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거의 나에게 뭔가 말을 해줄 수 있다면

feat. 유미의 세포들 <당신이 받고 있는 시그널>

by LBR


SE-82cf76aa-0653-41d6-8b67-55ca07fd9bbe.jpg



미래의 나와 만나 대화 나누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다. 미래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잘 살고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지. 조금의 시그널이라도 보내줄 수 없을까?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주인공 유미가 미래의 자신에게 받고 있는 '시그널'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나는 떠올려볼 수 있으니, 가장 힘들었던 그때의 나에게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면 어떤 말 정도가 적당할까. 평생 내 옆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과 이별했을 때 '얘 아니야, 진짜는 뒤에 나올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기운 내'라는 쿨한 응원. 나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기회들 속에서 '무조건 잡아서 계속해, 엄청난 기회야!'라고 응원의 시그널 정도로 보내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이미 이와 같은 시그널을 보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진이 빠져 더 이상 이런 반복적인 상처 받고 싶지 않다고 다 포기하고 싶어 졌던 그날도. 모든 것이 막막했던 휴직 기간 동안에도. 미래의 내가 묵묵히 보내고 있던 응원의 시그널 덕에 그 힘든 하루를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복직의 압박을 마주하던 어느 날, 한 친구를 만났다. 이미 법학 박사라는 본업이 있으면서도 5개의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자였다. 더군다나 연애 사업까지 끊임이 없었다. 그를 알고 지낸지도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는데 나는 그가 처음 만났을 당시 자신이 이룰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실현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 나는 내가 현실이라는 게임을 주도하는 플레이어라고 생각해. 현실 속의 나를 게임 캐릭터처럼 키워.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이면 되는 거야. 사람들은 보통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해. "


분명히 책 싫어한다고 했는데... 거의 CEO 자서전 및 회고록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줄줄 내뱉는 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역시 될놈될이라고 저런 성격은 타고나는 것인가. 누구든 자기의 삶이라면 저렇게 게임 캐릭터처럼 생각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저 아이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분명 두렵고 벅찬 순간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런 나의 합리화를 가볍게 즈려밟고 그가 말했다.


" 아니! 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만 진짜 즐기면서 해! 내가 하기 싫은 건 안 해. 다만 나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것 같아. 나는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해. 아 지금 내가 해결하지도 못할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자기 전에 바짝 생각하자. 그렇게 미뤄두고 미뤄두다 자려고 누우면, 이미 낮에 했던 그 걱정이 생각도 안 나. "


다시 태어나면 너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김질했다. 친구라고는 하나 갑자기 그가 대단해 보였다. 문득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응원만 죽어라 할 것이 아니라 저런 실용적인 팁들을 전달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람, 너는 게임 플레이어다. 캐릭터 플랜 어떻게 잘 좀 짜 봐. 제발 해결되지도 않을 스트레스 10시간 짊어지고 있지 말고 자기 전에 잠깐 생각하고 털어 버리자.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변해 있어야 할까. 그저 건강한 신체와 강력한 멘털. 다시 일에 몰두할 대찬 의지만 챙겨 가면 되는 걸까. 그런 고민 따위 그만 접기로 했다. 어차피 4주라는 짧은 시간이 나란 인간의 세포를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연습할 수 있었다. '힘을 빼는 일'


나는 수영을 못한다. 단 한 번도 물에 떠본 적이 없다. 엄마와 인터넷이 알려 주었다. 바닷물엔 소금기가 많아서 몸에 힘을 쫙 빼고 있으면 두둥실 물 위에 떠. 강물에 빠졌을 땐 구명조끼가 있으니까 조금 힘을 빼고 있으면 물에 뜰 거야. 하지만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도 물에 가라앉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 힘 빼기를 못해서. 구명조끼를 믿지 못해서. 그때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힘을 주며 살고 있구나. 열정적으로 사는 그 친구가 사실 가장 잘하는 일은 이완이었다. 쓸데없는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고 힘을 뺀 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계획대로 차근차근 즐기는 것.


미래의 나에게 다시 묻고 싶다. 누구와 함께 하고 있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계속하고 있니. '힘' 잘 빼면서 편안하게 살고 있니? 아주 잘 살고 있는 미래의 내가 오늘 밤 꿈에 나타나 어떤 시그널이라도 주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너한테도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길 거야.
조금 기다려 봐!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당신이 받고 있는 시그널> 中





keyword
이전 08화칠흑 같던 쉼표의 밤