 말재간.
"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
" 그건 네가 어디를 가고 싶냐에 따라 달려있지. "
내가 어딜 가야 할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다.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끝을 모르고 달리는 막막한 길은 그야말로 외롭고 힘든 고행길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를 때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결국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은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목표를 이정표로 내비게이션에 찍어 두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잊어버린 채, 그저 하루하루 현재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는 것. 내 인생의 네비를 믿어주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내가 직접 정할 줄 아는 주체적인 힘이야말로 그때의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기술이었다.
세 번째, 땅을 깊이 파야 안전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내가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나. 정작 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돌아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모습을 마주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우물처럼 깊이 깔려있는 케케묵은 감정부터 제대로 끌어올려 내 마음이 혼자 외로이 겪었을 진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알아봐 주는 과정. 생소하고 낯부끄럽고 고통스러워서 제대로 해 본 적 없던 그 일을 그제야 비로소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매주 있던 회의 시간마다 두려움에 떨었던 진짜 이유. 그 추운 겨울 발표 날에 유난히 더 얼어붙었던 이유. 모두 나만이 알 수 있었다.
네 번째, 남들이 나에게 어떤 기회를 주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잘하는 일은 다를 수 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고 싶다면? 나의 천직을 알고 싶다면. 남들이 나에게 어떤 기회를 주는가를 가장 먼저 살펴보는 일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나에게 끊임없이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라면 주목해보자. 그 일이 내가 남들보다 조금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 나가야 할 평생의 업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수많은 인풋과 아웃풋이 쌓여가며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혼자서 부지런히 바빴고 고통스러웠으며, 아주아주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