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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 플러스 20점 주세요

21세기엔 열정도 재능! 내가 쉼표를 선택한 이유

by LBR

휴직이냐 퇴직이냐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간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어떻게든 빠른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 결정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했다. 단순히 한 달 푹 쉬며 건강을 회복한 후 돌아오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휴직 기간이 끝난 후 이 곳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는 이 회사에서든 아니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퇴직을 결정한다는 것은 이 일을 포기하고 아예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틀 것이라는 의미였다.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굉장히 큰 배려의 마음으로 내려주신 감사한 제안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 결정 또한 신중해야 했다.


그간 사회생활을 해오며 퇴직을 결심할 때면 항상 다음 계획을 잡아두고 행동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머리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회사에도 빠르게 의사를 말씀드려야 했지만 나는 쉽사리 하나의 선택지를 잡지 못한 채 망설였다. 그 고민의 시기에도 일은 계속해야 했고, 두 번의 기자 미팅이 진행되었다. 각각 다른 날짜에 두 분의 문화부 기자님을 만나 뵈었다. 두 분 모두 언론사 문화부의 부장님으로 계신 당당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셨다. 한 분야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두 분이 너무 멋졌고 부러웠다. 그만큼 바쁜 분들이셨으나 운 좋게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만남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두 분은 나의 이러한 상황을 당연히 모르고 계셨고, 나는 우선 내 눈앞에 주어진 이 일에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절실했다. 기자 미팅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두 분과의 만남으로 나는 갈팡질팡 했던 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21세기엔 열정도 재능이야


N 언론사 P 문화부 부장님. 섭외 전화를 드리긴 했으나 만남에 응해주실 거라고는 절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은 분이었다. 매일 아침 미술 전시 기사 클리핑을 해왔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점차 눈에 익은 기자 분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리스트업 되기 시작했다. P 부장님께서는 언론사 내 본인 이름을 세운 아트 칼럼을 연재하고 계셨고 항상 기자님만의 시각이 담긴 기사를 쓰시는 분이라 항상 내 섭외 리스트 앞단에 계신 분이었다. 매 달 내가 담당 중인 미술 전시의 보도자료를 써서 배포했지만 그분은 단 한 번도 나의 보도자료를 내보내 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홍보하는 이 전시의 기사도 실어주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곤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디어 데이를 준비할 기회가 찾아왔고 짧은 시간 내에 간담회에 참석해주실 기자분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압박감으로 덜덜 떨려왔다. 해당 전시는 이미 메이저 언론사를 후원사를 끼고 있었고, 서울도 아닌 제주도에서 진행되었던 간담회였던 만큼 난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P 부장님께 처음 섭외 전화를 드렸을 때 카리스마 있고 냉랭한 그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 남의 집 행사에 왜 굳이 우리를...? "


차가운 반응이라고는 하나 우리의 전시에 대한 정보를 짤막하게나마 언급하시는 느낌이 그냥 냉랭함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부장님은 미디어아트 전시가 예술을 철저히 상업용으로만 다루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으셨다. 결국 부장님을 나의 첫 미디어 데이에 섭외하는 건 실패했지만 왜 우리 전시를 더 알고 싶지 않으신 건지 궁금했다. 꼭 한번 그분을 만나 대화해 보고 싶었다. 이미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상태였던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은 역시 예상대로 바빠서 만날 수 없다며 시크한 목소리로 미팅 섭외를 거절하셨다. 당연히 바쁘실 테니 언론사 지하에 있는 카페로 잠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덧붙였다.


부장님만의 시각이 담긴 미술 칼럼을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저희가 홍보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도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지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간 한 번 내주세요.


안될 거라 생각하고 보낸 최후의 메시지에 의외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내 앞길조차 어찌 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우선 이 일만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약속된 날 부장님이 계신 언론사로 향했다.


" 당신이 나한테 전화하신 분? "


당당한 걸음걸이. P 부장님은 예상외로 싱긋 웃는 얼굴로 등장하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본인의 이름으로 된 아트 칼럼까지 운영하고 계시기에 그분이 쓰시는 미술 전시 분야의 기사엔 영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와 닿지 않는 전시의 기사는 절대 쓰지 않으신다는 생각이셨는데 너무도 당연했고 이해되었다. 순수 미술전이 아닌 미디어아트전을 예술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부터 이 전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그저 예술 장사에 그치지 않는다면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 회사에서는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나였지만 어쩐 일인지 부장님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잊고 있던 내 안의 에너지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주눅 들지 않는 근자감과 뻔뻔함이 무기인 나로 잠시 돌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전시의 특징과 강점, 그리고 미디어아트전이 예술 대중화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부장님께서는 날카롭지만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우리 말고 다른 언론사를 알아보라며 으름장을 놓으시면서도 계속 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셨다. 가만히 내 얘길 듣고 계시던 부장님께서 갑자기 내 이름을 되물으셨다.


" 그래, 대리 때가 제일 열심히 할 때지. 이 전시 브랜드의 홍보 대행사인 거죠? 정말 열심히 하네.

이 친구 플러스 20점 주세요! "


부장님께서 내 옆에 앉아 있던 고객사 담당자분을 향해 툭 던지듯 하신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한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도저히 이 그릇은 내 그릇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짐 싸놓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호랑이 같던 부장님이 말 한마디로 던져주신 그 플러스 20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열정 가득한 친구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며 나조차 신선한 자극을 받고 간다는 따뜻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헤어지기 직전 '언젠가' 한 번은 기획해볼게요. 하며 우리 전시의 프레스 킷과 보도자료를 챙겨 올라가시는 부장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달의 보도자료를 써서 배포했다. 부장님께서 바로 실어주실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마침 연휴였던지라 안부차 연락을 드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절대 부담드리는 건 아니지만 제 보도자료 한 번만 읽어봐 달라는 그야말로 부담 만빵의 문자였다. 우리의 부장님은 역시나 한 번 보기나 하겠다는 시크한 답변을 보내오셨고 얼마 뒤 설 선물이라며 기사 링크와 메시지를 하나 보내주셨다. 내가 보내 드린 보도자료에 부장님만의 색깔이 더해져 송출된 기사였다.


짬 나는 시간에 후루룩 쓴 거예요.
님이 카톡 보낸 열정에 반해서 씀.
여하튼 21세기엔 열정도 재능


타고난 재능만 재능이라 생각했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도 재능이라 봐주시니 설날 세뱃돈에 커다란 선물 꾸러미까지 받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이 일은 단순히 보도자료 1건 추가 게재가 아니었다. 큰 결정을 앞두고 이 일을 계속해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용기를 주었고 그간 이래저래 상처 받았던 자존심에 부드럽게 펴 발라진 따뜻한 연고 같았다. 지금도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면 혼자 가만히 앉아 꺼내보는 약봉투 같은 기억이다. 어떤 일에 대한 열정 또한 재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두 번째 만나 뵈었던 B 언론사의 H 부장님께서는 P 부장님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에너지를 가지신 분이었다. 부장님은 이 일을 정말 즐기시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미팅 내내 서로 좋아하는 미술과 전시 분야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 같지가 않고 정말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전시와 문화 업계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장님의 생기 띈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 말씀드렸다.


" 부장님은 정말 이 일이 천직이신 것 같아요! "


"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


너무 있어 보이는 그 말에 나는 그만 멍한 표정으로 눈 앞에 앉아 계신 부장님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현은 마치 '난 너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순애보적 애정표현처럼 들렸다. 나 역시 이왕 하는 일이라면 재밌게 잘해보고 싶은데,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해도 일이 되고 회사 생활이 되니 즐기기가 힘들어졌다. 회사란 곳은 나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이고 협업을 하던 하지 않던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규율이 중요하며 내 눈앞의 일만 신경 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은 내 삶에서 그저 돈벌이 수단일 뿐인지, 아니면 내 가치를 증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일부인 건지 점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달간의 휴직을 결정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전반적으로 뒤엉켜 있던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싶어서, 이왕 하는 일이라면 끝내주게 잘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까지 저 세 가지가 안되고 있어서 과부하가 왔다. 안전한 울타리를 걷어내고 사회에 뛰어든 지 10년. 일본의 대부호이자 (그분은 날 모르지만) 나의 멘토인 사이토 히토리 선생은 말씀하셨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이왕 하는 거 재밌게 즐기면서 해야겠다 결심했었다고. 아니, 어떻게 즐기지? 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도 왜 못 즐기고 있지?


결국 이 두 분과의 만남으로 나는 한 달간 휴직이라는 짧은 쉼표의 티켓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인생 가장 추웠던 겨울, 칠흑 같던 밤을 수놓던 반짝이는 쉼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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